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장벽을 넘어 독립을 외치다 -기생 김향화
일제강점기는 한민족 역사에서 가장 큰 시련의 시기였지만, 그 고난을 이겨내고 근대의 새 시대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숨은 주역은 여성이었습니다.
3·1운동에 앞선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등 역사적 주체로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들.
그 뒤엔 신분의 한계와 차별을 딛고 조국 독립에 헌신한 또 다른 독립 영웅- 기생이 있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생은 궁중 의식과 가무를 담당한 전문 여성 예술인으로, 시서화에도 능해 ‘해어화’로도 불렸습니다.
논개와 계월향처럼 기생은 예부터 충절과 기개를 이어왔는데 이것은 일제 강점의 풍파 앞에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국권을 빼앗은 뒤 관기를 해체하고 그들을 상품화하며 문화 선전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또한 역사적 장소인 수원 화성행궁 봉수당을 자혜의원으로 만들고 기생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원 최고의 기생 김향화는 이런 치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1919년 1월, 고종의 승하 후 덕수궁을 찾아 망곡례를 올리며 나라 잃은 슬픔을 눈물로 표현했고, 그 분노는 곧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3월 29일, 김향화와 30여 명의 기생들은 화성행궁 내 자혜의원 앞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만세를 외쳤습니다.
경찰서 앞에서도 당당히 외친 그들의 함성은 전국 각지의 기생 만세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다.
김향화는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되었습니다.
일제의 혹독한 고문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곳에서 유관순, 어윤희 등과 함께 여성 독립운동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2009년 독립운동가 김향화에게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그녀는 가석방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 살아야 했고, 그렇게 잊혀 버렸기 때문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가 몰랐던 위대한 역사의 주인공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링크 : https://youtu.be/eugZ8u6iO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