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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라벤더 향기 속의 신부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22|조회수21 목록 댓글 0

라벤더 향기 속의 신부

라벤더 꽃밭은 언제나 꿈결 같은 풍경을 품고 있다.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보랏빛 물결이 일렁이고, 은은한 향기는 먼 기억까지 불러낸다. 그 꽃길 한가운데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 있다. 마치 동화 속에서 막 걸어 나온 주인공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떠 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무거운 구름이 산 너머에 걸려 있지만, 이상하게도 풍경은 어둡지 않다. 오히려 구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이 여인의 얼굴을 더욱 환하게 비춘다. 세상은 늘 그렇다. 완벽하게 맑은 날보다 구름이 머문 하늘 아래서 더 아름다운 빛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구름은 있다. 걱정과 근심, 지나간 상처와 아쉬움들이 마음 하늘을 덮어올 때가 있다. 그러나 그 구름이 영원히 머무는 법은 없다. 시간이 흐르면 틈이 생기고, 그 틈 사이로 희망이라는 빛이 스며든다.

여인의 미소를 바라보며 문득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멀리 있는 성공이나 화려한 명예만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는 마음, 바람 한 줄기에 감사할 수 있는 여유, 오늘을 사랑할 수 있는 평범한 순간이 행복의 본모습일지 모른다.

라벤더는 기다림의 꽃이라고 한다. 씨앗을 뿌린다고 곧바로 꽃이 피지 않는다. 긴 시간을 견디고 햇빛과 비를 받아들이며 계절을 통과해야 비로소 보랏빛 꽃망울을 터뜨린다.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 좋은 결실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눈물과 인내, 포기하지 않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순백의 드레스는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흰 드레스를 입는 이유도 순수한 출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은 결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꿈을 품는 날도, 오래된 상처를 내려놓는 날도, 다시 용기를 내어 걷기 시작하는 날도 모두 인생의 결혼식 같은 순간이다.

라벤더 꽃밭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한 송이 꽃은 작고 연약하지만 수천 송이가 모이면 장관을 이룬다. 사람도 혼자서는 미약하지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진다. 꽃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고 함께 피어나듯 사람도 함께 어우러질 때 가장 빛난다.

여인의 눈빛에는 설렘이 담겨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향한 기대와 희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어쩌면 인생은 설렘을 잃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꿈꾸기보다 익숙함 속에 머물고 싶어지지만, 마음속 작은 설렘 하나가 삶을 다시 젊게 만든다.

바람이 불어온다. 라벤더 향기가 들판을 가득 채운다. 향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사람의 삶도 그렇다. 아름다운 말 한마디, 따뜻한 배려 하나, 진심 어린 미소 하나가 향기처럼 누군가의 마음속에 오래 머문다. 결국 사람은 재산보다 향기로 기억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산 너머 구름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슬픔도 지나가고 기쁨도 지나간다. 청춘도 흘러가고 계절도 바뀐다. 그러나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라벤더 꽃밭의 신부는 마치 우리에게 말하는 듯하다.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라고. 아직 오지 않은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지나간 후회에 발목 잡히지 말라고. 꽃이 피어 있는 오늘을 바라보라고.

어쩌면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인지 모른다. 희망은 거대한 기적이 아니라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작은 빛 한 줄기인지도 모른다.

보랏빛 향기 속에 앉은 신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인생은 결국 한 편의 꽃밭을 가꾸는 일이라고. 어떤 이는 장미를 심고, 어떤 이는 해바라기를 심고, 또 어떤 이는 라벤더를 심는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심었느냐보다 얼마나 정성으로 가꾸었느냐일 것이다.

오늘도 라벤더는 바람에 흔들리며 향기를 내어 보낸다. 그리고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그 꽃들 사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피워 올린다. 꽃보다 향기롭고, 하늘보다 맑은 그 미소는 우리 마음속에도 작은 행복 하나를 심어 놓는다. 마치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한 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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