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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또 다시 대한민국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9|조회수17 목록 댓글 0

또 다시 대한민국

거대한 스크린이 경기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붉은 막이 드리워진 강당 안, 수백 개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누군가는 의자 끝에 걸터앉는다. 전광판 시계는 전반 추가시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멕시코와 대한민국, 팽팽한 긴장감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누군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다. 마치 이미 골이 들어간 것처럼. 그 뒷모습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담겨 있다. 기대와 설렘, 간절함과 믿음이 뒤섞인 표정 없는 환호. 축구를 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응원하는 마음의 몸짓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참 이상한 민족이다. 평소에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투고, 사는 지역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그러나 국가대표 경기만 시작되면 갑자기 하나가 된다. 붉은 유니폼 하나에 마음을 싣고, 이름도 모르는 선수의 발끝에 희망을 건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편이다. 어린 시절 동네 골목에서는 해가 지도록 공을 찼다. 가방을 던져 놓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녔다. 월드컵이 열리면 흑백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밤을 새우기도 했다. 비록 경기 규칙은 잘 몰라도 대한민국이 골을 넣으면 온 동네가 떠나갈 듯 환호했다.

그 함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화면 속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달리는 동안 관중석은 물론이고 거리의 카페와 식당, 강당과 가정집까지 하나의 경기장이 된다.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뛰고 있지만 응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뛰고 있다.

축구는 참 신기한 운동이다. 공 하나를 따라 스물두 명이 달릴 뿐인데 사람들의 감정을 이토록 흔들어 놓는다. 기쁨과 슬픔, 환희와 아쉬움이 짧은 시간 안에 반복된다. 인생과 닮아서일까.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우리 자신의 삶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화면 속 선수 한 명이 잔디 위에 주저앉아 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목을 만진다. 온 힘을 다해 뛰었기에 가능한 표정이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승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최선을 다한 사람의 땀방울이라고.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것은 운동장에서만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넘어질 수 있고 뒤처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더 내딛는 사람에게 희망은 남는다.

대한민국 축구가 늘 강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기술이나 체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끝까지 뛰고,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 우리는 그것을 투혼이라 부른다. 어느새 전반 종료 휘슬이 울린다.

강당 안에는 아쉬움과 기대가 함께 흐른다. 사람들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희망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문득 스크린 앞에서 두 팔을 들어 올린 응원자의 뒷모습을 다시 바라본다. 그 모습은 마치 대한민국의 자화상 같다.

때로는 지고, 때로는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 힘든 현실 속에서도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 그리고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대한민국을 외친다. 또다시 기대하고, 또다시 응원한다. 승패를 넘어 하나가 되는 이름. 대한민국. 그 이름이 오늘 밤도 우리 가슴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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