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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파도의 노래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23|조회수21 목록 댓글 0

파도의 노래

바다는 늘 노래를 부른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쉼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건넨다. 통영의 바닷가에 서 있던 그날도 그랬다.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고 있었고, 바다는 짙은 청색과 잿빛이 뒤섞인 얼굴로 출렁이고 있었다. 화창한 날의 바다가 웃음이라면, 그날의 바다는 깊은 생각에 잠긴 시인의 얼굴 같았다.

방파제 곁에 노란 부표 하나가 파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있었다. 물결은 밀려왔다가 물러가기를 반복했고, 부표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넘어질 듯 기울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고, 흔들리다가도 제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이 왠지 사람의 삶을 닮아 있었다.

인생도 그렇다.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파도가 찾아온다.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폭풍이 밀려와 모든 것을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파도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다. 노란 부표가 파도와 싸우지 않듯이 우리 역시 삶과 싸우기보다 삶을 견디며 흘러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다는 순간순간 표정을 바꾸었다. 작은 물결은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고, 거친 파도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에 부딪혔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악기의 연주 같았다. 어떤 음은 낮고 무거웠고, 어떤 음은 높고 경쾌했다. 파도는 쉼표 없이 연주를 이어갔다.

멀리 바다 위로 길게 뻗은 잔교가 보였다. 회색 하늘 아래 놓인 다리는 마치 세상과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처럼 보였다. 끝자락의 초록 등대는 묵묵히 바다를 지키고 있었다. 수많은 비바람을 견디며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삶에도 그런 등대 하나쯤은 필요하다. 길을 잃었을 때 다시 방향을 찾게 해주는 믿음, 흔들릴 때 중심을 잡아주는 마음의 불빛 말이다.

하늘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었다. 구름은 산 위로 흘러내렸고, 섬들은 안개 같은 빛 속에 잠겨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세상이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는다. 바다는 파도를 재촉하지 않고, 구름은 바람을 밀어내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제 시간에 흘러간다.

그런데 사람은 늘 서두른다. 더 빨리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다 문득 지쳐버린다. 통영의 바다 앞에 서니 그런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파도는 말없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빨리 가는 것보다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큰 소리를 내는 것보다 오래 노래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멀리 섬들이 어둑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등성이 위를 흐르는 구름은 거대한 양떼처럼 천천히 이동했다. 바다와 하늘, 섬과 바람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진 순간이었다. 그 안에서 인간은 아주 작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작기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작은 존재가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감동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파도는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 노래는 언제나 같다. 밀려오고, 부서지고, 다시 돌아가는 반복 속에서도 바다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어쩌면 삶의 의미도 특별한 성공이나 화려한 순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반복을 사랑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

해 질 무렵까지 바닷가를 떠나지 못했다.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고, 파도는 여전히 노래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물소리일지 모르지만, 그날 내게 들린 파도의 노래는 위로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는 말. 흔들려도 괜찮다는 말.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말. 통영의 바다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가장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파도는 오늘도 부서지며 노래하고, 그 노래는 바다를 건너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고 있다. 마치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한 편의 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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