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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의 마음을 바꾼, 안중근

작성자cjdsustleo|작성시간26.03.26|조회수0 목록 댓글 0

적군의 마음을 바꾼, 안중근

한국 독립운동사를 대표하는 영웅 안중근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아시나요?
안중근은 적군마저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영웅이기 이전 휴머니스트였습니다.
 
1909년 하얼빈 의거로 뤼순 감옥에 입감된 안중근은 담당 간수 치바 도시치를 만나게 됩니다.
일본 제국주의 사상을 교육받은 치바는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했지만 인간 안중근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며 
그의 생각은 차츰 변화합니다.
재판정에서 이토의 15개 죄를 성토하고, 의병 투쟁 중 일본인 포로를 석방한 일화로부터 안중근이 진정 바란 것은 ‘인류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이 독립을 위해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자 치바는 큰 충격을 받습니다.
붓을 들고 소리 없는 투쟁을 시작한 안중근은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독립과 평화에 대한 신념을 200여 점의 글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것이 모두 일본인들의 부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흉악범이라 판결했음에도 그들 스스로 붓과 종이를 준비해 주고, 유묵을 평생 간직했던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 ‘평화’를 추구하는 안중근의 정신과 인품에 깊이 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의거 후 일제로부터 불합리한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 후 시신 인도 마저 거부당한 것은 안중근에 대한 일제의 두려움을 보여줍니다.
위대한 한 사람의 의지가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일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형 집행 직전 안중근이 남긴 마지막 유묵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주인은 치바였습니다.
생의 마지막 시간을 적국의 말단 군인인 자신에게 베푼 것에 치바는 크게 감동했고, 
안중근의 인류애 정신으로부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손발이 되어 살기를 거부하고 고향에 내려온 치바는 위험을 무릅쓰고 24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안중근을 추모하며 지냈고, 그의 유언에 따라 가족들은 대를 이어 그 뜻을 지켰습니다.
 
마치 안중근의 미완의 저서 [동양평화론]이 결실을 맺은 것처럼 양국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미야기현의 대림사는 두 사람의 우정을 기리며 매년 추도 법요를 열고,
지난 2월엔 일본 소재 유묵이 한국 땅을 밟으며 ‘안중근 의사의 유해 봉환’이란 역사적 사명을 위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 안중근이 그토록 꿈꾸던 내일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보통의 날’이 되었습니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빛나는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아직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 한마디를 조용히 되뇌어 봅니다.
 
“대한이 살았다”

링크 : https://youtu.be/Nw0RIGrdCMY?si=kHr8XKN9Z_-sqY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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