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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구름과 능소화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5|조회수20 목록 댓글 0

구름과 능소화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름이 깊어가는 계절, 푸른 창공 위로 흰 구름이 느리게 흘러간다. 구름은 늘 떠나고 있지만 떠나는 모습조차 아름답다. 머물지 않기에 더욱 자유롭고, 붙잡을 수 없기에 더욱 그립다.

그 하늘 아래 능소화가 피어 있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는 마치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꽃 같다. 주황빛 꽃잎은 뜨거운 햇살을 품고 있고, 넝쿨은 벽을 따라 천천히 오르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 어느 날 갑자기 피어나는 것 같지만 그 꽃은 오랜 시간 뿌리에서 힘을 길러 온 결과다.

구름과 능소화를 바라본다. 하나는 하늘을 떠돌고, 하나는 땅에 뿌리를 내린다. 하나는 자유를 닮았고, 하나는 기다림을 닮았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이상하게도 둘은 잘 어울린다. 능소화가 피는 계절이면 구름도 유난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 흰 구름은 바람을 타고 천천히 흘러가고, 능소화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꽃잎을 흔든다. 누구는 떠나고 누구는 남아 있지만 둘 다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다. 자연은 늘 그렇게 살아간다. 억지로 붙잡지 않고, 흐름을 거부하지 않는다.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한다. 젊음도, 사랑도, 행복도 영원할 것이라 믿으며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세상에 머무르는 것은 없다. 구름이 흘러가듯 시간은 지나가고, 꽃도 결국 지고 만다.

능소화는 그것을 알고 있는 꽃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욱 뜨겁게 피어난다. 언젠가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 꽃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늘의 햇살을 온전히 누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낸다.

어쩌면 행복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먼 미래를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는 여유, 그것이 삶이 우리에게 주는 작은 선물인지 모른다.

능소화 아래 서 있으면 어린 시절 여름날이 떠오른다. 골목 담벼락을 따라 피어 있던 주황빛 꽃,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 드리우던 나무 그림자, 멀리서 들려오던 매미 소리와 흰 구름이 떠가던 하늘. 시간은 흘렀지만 그 풍경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다.

기억도 구름을 닮았다. 붙잡으려 하면 멀어지고, 잊었다고 생각하면 어느 날 문득 나타난다. 그리고 추억은 능소화를 닮았다. 세월이 흘러도 마음속 담장을 타고 올라와 어느 순간 환하게 꽃을 피운다.

한낮의 햇살이 능소화 꽃잎 위에 내려앉는다. 꽃잎은 더욱 선명한 빛으로 물들고, 그 위로 구름 그림자가 천천히 지나간다. 마치 하늘과 땅이 서로 안부를 주고받는 듯하다. 구름은 떠나가고 능소화는 남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능소화도 조금씩 계절을 따라 움직이고 있고, 구름도 언젠가는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내려온다.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은 사실 같은 길 위에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구름은 흘러가고 능소화는 피어 있다.

하늘을 품고 싶은 꽃과 꽃을 내려다보는 구름은 서로 닿을 수 없지만, 같은 여름을 살아간다. 그래서 아름답다. 닿지 못해도 함께할 수 있고, 머물지 못해도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말없이 보여 준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능소화 아래 선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흰 구름 한 조각이 천천히 흘러간다. 꽃은 바람에 흔들리며 미소 짓고, 구름은 아무 말 없이 먼 곳으로 떠난다. 그 평범한 풍경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삶도 한 송이 능소화이고, 한 조각 구름이라는 것을. 피어나는 순간이 아름답고, 흘러가는 시간 또한 아름답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의 하늘과 오늘의 꽃은 다시 오지 않는 단 한 번의 여름으로 내 마음에 조용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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