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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2025.11.16.주일 젊은이예배(행 4:13~22, 사도행전 읽기(9) 주님 앞에 의미 있고 행복한 삶 살기)

작성자최선을다하는삶|작성시간25.11.16|조회수110 목록 댓글 0

*2025.11.16.주일 젊은이예배 설교

*본문; 행 4:13~22

*제목; 사도행전 읽기(9) 주님 앞에 의미 있고 행복한 삶 살기

 

 

 

프롤로그. 의미부여와 리추얼(ritual)

 

내 생의 의미는 “인간 행복”이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목사로 부름 받았다.

 

목사로서 나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산다. 그것이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그렇게 확신한다.) 그래서 목사로서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래서 “상담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인간이 조금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은 이처럼 이러한 “내 삶의 의미인 인간의 행복”을 볼 때이다. 나의 목회 사역을 통해서, 나의 상담을 통해서, 나의 강의를 통해서 사람들이 행복해 할 때, 나는 무지 행복하다.

 

 

이것이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지는 “의미부여”이다. 의미부여를 잘 하면 인생이 행복해진다. 동일한 일상을 살아도 의미부여를 습관으로 만들어가는 삶은 틀림없이 행복하다.

 

20여년을 목회하면서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을 잘 보지 못했다. 이쁜 여자,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한 사람도 행복하지 않았다. 다 아프고 힘들다. 그런데 유독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내 삶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래야 나는 행복하다. 그래서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련다. 잘되든 못되든 간에.

 

행복해지고 싶은 여러분들도 지금 이 순간, 당신 삶의 의미를 부여하라.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도 자신이 그 지옥 같은 나치 수용소를 이길 수 있었던 힘도 바로 긍정적인 “의미부여”라고 고백한다. 이후 그는 이것을 정신치료에 도입해서 “로고테라피”라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이러한 의미부여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이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바로 “리추얼”(ritual)이다. 즉, 스스로가 어떤 의미부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의식적 행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미부여와 리추얼로 당신의 행복을 지켜라!

 

 

 

1. 영적 의미부여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면서(치유하면서) 의견이 분분해진다.

 

 

안 그래도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그의 잔당을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유대 공회는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러나 베드로를 처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기적의 열매인 앉은뱅이가 버젓이 서 있기 때문이다. ‘13~16절’을 읽어보자.

 

“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4:13~16)

 

 

믿음은 이처럼 “증거가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와 병행하여 이야기하자면 믿음이 행복해지려면, 그리고 믿음이 진정으로 믿음으로서의 가치와 능력을 가지려면, “증거를 통한 의미부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성경적 용어로 “에벤에셀”이라고 부른다.

 

믿음의 에벤에셀의 돌이 없으면,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다. 그리고 세상으로부터 믿음의 인정을 받기도 어렵다.

 

 

믿음의 증거를 소유하라. 이는 역시 도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도전이 없으니 열매도 없고, 열매가 없으니 믿음이 계속해서 박제(생명 없이 겉모양만 가지고 있음)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영적 도전은 18절의 이야기처럼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는 삶‘을 말한다.

 

우리가 우리 삶 속에서 예수의 삶과 인격을 드러낸다면 우리 스스로 증거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 증거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둘째로 믿음은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삶”이 되어야 한다.

 

지난 주일 이야기처럼 하나님의 보시는 나의 “Me”가 바로서야 한다. ‘19~20절’이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4:19~20)

 

베드로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이 주는 ‘무엇’을 받으려면 사람의 뜻을 쫓으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을 따르면 된다. 당신은 무엇을 쫓아가고 있는가? 우리가 세상의 일과 사람을 말만 쫓아가지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해가지 않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현재는 정말 잠깐이다. 이 찰라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 시간을 기억하며 사는 것이 바로 “영적 의미부여”이다.

 

이를 신학에서는 “종말론적인 신앙”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가지가 실현될 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21절’이다.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4:21)

 

이것이 바로 영적 의미부여를 통해 영적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자들의 결말이다.

 

 

우리 이렇게 살자!

 

늘 자신의 삶에 의미를 찾으면서, 혹은 부여하면서.

영적으로도 증거를 소유하고, 하나님 보실 때 칭찬과 인정받을 것을 기억하고

현재의 영적 리추얼적인 삶에 가치를 부여하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믿으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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