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왜 코끼리마늘 꽃일까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23|조회수26 목록 댓글 0

왜 코끼리마늘 꽃일까

초여름 들녘을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연보랏빛 공들이 초록 들판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코끼리마늘 꽃이다. 길게 뻗은 줄기 끝에 수백 개의 작은 꽃이 모여 하나의 둥근 세상을 만들고 있다. 마치 보랏빛 별이 땅 위에 내려앉은 듯 아름답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는 조금 우스웠다. 꽃은 이토록 우아한데 왜 하필 코끼리마늘일까 싶었다. 장미나 백합처럼 낭만적인 이름도 아니고, 코끼리라는 거대한 동물의 이름이 붙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연은 이름에도 이유를 숨겨 놓는다.

코끼리마늘은 일반 마늘보다 훨씬 크다. 땅속에서 자라는 알뿌리가 마치 코끼리의 몸집처럼 크고 묵직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꽃은 가볍고 화려하지만, 그 뿌리는 묵직하고 단단하다. 문득 사람의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꽃처럼 보이는 결과만 바라본다. 성공과 명예, 박수와 칭찬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깊은 뿌리를 내렸는지는 잘 보지 못한다. 꽃은 눈에 띄지만 뿌리는 보이지 않는다.

코끼리마늘 꽃은 그 사실을 가르쳐 준다. 화려한 꽃송이는 땅속 깊은 곳에서 자란 거대한 알뿌리 덕분에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이는 아름다움을 만든 것이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존경하는 사람들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과 인내가 있다. 아름다운 인생 뒤에는 숱한 실패와 눈물이 숨어 있다. 꽃은 하루아침에 피지 않는다. 오랜 시간 땅속에서 자신을 준비한 뒤에야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코끼리는 육중한 몸집을 가졌지만 결코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천천히 걸어도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코끼리마늘이라는 이름에서도 그런 여유가 느껴진다.오늘날 우리는 너무 빨리 결과를 원한다. 당장 성공하고 싶고, 금세 인정받고 싶고, 노력의 결실도 빨리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연은 늘 다른 이야기를 한다. 꽃은 자신의 계절을 기다리고, 열매는 자신의 시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들판에 피어 있는 코끼리마늘 꽃들을 바라본다. 수백 송이가 함께 피어 있지만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키가 조금 크든 작든 각자의 자리에서 바람을 맞으며 흔들릴 뿐이다.

사람들은 늘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는 더 높이 올랐고, 누구는 더 많이 가졌고, 누구는 더 화려하게 빛난다. 그러나 꽃들은 비교하지 않는다. 장미는 장미답게 피고,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답게 핀다. 코끼리마늘 꽃도 자신만의 모습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그래서 자연은 늘 자유롭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꽃송이는 하나의 우주 같다.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둥근 세상을 이루고 있다. 혼자서는 미약하지만 함께 모이면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사람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 동료가 모여 삶이라는 꽃을 완성한다. 때로는 서로 기대고, 때로는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 꽃송이 하나가 수많은 작은 꽃으로 이루어져 있듯 우리의 삶도 수많은 인연으로 이루어진다. 철학자들은 인간을 관계의 존재라고 말한다. 코끼리마늘 꽃은 그 사실을 조용히 보여준다.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릴 때 더 아름답다는 것을.

비가 내린 뒤 들판의 꽃들은 더욱 선명해진다. 보랏빛 꽃송이는 초록 잎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자연은 거창한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 자체로 진리를 보여준다. 왜 코끼리마늘 꽃일까. 처음에는 단순히 크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니 다른 의미가 보인다. 화려한 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이며, 빠름보다 소중한 것은 기다림이며, 혼자보다 아름다운 것은 함께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코끼리마늘 꽃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겉으로 드러난 꽃만 보지 말고 땅속의 뿌리를 보라고. 결과만 부러워하지 말고 그 뒤에 숨은 시간을 보라고. 그리고 자신만의 계절을 믿으며 천천히 걸어가라고. 초여름 들녘의 보랏빛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 모습은 화려하기보다 넉넉하고, 아름답기보다 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왜 코끼리마늘 꽃일까. 그리고 꽃은 대답 대신,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학을 피워 올리고 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