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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지는 꽃도 꽃이다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23|조회수16 목록 댓글 0

지는 꽃도 꽃이다

연잎 위에 꽃잎 하나가 조용히 내려앉아 있다. 연분홍 빛깔을 간직한 채 바람에 실려 온 꽃잎은 더 이상 꽃송이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모습은 쓸쓸하기보다 아름답다. 오히려 가장 고요한 순간에 가장 깊은 빛을 내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피어나는 꽃을 좋아한다. 봉오리가 열리고 화사한 꽃이 세상을 향해 얼굴을 내밀 때 탄성을 터뜨린다. 꽃축제도, 사진도, 시와 노래도 대부분 만개한 꽃을 향해 있다. 하지만 자연은 피는 순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꽃은 피고 지는 과정을 모두 품어야 비로소 한 생애를 마친다.

연꽃도 마찬가지다. 진흙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물 위로 올라와 마침내 꽃을 피운다. 그 아름다움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붙잡지만, 꽃은 언젠가 스스로 꽃잎을 놓아버린다. 욕심 없이, 미련 없이, 바람을 따라 흩어진다. 꽃잎은 그런 순간을 보여준다. 떨어졌지만 초라하지 않다. 오히려 연잎 위에 잠시 머물며 마지막 아름다움을 완성하고 있다. 생의 끝이 반드시 슬픔만은 아니라는 것을 조용히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 삶도 꽃과 닮아 있다. 젊은 날에는 피어나는 일에만 마음을 쏟는다. 더 높이 오르고 싶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 누구보다 빛나고 싶고, 세상의 중심이 되고 싶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인생은 피어나는 것만큼이나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놓아야 한다. 젊음도 놓고, 욕심도 놓고, 때로는 사랑도 놓는다. 붙잡고 싶지만 끝내 흘러가는 것들이 있다. 처음에는 그것이 상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안다. 내려놓음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연잎 위의 꽃잎은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않는다. 떨어졌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을 담담히 살아낸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문득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면 주름이 생긴다. 머리카락은 희어지고 걸음은 느려진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드는 일이 아니라 익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꽃이 피어날 때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꽃이 질 때의 품격도 있다. 젊음은 눈부시지만 노년은 깊다. 젊음은 화려하지만 노년은 넉넉하다. 많은 계절을 건너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향기가 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미소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오래된 나무 그늘 같은 따뜻함이 있다. 그들의 주름에는 살아낸 시간들이 새겨져 있고, 눈빛에는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온 흔적이 담겨 있다. 꽃잎 하나가 떨어지기까지도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비를 맞고 바람을 견디며 햇살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꽃잎 하나에도 계절 전체가 담겨 있다.

사람 역시 그렇다. 지금의 우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성공과 실패가 겹겹이 쌓여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때로는 상처가 우리를 성장시키고, 때로는 눈물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연꽃은 꽃잎을 내려놓아도 연잎은 여전히 푸르다. 생명은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꽃이 진 자리에는 연밥이 맺히고, 그 안에는 또 다른 생명이 자란다.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이별을 보여주면서도 희망을 남긴다. 꽃잎이 떨어지는 장면조차 아름다운 이유는 생명이 계속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래 피어 있기만을 원한다. 젊음도, 성공도, 사랑도 영원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꽃은 없다. 언젠가는 모두 지고 만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피어 있었는가가 아니다.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답게 질 수 있는가이다. 연잎 위의 꽃잎을 바라본다. 바람 한 줄기만 스쳐도 물 위로 떠날 것 같은 작은 존재. 그러나 그 작은 꽃잎은 묵직한 울림을 남긴다.

인생도 그럴 것이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만이 우리를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조용히 물러나는 순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향기로 남는 순간 또한 아름답다. 오늘도 어디선가 꽃이 피고, 또 어디선가 꽃이 진다. 하지만 피는 꽃만 꽃이 아니듯, 지는 꽃도 꽃이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자신의 빛을 잃지 않는 꽃이기에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연잎 위에 내려앉은 작은 꽃잎은 그렇게 말없이 생의 품격을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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