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작은 목소리로 얻는 큰 행복
어느 날 한 가톨릭 신자가 고해(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말하고, 신을 대신하여 사죄 받는 것)하기 위해서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신부님, 저는 지난 30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살아왔습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의심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주세요.”
그런데 신부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건 죄가 아닙니다. 손해입니다.”
“손해라구요?”
“아무렴요. 30년이란 귀한 세월을 손해 본 셈이지요. 30년 동안 의심만 하느라 허송하여, 일단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면 받게 되는 기도의 도움, 평화와 행복 그리고 은총, 등등. 이렇게 좋은 것들을 하나도 못 누리셨잖아요? 그러니까 손해를 보신 거지요.”
세상에는 아직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왜 신은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나타내보이지 않는 것인가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차원을 연구하면서 ‘11차원’까지 밝혀냈다고 합니다. 신은 과학자들이 밝혀낸 그 차원의 너머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3차원’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신을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2차원적인 개미가 3차원적인 코끼리를 만나면, 절대로 코끼리를 인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개미에게는 코끼리는 그저 조금 부드러운 바위일 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은 “신은 숭배의 대상이지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으며, 20세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카를 힐티’는 “신은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설명된다면 신이 아니다. 신은 믿고, 그 믿음으로 경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마디로 신은 ‘부분적으로’ 경험해서 알 수 있는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생텍쥐베리는 《어린왕자》에서 유명한 이야기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어떤 것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건 오직 마음으로 볼 때이다.”
모든 철학자들이 경배하고, 모든 과학자들이 아주 조금 발견한 신은, 확실히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믿으면” “경험할 수 있는” 대상입니다.
하지만 이 믿음으로 신이 주는 놀라운 축복이 있습니다. “신에게 기도함”으로 우리 삶을 새로운 힘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신이 주는 평화와 행복”, “신이 주는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리고 이제 여러분 마음속에 언제나 남아있는 신을 향한 그리움으로 말씀해보시지 않겠어요.
“당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당신을 경험하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주는 놀라운 은총들을 누리며 살게 해주세요.”
이 시간, 이런 작은 목소리가 여러분의 삶을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인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