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뻥이오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9|조회수14 목록 댓글 0

뻥이오

겨울 장터에는 겨울만의 소리가 있다. 생선 좌판에서 튀어 오르는 물소리, 국밥집에서 끓는 국물 소리, 손님을 부르는 상인의 목소리가 골목을 채운다. 그런데 그 모든 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 소리가 하나 있다.

“뻥이오!”

짧고도 우렁찬 그 외침은 시장 한복판을 울린다. 마치 오래된 종소리처럼 사람들의 귀를 두드린다. 아이들은 놀라서 웃고, 어른들은 익숙한 미소를 짓는다. 시장 한쪽에 자리 잡은 뻥튀기 기계는 오늘도 쉼 없이 추억을 튀겨 내고 있다.

커다란 철제 기계 안에 옥수수나 쌀을 넣고 압력을 높인다. 시간이 차오르면 주인은 능숙한 손길로 손잡이를 돌린다. 순간 굉음과 함께 흰 연기가 솟아오른다.

“뻥이오!”

그 소리와 함께 쌀알은 눈송이처럼 부풀어 오른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 몰려든다. 갓 튀겨 낸 뻥튀기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따뜻한 김이 겨울 공기와 섞인다. 그 냄새만 맡아도 마음 한구석에 묻어 두었던 어린 시절이 슬그머니 걸어 나온다.

어릴 적 장날은 작은 축제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던 것이 뻥튀기 아저씨였다. 압력을 재는 눈빛은 진지했고, 사람들은 폭발음이 날 순간을 기다리며 귀를 막곤 했다. 그런데도 막상 “뻥!” 소리가 나면 깜짝 놀라 웃음이 터졌다.

튀겨 나온 뻥튀기 한 봉지는 그날 최고의 간식이었다. 과자처럼 화려하지도 않았고 초콜릿처럼 달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지는 고소함은 어떤 간식보다 따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봉지를 안고 한 움큼씩 집어 먹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골목 문방구도 사라지고 장터의 풍경도 달라졌다. 아이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자라고, 과자는 세계 곳곳의 맛으로 넘쳐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뻥튀기만큼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사람의 삶도 뻥튀기와 닮아 있는지 모른다. 작은 쌀알 하나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뜨거운 압력을 견딘 뒤에는 몇 배로 커진다. 인생도 그렇다.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나면 어느새 마음의 크기가 자라 있다. 고난은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더 넓고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시장 한켠에서 뻥튀기 봉지를 바라본다. 수많은 쌀알이 서로 부딪히며 한 봉지 가득 담겨 있다. 혼자서는 작고 연약하지만 함께 모이면 넉넉한 풍경이 된다. 사람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다. 서로 기대고 살아갈 때 삶은 더욱 따뜻해진다.

요즘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간다. 손가락 하나로 세상과 연결되지만 정작 사람의 온기를 느낄 시간은 부족하다. 그런 시대일수록 시장의 뻥튀기 소리는 더욱 반갑다. 그것은 단순한 폭발음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 모으는 소리이고, 추억을 깨우는 소리이며, 잊고 지낸 정겨움을 되찾게 하는 소리다.

겨울 장터를 걷다가 “뻥이오!” 하는 외침을 듣는다. 순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돌린다. 아이도 웃고 어른도 웃는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낯선 사람들마저 같은 추억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나는 그 소리가 좋다. 그 소리에는 어린 시절의 장날이 있고, 어머니의 손길이 있고, 삶의 고단함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도 세상이 따뜻하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오늘도 시장 어디선가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진다.

“뻥이오!”

그 소리는 겨울 하늘로 퍼져 나가고, 우리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추억도 함께 부풀어 오른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