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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나팔꽃 인생처럼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2|조회수23 목록 댓글 0

나팔꽃 인생처럼

새벽 햇살이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스며든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과 유리창이 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침, 담장 곁에 기대어 자란 나팔꽃 한 송이가 조용히 고개를 든다. 연분홍 꽃잎은 밤새 품었던 꿈을 펼쳐 보이듯 천천히 입을 열고, 세상은 그 작은 꽃의 개화와 함께 또 하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나팔꽃은 참 이상한 꽃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오래 피어 있지도 않다. 아침이면 피어나고 저녁이면 스러진다. 그러나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낸다.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빛을 향해 몸을 열고, 주어진 시간을 다하면 미련 없이 꽃잎을 접는다.

어쩌면 사람의 인생도 나팔꽃을 닮아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저마다의 아침을 맞으며 살아간다. 어떤 이는 어린 시절이라는 봄을 지나고, 어떤 이는 청춘이라는 여름 속을 걷는다. 또 어떤 이는 가을빛 중년을 지나 겨울 문턱에 서기도 한다. 그 길은 모두 다르지만 결국 한 번 피어나는 생이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나팔꽃은 스스로 설 수 없다. 덩굴손을 내밀어 기댈 곳을 찾는다. 담장을 타고 오르고, 나무를 감고 오르며, 때로는 철망에 의지해 하늘 가까이 올라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부모에게 기대어 자라고, 친구와 이웃의 손을 잡고 세상을 배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닦고, 때로는 낯선 사람의 친절에 힘을 얻으며 살아간다. 혼자 피어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수많은 인연 위에서 꽃을 피우는 존재가 사람이다.

나팔꽃은 도시의 빌딩을 배경으로 피어 있다. 삭막한 회색 건물 사이에서 연분홍 꽃잎은 더욱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인다. 삶도 그렇다. 고단한 현실이 있기에 작은 행복이 더욱 빛난다. 어두운 밤이 있었기에 새벽 햇살이 반갑고, 긴 겨울을 견뎌 냈기에 봄꽃이 아름답다.

사람들은 종종 큰 성공만을 꿈꾼다. 높이 올라가는 것만이 가치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팔꽃은 그런 것을 모른다. 그저 오늘 자신이 피어야 할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날 뿐이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박수를 보내지 않아도, 아침 햇살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해 보인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행복은 높이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얼마나 높은 곳에 올랐는가보다 어디를 향해 피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빛을 향해 꽃잎을 열 듯 마음도 따뜻한 곳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사랑을 향해, 감사함을 향해, 희망을 향해 고개를 들 때 인생은 비로소 꽃이 된다. 나팔꽃의 덩굴은 곧게 뻗지 않는다. 이리저리 휘어지고 돌아가며 자란다. 그러나 결국은 위를 향한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실패와 좌절, 아픔과 후회가 길을 돌아가게 만들지만 그 모든 시간이 헛된 것은 아니다. 돌아간 만큼 깊어지고, 흔들린 만큼 단단해진다.

곧게 뻗은 길보다 굽이굽이 돌아온 길에서 더 많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된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그 굴곡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에 피어난 나팔꽃은 저녁이면 조용히 꽃잎을 닫는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다음 꽃을 위한 준비다. 오늘의 꽃이 지면 내일의 꽃봉오리가 기다리고 있다. 생명의 바통은 그렇게 이어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한 세대가 물러나면 다음 세대가 피어난다. 부모의 시간이 자녀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된다. 그래서 인생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다. 햇살 아래 나팔꽃을 바라본다. 연분홍 꽃잎 사이로 맑은 빛이 스며들고, 덩굴은 조용히 하늘을 향해 뻗어 간다. 그 모습은 마치 말없이 삶의 비밀을 들려주는 듯하다.

“너도 나처럼 살아가렴. 오래 피어 있으려 애쓰지 말고, 오늘 피어야 할 자리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라.”

나팔꽃은 하루를 살고 지지만 그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 그래서 짧은 생애가 결코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시간을 다해 피어나는 모습이 눈부시다. 인생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얼마나 따뜻하게 피어 있었는가를 기억하는 삶.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꽃 한 송이로 남는 삶.

오늘도 도시의 아침 한편에서 나팔꽃은 조용히 피어난다. 그리고 그 꽃을 바라보는 나는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인생은 나팔꽃처럼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어진 시간 동안 빛을 향해 마음을 열고, 사랑을 품고, 감사하며 피어나는 것이라고. 그렇게 하루하루 꽃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생의 모습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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