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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옹이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4|조회수16 목록 댓글 0

옹이

숲길을 걷다가 문득 한 그루 나무 앞에 멈춰 선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몸통은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고 있고, 거친 껍질 위에는 크고 작은 옹이들이 박혀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흉터라 부를지 모른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면 옹이는 상처가 아니라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무는 태어나면서부터 옹이를 품고 있지 않다. 가지가 부러지고, 벌레가 파고들고, 거센 바람이 흔들어 놓은 자리마다 흔적이 남는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고, 아문 자리는 단단한 옹이가 된다. 그래서 옹이는 아픔의 증거이면서 동시에 회복의 증거이기도 하다.

사진 속 나무는 유난히 많은 옹이를 품고 있다. 몸통 여기저기에 불룩하게 솟아난 흔적들이 마치 인생의 굴곡처럼 보인다. 한때는 가지였을 자리, 상처였을 자리, 혹은 생존을 위해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그 안에 숨어 있을 것이다. 나무는 그 이야기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사람도 그렇다. 누구에게나 옹이가 있다. 실패의 기억이 옹이가 되고, 이별의 시간이 옹이가 된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슬픔도, 견디기 힘들었던 가난도, 밤새 울며 지나온 외로움도 시간이 흐르면 마음속에 작은 옹이 하나를 남긴다.

젊은 날에는 옹이를 부끄러워한다. 상처 없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더 반듯하게 살고 싶고, 더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 그러나 세월은 우리에게 다른 진실을 가르쳐 준다. 상처가 없는 삶은 없다는 것, 그리고 상처를 견뎌낸 사람만이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숲속의 오래된 나무를 보라.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가장 매끈한 나무가 아니다. 비바람을 견디고 번개를 맞고도 살아남은 나무가 더 깊은 그늘을 만든다. 그 나무의 몸에는 수많은 옹이가 남아 있지만, 사람들은 그 옹이를 흉이라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장엄한 세월의 훈장처럼 바라본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음은 매끈하지만 얕고, 세월은 거칠지만 깊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마음에는 옹이가 생긴다. 그 옹이들은 우리가 지나온 길의 이정표가 된다. 넘어졌던 자리, 울었던 자리, 다시 일어섰던 자리를 기억하게 한다.

어쩌면 사람의 품격은 상처를 얼마나 적게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상처를 어떻게 품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상처에 갇혀 평생을 원망하며 살고, 누군가는 상처를 품어 더 넓은 그늘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

나무는 자신의 옹이를 감추지 않는다. 숲 한가운데 우뚝 서서 그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상처가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가만히 나무를 올려다본다. 거친 몸통 위의 옹이 하나하나가 작은 별처럼 빛난다. 그 안에는 수십 년의 비와 바람, 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이 켜켜이 쌓여 있다. 나무는 말없이 가르쳐 준다. 상처를 없애려 하지 말라고. 상처를 견디며 살아낸 시간이 결국 자신을 가장 아름답게 만든다고.

그래서 옹이는 흉터가 아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다.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숲속의 나무가 오늘도 푸른 잎을 흔들며 하늘을 향해 서 있듯이, 우리 또한 마음속 옹이를 품은 채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상처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품고도 끝내 푸르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인생의 옹이는 아픔의 흔적이 아니라 삶이 남긴 가장 따뜻한 문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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