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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율 <'56번 거리의 뫼르소' MV 감상 후기> 이벤트 참여

작성자피카소|작성시간26.06.11|조회수44 목록 댓글 0

오늘 음율의 노래를 들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처음 글을 읽었을 때는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무었인지 스스로 고민했다.

하지만 카뮈의 시지프 신화 라는 철학서와 페스토를 읽고 MV를 보자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심지여 환상설화 까지도 말이다. 
뫼르소가 등장한 이방인이라는 소설의 작가인 카뮈가 꾸준히 말하고 있는 사상이 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즉 부조리와 이에 맞서는 반항이다.

부조리는 무엇인가?

카뮈의 철학은 부조리에 대한 인식을 첫째로 둔다. 여기서 말하는 부조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조리가 아닌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인간의 열망과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는 무의미한 세계 사이의 충돌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는 시지프 신황에서 시지프를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으로 이야기한다. 매일 반복되는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반항은 무엇인가?

카뮈는 부조리에 대한 반항을 처음에 두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는 육체적 자살이다

둘째는 철학적 자살이다.

여기서 철학적 자살이란 종교, 이념등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카뮈는 이 두가지 도피를 비겁한 짓이라 말한다. 이 반복되는 부조리한 세상에 정신차리고 대치하는 것
그것이 카뮈가 말하는 반항이다.

카뮈는 또한 사람과의 연대를 중시했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보라 소설에서 리외와 보건대 사람들은
이길수 없는 부조리한 페스트라는 질병으로 부터 종교나 이념으로 도망하는 것이 아닌
환자를 계속해서 돌보며 현실과 싸우는 연대의식을 보여준다.

즉 카뮈의 반항은 독백이 아니라 연대임을 의미한다.

 

소설과 뮤비를 보면 56번 거리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반복되는 일상과 그 곳을 살아가는 뫼르소가 계속해서 찾아가는 곳 마치 시지프의 산의 아래와도 같은 곳처럼 느껴진다.

(56인 이유는 주 56시간 즉 일주일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원고지는 글을 쓸 때 한자 한자 정해진 칸 안에 정확히 집어넣어야 하는 규칙이 있다. 부조리의 세상을 살아가는 뫼르소는 이러한 세상으로 부터 안정을 얻기 위해 강박적인 삶을 사는거 같다.

부조리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또한 원고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우기도 찢어비리고 하는 자신이 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하지만 소설에서의 갈매기와 MV에서의 자신의 원고지를 먹어버린 바다는 고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현실은 원고지에서 벗어난 부조리한 세상이다.

 

뫼르소는 이 현실로 부터 도망간다. (철학적 자살)

 

결국 뫼르소는 세상을 멈춘 후 더이상 자신의 원고지에 글을 적어 내려가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뚫고 들어와 뫼르소를 바라보는 여인은 메시지를 전한다.. 원고지를 뚫고 나와 현실을 살라고

 

 

이번 작품은 지난 환상설화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환상설화의 주인공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싸우는 느낌이라면 이번 뫼르소는 부조리한 세상으로 부터의 도피를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인은 뫼르소를 바라본다. 어서 그 부조리한 세상을 깨고 나와 반항하라고 즉 노래를 듣는 우리들이 뫼르소며 메시지를 던지는 여인이 음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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