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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5.11.2.젊은이 예배(행 3:1~10, 사도행전 읽기(6)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

작성자최선을다하는삶|작성시간25.11.02|조회수68 목록 댓글 0

*2025.11.2.주일 젊은이예배 설교

*본문; 행 3:1~10

*제목; 사도행전 읽기(6)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

 

 

 

프롤로그. 흉내 낼 것이 없는 인생은 재미가 사라진다.

 

발달심리학자 ‘쟝 피아제’는 인간의 학습과정 속에 “지연모방”이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아이가 배우는 과정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학습된 것들이 내재되어지고 또 외부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가장 잘 키우는 방법은 보여주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어쨌든 사람은 “모방”하면서 성장한다. 이러한 인간이 더 이상 모방할 것이 없든지, 혹은 모방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면 성장은 멈춘다. 성장이 멈출 뿐만 아니라 삶의 재미도 싹 사라진다. 노인들이 자꾸 인생이 허무하고 재미없다는 것의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매일 모방하고 싶은 것, 모방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라. 삶이 매일 성장하고 또 재미지게 될 것이다.

 

 

 

1. 기적이란 무엇인가?

 

믿음에서도 모방은 중요하다. 모방하는 자의 복을 함께 누리기 때문이다.

 

오늘은 베드로의 삶을 모방해보자.

 

베드로는 예수 믿고 사도로 세워진 다음 첫 기적을 일으켰다. 바로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의 길을 가면 이러한 기적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와 마음으로 오늘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우리는 솔직히 삶에서 일상처럼 기적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아니 “일상”적이지는 않아도, “한번”이라도 기적을 경험하기를 소원한다. 그러나 잘 경험되어지지 않는다. 왜인가? 그것은 기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기적이란 무엇인가? 기적이란 ‘우리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아, 기적이 일어났으면...”

 

그런데 이 정의는 “기도의 정의”와 같다. 기도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이다. 그리고 맡긴 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기적이란 기대를 놓고 기도하여 받는 응답인 것이다. 기적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기도해야 한다. 기적이란 기도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아도 받은 기적이 있지 않는가’ 생각하시는가? 그런 기적은 그냥 흘러 보내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기적이 기적이 되려면 내가 인식하고 그것을 움켜쥐어야 한다. 기도한 자는 기적을 놓치지 않는다.)

 

 

 

2. 우리는 왜 기적을 바라나?

 

우리가 이렇게 구차하게(?) 기적을 바라는 이유는 우리의 연약성 때문에 그렇다. 연약한 우 리(불안한 우리)는 이 연약함(불안함)으로 인해 삶이 고통스럽다. 이 연약성은 결국 죽음으로 완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기적을 꿈꾼다.

 

 

그러므로 진짜 기적은 바로 “구원”이다.

 

연약하기에 늘 고통스러운 인생,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고통과 눈물이 없는, 죽음도 없는 천국백성이 되는 순간이기에 구원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이다. 당신은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기적을 이미 경험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은 지금 천국백성이 되었다.”

 

 

 

3.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

 

천국백성이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면 천국에서의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천국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은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성전 미문에서 있었던 사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건이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예수님을 따라 나라(로마로부터의 해방)를 구하겠다고 나섰지만, 예수님의 3년간의 가르침으로도 그를 변화시킬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길을 막아섰다가 “사탄”이라고 책망 받았고(마 4:10), 마지막 예수님 가시는 길 앞에서 주를 세 번이나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마 26:34이하).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4: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34이하)

 

 

그러나 그가 이제 구원받고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니, 기적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다. 당신이 정말 천국백성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면 이처럼 기적은 일상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대목에 도착한다. “그렇다면 과연 ‘천국백성의 삶’이란 무엇인가?”

 

 

베드로의 고백에 의하면 천국백성으로 사는 것이란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품고 사는 것이다.6절을 보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6)

 

수 십 번 이야기하지만 성경에서 이름이란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을 대변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품고 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할 때, 천국백성의 삶이 되고, 천국의 놀랍고 아름다운 역사들이 삶에 풍성히 나타날 것이다.

 

 

 

둘째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는 것이다.

 

성령 충만이란 늘 성령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삶의 모든 순간을 성령님과 함께 살고 함께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삶 가운데 성령의 놀라운 은사들이 풍성히 쌓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사는 사람들의 아주 기본적으로 정확한 모델이 바로 초대교회 사람들의 삶이다. ‘42~47절’을 보자.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2:42~47)

 

 

다시 말하지만 잘 배워야 한다.“사도의 가르침”(성경)의 배움 없이는 결코 천국백성의 삶을 살 수 없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삶의 지침이고, 성령의 충만함의 결과이다.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가 필요하다.이 안에서 구원이 완성되고, 구원의 완성자들은 반드시 이러한 공동체가 된다.

 

하나님의 가장 좋은 교제는 바로 기도이고, 기도가 하나님의 교제를 가능케 한다.기도한 만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안 만큼 기도한다.

 

 

 

4. 정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삶과 인격)으로 살자.

성령님과 늘 동행하며 살자.

잘 배우고, 사랑하고, 기도하며 살자.

 

이것이 천국백성의 삶이고, 이런 삶에 기적이 일상이 되는 삶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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