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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초원의 소녀 히이디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1|조회수23 목록 댓글 0

초원의 소녀, 하이디

햇살은 늘 초원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뜬다.
새벽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작은 별처럼 반짝이고, 바람은 산등성이를 넘어 들판으로 천천히 내려온다. 그 길 위에 초록빛 모자를 눌러쓴 한 사람이 서 있다. 마치 오래전 동화책에서 걸어 나온 하이디처럼.

하이디는 알프스의 소녀였다. 꽃을 사랑하고 염소와 친구가 되며, 산과 하늘을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던 아이였다. 그녀의 마음은 언제나 초원처럼 넓고 맑았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들은 하이디를 잊지 못한다. 그 아이가 단순히 귀여워서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순수를 대신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문득 초록빛 옷을 입고 미소 짓는 모습을 바라본다.
햇살을 머금은 얼굴에는 꾸밈없는 온기가 흐른다. 붉은 입술은 꽃잎처럼 생기를 띠고, 눈빛에는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 남아 있다.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맑음이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설렘을 잃고, 순수를 잃고, 작은 것에 감동하던 능력을 잃는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은 꽃보다 계산서를 먼저 보고, 노을보다 시계를 먼저 본다. 바람 소리보다 휴대전화 알림에 더 민감해진다. 그렇게 삶은 편리해지지만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르다.
들꽃 한 송이를 보고도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며 상상의 날개를 편다. 길모퉁이 고양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다. 동심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초원의 소녀 하이디는 꼭 알프스에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있다. 봄꽃이 피면 가장 먼저 카메라를 들고 나서는 사람, 비가 내리면 우산 위의 빗소리를 음악처럼 듣는 사람, 여행지보다 여행길을 더 사랑하는 사람. 그들은 세상을 소비하지 않는다.

세상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의 하루는 조금 다르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더 많은 이야기를 발견하고, 같은 하늘을 보아도 더 깊은 감동을 품는다. 삶의 속도는 느리지만 마음의 깊이는 더 넓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나이를 잊은 사람이 아니라 나이를 품은 사람. 세월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월과 함께 웃는 사람. 얼굴에는 주름이 생겨도 마음에는 꽃밭을 가꾸는 사람. 초록빛 모자를 쓴 모습은 마치 숲이 보내 준 선물 같다.

초록은 희망의 색이다. 생명의 색이고, 다시 시작하는 색이다. 겨울을 견딘 나무가 새순을 틔울 때의 색이며, 긴 비를 견딘 들판이 다시 푸르게 살아나는 색이다.
그래서일까. 그 초록빛 아래에서 피어나는 미소는 더욱 따뜻하다. 마치 말없이 이야기하는 것 같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꽃을 사랑하기에도, 여행을 떠나기에도, 새로운 꿈을 꾸기에도 늦지 않았다고. 인생은 나이로 계산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이 설렜는가로 기억된다고. 하이디는 산 위를 뛰어다니며 행복을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를 통해 삶의 가장 단순한 진실을 배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푸른 하늘 한 조각, 바람 한 줄기, 따뜻한 미소 하나면 충분하다는 것. 오늘도 초원의 소녀는 마음속 어딘가를 걷고 있다. 비록 알프스의 초원은 아닐지라도, 꽃이 피어나는 길 위에서. 바람이 노래하는 언덕 위에서. 그리고 세월마저 잠시 쉬어 가는 미소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하이디다. 나이를 잊은 소녀가 아니라, 나이를 넘어선 동심의 여행자. 초록빛 모자를 쓰고 인생이라는 초원을 천천히 걸어가는 아름다운 소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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