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은행나무 앞에서
가을이 끝나갈 무렵, 나는 칠곡의 작은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바람은 이미 겨울의 옷깃을 들춰 보이며 차갑게 스며들었지만, 햇살만은 이상하리만큼 따스했다. 마치 계절이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 흐르는 빛은 길가에 쌓인 낙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누군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작은 돌탑이었다.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오래 서 있는 돌무더기들은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누가 쌓았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소원을 빌었을지, 걱정을 내려놓았을지, 아니면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두고 갔을지 모른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사이로, 돌탑은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오래 서 있는 것에도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너지고 싶을 때에도 버티는 힘, 흔들린다고 해서 쓰러지는 건 아니라는 조용한 메시지가 돌 사이에 숨어 있었다. 내 마음도 그 돌탑처럼 세상의 무수한 바람을 견디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견딘다기보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 않고 받아들이는 법을 조금씩 배워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마침내, 산등성이 너머로 ‘말하는 은행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는 생각보다 훨씬 컸고, 훨씬 장엄했다. 늦가을의 잎을 거의 다 떨궈낸 가지들은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뿌리처럼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나무 껍질 사이 깊은 골은 세월이 말없이 새겨놓은 글자들이었고, 나는 그 앞에서 한동안 숨을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 아래에는 은행잎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이미 말라가는 노란 잎들이 나무의 근원을 감싸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서 연한 초록빛 새싹이 다시 돋아 있었다. 겨울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싹이 난다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 작은 잎은 꿋꿋하게 나무의 틈새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그 연약한 생명 앞에서 마음이 잠시 멈춰 섰다. ‘살아야겠다.’ 누가 들려준 것도 아닌데, 나무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말하는 은행나무라는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부부가 이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면 기적처럼 새 생명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 전해 내려온다. 그래서일까. 나무 앞에 서면 왠지 모르게 마음의 깊은 곳에서 오래 묵혀둔 질문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나는 어떤 삶을 바라며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소망을 품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디까지 들어갔다가 어디까지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
햇살이 나무 위에서 부서지고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가지 끝마다 고요가 매달려 있었다. 나는 안내판 앞에서 한 여인의 미소를 사진으로 담았다. 따뜻한 코트 자락이 빛을 머금고, 조용한 기쁨이 얼굴에서 피어올랐다. 그 미소는 마치 오래된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 같았다.
’그저 살아내고 있었을 뿐인데, 여기까지 왔다’는 듯한,
‘버티느라 참 고생 많았다’는 듯한, 그리고 ‘앞으로도 괜찮을 것’이라는 조용한 확신을 등 뒤에 지닌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는 어쩌면 늘 답을 찾으려고만 한다. 하지만 때로는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허락하는 일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말하는 은행나무는 바로 그 질문의 자리를 대신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나무는 말없이 묻는다. ‘당신은 어떤 시간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습니까?’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음속 어두운 구석들이 햇살에 하나씩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내 안의 겨울은 여전히 깊고, 아직 떨궈내지 못한 잎들도 많지만, 동시에 나도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잎을 틔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작게나마 움트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나무 아래 작은 돌 하나를 올렸다. 특별한 소망을 빌지는 않았다. 소망은 이미 나무가 알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의 나를 지켜줘서 고마웠습니다.’ 산길을 내려올 때, 바람이 나무 사이에서 느린 숨을 흘렸다. 마치 은행나무가 뒤에서 작게 말하는 듯했다.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말이 겨울빛 속에서 오래도록 내 마음을 밝혀주었다.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계절의 끝자락에서, 오래된 나무의 숨결을 품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