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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잉태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20|조회수15 목록 댓글 0

잉태

온실 한가운데 둥글게 몸을 웅크린 선인장들이 앉아 있다. 모래 위에 뿌리를 내린 채 수십 년의 시간을 품고 살아온 생명들이다. 둥근 몸체를 따라 촘촘히 뻗은 가시는 햇빛을 받아 금빛으로 빛난다. 멀리서 보면 거친 갑옷을 두른 전사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인다. 한 몸에서 작은 생명이 돋아나고 있다. 어미의 옆구리에서 자란 어린 선인장은 마치 품 안에 안긴 아이처럼 다정하다.

생명은 언제나 잉태에서 시작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느 순간의 품음에서 태어난다. 사람도 그렇고 나무도 그렇고 들꽃도 그렇다. 눈에 보이는 것은 탄생이지만, 그 이전에는 반드시 기다림과 품음의 시간이 존재한다.

선인장은 척박한 땅의 상징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해 물을 저장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시를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인함 그 자체다. 그러나 그 강인함의 중심에는 새로운 생명을 품어내는 부드러움이 숨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강함과 연약함은 서로 다른 얼굴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선인장은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을 몸에 새기고 있다. 깊게 파인 골은 지나온 계절의 기록이다. 타는 햇볕과 모래바람을 견딘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어미는 자신의 영양을 나누어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자신만 살아남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존재를 세상으로 밀어 올린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부모는 자신의 시간을 자식에게 나누어 준다. 교사는 제자를 키우기 위해 열정을 쏟고,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잉태한다. 사랑하는 마음 역시 새로운 희망을 품어내는 또 하나의 잉태다. 생명은 반드시 육체를 통해서만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꿈도 잉태되고, 믿음도 잉태되며, 아름다운 생각도 잉태된다.

우리는 흔히 꽃이 피는 순간에만 감탄한다. 그러나 꽃보다 더 위대한 것은 꽃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씨앗이 흙 속에서 어둠을 견디는 시간, 새싹이 땅을 밀어 올리는 시간, 어미가 자식을 품는 시간이 없다면 꽃도 열매도 존재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결실은 보이지 않는 잉태의 시간을 지나온 결과다.

선인장의 가시는 어쩌면 삶의 상처를 닮았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아픔을 겪는다. 배신도 만나고 실패도 겪는다. 그래서 마음에 가시를 세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경계를 만든다. 하지만 가시가 있다고 해서 사랑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선인장은 가장 날카로운 가시를 가졌지만 가장 정성스럽게 새 생명을 품어낸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다. 상처가 있어도 품을 수 있고, 아픔이 있어도 사랑할 수 있으며, 외로움 속에서도 희망을 키울 수 있다. 삶은 완벽해서 새로운 생명을 낳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품어내기 때문에 더욱 위대하다.

어린 선인장은 아직 작다. 하지만 언젠가 어미처럼 둥근 몸을 키우고 황금빛 가시를 두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을 품어낼 것이다. 생명은 그렇게 이어진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품고, 또 그 존재가 새로운 생명을 품으며 시간의 강을 건너간다.

가만히 바라보니 선인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생명의 가장 오래된 언어가 숨어 있다.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언어, 품고 나누고 이어가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라는 언어다.

잉태는 단순히 태어남의 시작이 아니다. 자신을 내어주어 다른 존재를 키우는 사랑의 행위다. 척박한 모래밭에서도 새 생명을 밀어 올리는 선인장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진정한 삶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선인장은 말없이 자라고 있다. 가시를 세운 채 세상을 견디고, 품 안의 작은 생명을 키우며 조용히 미래를 잉태하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삶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도 경건하다. 생명은 그렇게, 언제나 사랑을 품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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