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분이 제 최애 장면이었어요. 아이가 진심으로 활짝 웃는 마지막 부분 같았거든요.
이번 후기는 좀 다르게 써보려 합니다. 전까지는 뮤비 사진을 많이 넣었는데 이번에는 줄글로 후기와 해석을 남겨보려고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이번 곡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모티브로 만들어 졌어요. 이 책은 좀 특이합니다. 주제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거든요. 대부분의 책은 읽으면 주제가 바로 나옵니다. "착하게 살아라, 신을 따라라" 대게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이방인은 좀 다릅니다. 내용은 있는데 주제가 숨겨져 있어요. 그리고 저는 이번 곡과 뮤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곡부터 보면 가사에서 뭐라고는 하는데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데?"가 없는 느낌이더라고요. 화자의 행동이 없는 건 아니예요. 부조리를 부당하게 여기기도 하고 노래도 하죠. 근데 화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방인을 대입하면 비슷한 주제가 나오지만 직관적인 주제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이 부분은 뮤비에서도 나타납니다.
사실 뮤비에 대해 주제가 숨겨졌다는 느낌은 바람잡이부터 받아왔어요. 이번 곡에서 노래에도 그러한 점이 적용되며 더욱 확실하게 느낀 거죠. 뮤비를 보면 가사나 소설을 모른다고 가정했을 때 내용을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아이가 눈초리를 받다가 갑자기 물에 비친 자신을 돌로 내리 찍는데 눈을 떠보니 어떤 공간으로 이동하고 어떤 기계장치의 톱니바퀴를 빼내든다." 이게 바로 제가 직관적으로 느낀 뮤비의 인상이었어요. 즉, 내용의 나열이죠. 뮤비가 싫다는 게 아닙니다. 이건 제가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시사했죠. 일단 제일 먼저 한 것은 소설 읽기였어요. 결국 뮤비의 스토리는 소설에도 담겨있을 테니 이런 선택을 한 것이었죠. 그런 다음에 다시 이방인을 정리했어요. 그러니까 뮤비가 보였습니다.
뮤비와 소설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면 하나의 간단한 추측을 하나 할수 있습니다. "소년은 이방인이다." 그럼 소년이 뫼르소인 걸까요? 음... 글쎄요? 소년과 뫼르소에는 차이점이 꽤나 많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이해하는 데에는 뫼르소를 사용할 수 있겠죠. 어찌됐든간에 둘은 이방인이니까요. 그럼 우리는 이 글을 읽을 때 한 가지를 염두하면 됩니다. "소년과 뫼르소는 다르지만 소년을 이해하는 용도로 뫼르소를 대입할 수 있다. 뫼르소가 중심은 아니다" 그럼 한번 가보죠.
소년은 뮤비에서 다른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이죠. 일단 소년만이 웃고 있어요. 아, 물론 다른 사람들도 웃기는 합니다만 모두가 인상을 찡그릴 때 조차 웃는 사람은 소년밖에 없죠. 흥미로운 점은 뮤비 중반부에서는 모두가 웃는데 소년만이 얼굴을 찡그립니다. 또 소년만이 목적을 가지고 길을 걷습니다.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이 걷지 않느냐,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씬에서도 걷지 않느냐고 할수 있어요. 그런데 요점은 목적에 있습니다. 소년은 뮤비 전반부에서 걷는 모습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눈을 보면 갈 곳을 명확하게 보고 가고 있죠. 전 이걸 소년만이 삶의 목적과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은 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면만을 보며 걸으니 말이죠. 마지막으로 소년만이 눈에 생기가 있습니다. 뮤비를 보면 다들 생기가 없는 동태눈을 하고 있지만 소년만이 빛나는 눈을 하고 있죠. 이건 방금 말한 삶의 목적과 의미로도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눈에 대해 할 말이 생깁니다.
뮤비 후반부를 보면 소년은 눈에 생기를 잃어요. 반짝이던 안광은 사라지고 버거워 하기 시작하죠. 전 이걸 사회의 압박속에 자신의 신념이 깨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신념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라 시 쓰는 걸 좋아하고 무리에 섞이려 노력했던 소년의 모습이 바로 신념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소설을 보면 저때 쯤 소년은 무리에 섞이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자신을 사회와 격리시키려 해요. 자신이 썼던 시를 못 알아보기도 하고요. 이건 이방인과 반대입니다. 소설 이방인에서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할 만큼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뫼르소가 소설 후반에서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소년에게 다시 돌아갈 계기가 없던 게 아닙니다. 바로 바람잡이의 스토리가 그것이죠. 소년은 바뀐 이후 정차의 시간에 들어온 차오늘과 피차일반 여주(편의상 차일반으로 말할게요)를 보고 호기심을 느끼죠. 왜 저렇게 종이 한 장에 발악하는 지 소년은 의문을 느끼고 이내 그 이유가 그들이 삶의 의미를 잃었기에 그 종이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단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정차의 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건물이 무너지는 순간에 시간을 멈춘 것이죠. 진짜 구원인 지는 모르겠지만 소년은 이것을 구원이라 불렀죠. 하지만 한빛만이 멈추지 않고 소년을 마주하죠. 이거 되게 익숙하지 않나요?
바로 환상설화입니다. 소년을 소녀에 한빛과 차오늘, 차일반을 파란이에 대입해 보죠. "모종의 이유로 자신만의 구원이 담긴 세상을 만들고 거기에 이물질이 들어온다." 정말 놀라울 만큼 비슷하지 않나요? 그럼 우리는 예상이 가능해 집니다. 소년을 나머지 세 사람이 바꾸어 놓을 것이란 예상을 말이에요. 그건 정규가 나오면 알수 있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에 답하고 후기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 뮤비의 아니, 어쩌면 이 노래의 주제는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방인은 필연적으로 의미를 잃고 의미를 잃은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의미가 찾아온다. 그걸 잡을 지 잡지 않을 지는 오로지 이방인에게 달려있다." 늘 좋은 노래, 좋은 뮤비, 좋은 소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