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틀을 깬 여성독립운동가, 남자현
1872년 출생한 남자현은 경북 영양의 양반집 규수였지만, 을미사변에 분개해 의병으로 나선 남편 김영주가 전사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소용돌이 빠집니다. 남자현은 유복자를 키우며 24년간 며느리와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합니다.
그러던 1919년, 서울에서 참여한 3.1 운동을 계기로 47세라는 늦은 나이에 평범한 삶을 뒤로하고 만주로 망명하여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길로 들어섭니다. 서로군정서에 가입한 그녀는 만주 일대에 교회와 여자교육회를 세워 여성을 계몽하고, 독립군 부상병을 간호하는데 헌신합니다. 1927년 길림 대검거 사건으로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을 구명하는데 앞장서기도 한 남자현은 ‘독립군의 어머니’라 불리게 됩니다.
이후 항일 무장투쟁가로 변모한 그녀는 독립단체의 화합을 위해 혈서를 쓰고, 일제가 만주에 괴뢰국을 세우자 자신의 무명지를 잘라 쓴 ‘조선독립원’혈서를 국제연맹에 보내 독립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또한 남자현은 사이토 조선 총독과 무토 전권대사를 직접 처단하기 위해 비밀 작전을 수행했는데, 작전 중 밀정의 밀고로 체포되고 맙니다.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옥중 단식 투쟁으로 맞서던 61세의 남자현은 병보석으로 석방된 후 독립 축하금을 유산으로 남기며, ‘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진다’라는 유언과 함께 불꽃같은 생을 마감합니다.
링크 : https://youtu.be/oZ4mCvkedWA?si=vOT_U_qZxqgWFOv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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