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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틈에서 피는 꽃의 철학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23|조회수23 목록 댓글 0

틈에서 피는 꽃의 철학

강변 산책길을 걷다가 문득 발길을 멈춘다. 사람들은 넓게 펼쳐진 강물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지만, 내 시선은 길 가장자리의 작은 틈으로 향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만나는 좁은 경계선. 그곳에 하얀 개망초들이 줄지어 피어 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누가 돌본 것도 아니다. 그저 바람이 씨앗을 데려왔고, 꽃은 스스로 뿌리를 내렸다.

가만히 바라보니 그 모습이 참 신기하다. 흙 한 줌 넉넉하지 않은 곳이다. 햇볕은 뜨겁고 사람들의 발길은 분주하다. 비가 오면 물길이 되어 쓸려 내려가고, 바람이 불면 먼지에 묻힌다. 그럼에도 꽃은 피어난다. 아니, 그래서 더 아름답게 피어난다.

우리는 흔히 좋은 환경을 꿈꾼다. 넓은 터전, 풍족한 조건, 안정된 자리. 물론 그것들은 삶에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모든 사람이 그런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척박한 현실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어떤 이는 상처와 결핍을 안은 채 삶을 이어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인간의 삶은 꽃과 닮아 있다. 가장 힘든 자리에서 가장 강한 의지가 태어나고, 가장 외로운 시간에 가장 깊은 성장이 이루어진다. 마치 개망초가 콘크리트 틈에서 꽃을 피우듯 말이다.

생각해 보면 틈은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이 들어오는 문이다. 완벽하게 막힌 벽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작은 균열 하나만 있어도 빗물이 스며들고 씨앗이 내려앉는다. 그 틈은 부족함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마음속에 금이 간 자리가 있다. 실패의 흔적, 이별의 아픔, 후회의 기억, 이루지 못한 꿈들이 남긴 틈이다. 우리는 그것을 감추려 한다. 부끄러운 흠집처럼 여긴다. 그러나 어쩌면 꽃은 바로 그 틈에서 피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전통 공예 가운데 깨진 도자기를 금으로 이어 붙이는 기법이 있다. 금이 간 자리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더 빛나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품고 살아갈 때 더 깊은 아름다움이 생긴다.

꽃들은 서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마치 긴 길 위를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들 같다. 앞의 꽃이 뒤의 꽃을 끌어주지도 않고, 뒤의 꽃이 앞의 꽃을 밀어주지도 않는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피어나면서도 한 줄의 풍경을 만든다.

인생 역시 그렇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듯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한 사람의 미소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한 사람의 친절이 또 다른 사람의 하루를 밝힌다. 작은 존재들이 모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꽃을 보며 또 하나 깨닫는다. 꽃은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왜 나는 화단에 태어나지 못했을까?“라고 묻지 않는다. “왜 저기 장미처럼 화려하지 못할까?“라고 비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피어난다.

인간의 불행은 종종 비교에서 시작된다. 남의 길을 부러워하고 남의 성공을 바라본다. 하지만 꽃은 경쟁하지 않는다. 장미는 장미대로 피고,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피며, 개망초는 개망초대로 바람을 맞는다. 자연은 비교 대신 존재를 선택한다.

어쩌면 행복도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 더 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는 것. 그것이 삶의 본질일지 모른다.

강변 길 위의 작은 꽃들은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긴 가르침이 담겨 있다.

“조건이 부족하다고 꽃이 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삶은 언제나 틈을 만든다.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실패로, 때로는 예상치 못한 시련으로. 하지만 그 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씨앗은 그곳에 내려앉고, 희망은 그곳에서 싹튼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길가의 작은 꽃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나무만이 아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틈에서 묵묵히 피어나는 한 송이 꽃이 우리에게 더 큰 진실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인생이란 어쩌면 거창한 성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꽃을 피워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꽃은 언제나 화려한 정원이 아니라, 가장 척박한 틈에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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