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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의 아파트는 적층의 집합주택으로, 2층 이상의 주택에 서로 다른 세대들이 공동으로 모여 사는 것을 말한다. 서양에서 시작된 아파트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어서 기원 무렵의 제정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믿을 수 없겠지만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날 무렵 로마 시내에는 이미 아파트가 즐비해 있었다.
인슐라(insula)라고 불렸던 당시의 아파트는 5층 정도의 높이에 1층에는 상가가 있고 2,3,4,5층 에 살림집이 있어 마치 요즘의 상가주택과 비슷한 주상복합 건물이다. 당시 로마는 빈부격차가 심하여 부자들은 도무스(domus)라고 하는 널찍한 단독주택을 짓고 살면서 세를 받기 위한 목 적으로 불량 인슐라를 지어 문제가 많았다. 날림공사도 많았을 뿐 아니라 세를 많이 받기 위해 무리하게 8층의 고층건물을 지었다가 무너지는 사례도 있었고 부동산 투기가 사회문제가 되기 도 했다.
그러다가 A.D 64년, 유명한 로마 대화재가 발생한다. 화재는 6일이나 지속되며 시내의 절반을 태워 버렸고, 이에 네로 황제는 시가지를 새로 정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모든 시가지 는 격자형으로 만들되 각 블록에는 소방도로를 두며, 블록 내의 인슐라는 부실을 방지하기 위 해 7층 이하로 건축할 것, 화재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인슐라는 서로 30피트의 이격거리를 둘 것, 각 인슐라는 화재 시에 다른 세대로 대피할 수 있도록 베란다를 설치할 것 등등이었는데, 이 것들은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그는 최초의 소방법과 도시계획법, 건축법을 확립한 황제였으나, 시가지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위한 호화궁전을 지어 실각하고 폭군의 이미지만 남았다. 이렇듯 제정 로마시대에는 아 파트의 시원적 형태라 할 수 있는 인슐라가 즐비하였으나, 제국의 쇠퇴와 함께 인슐라도 점차 사라지게 되고 중세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아파트는 당분간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근대적 아파트가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은 19세기 영국에서이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과 함께 신흥 공업도시들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일자리를 찾아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몰리면서 심각한 주택난이 발생하였다. 인류 역사상 일찍이 유래를 찾아볼 수 없었던 지하 단칸셋방이 등장하였 고, 서너 명의 아이가 딸린 일가족이 화장실과 세면 설비가 따로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거주 하였다.
지하셋방은 햇빛이 들지 않아 습기가 차고 축축하기 때문에 폐렴에 걸리기 쉽다는 점에서 문제 가 있다. 상하수도가 갖추어지지 않은 비위생적인 생활 환경과 빈곤으로 인한 영양실조는 폐렴 과 페스트, 콜레라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의 온상이 되어 가난한 목숨을 숱하게 앗아갔다. 이에 영국 정부에서는 도시빈민에게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자는 취지 아래 건축조례를 통해 집합주 택을 널리 보급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근대적 아파트의 시초이다.
당시의 건축조례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각 세대마다 상하수도 설비와 화장실을 갖추는 것과 풍부한 채광을 통해 주택 내에 습기가 차거나 곰팡이가 생기지 않도록 일조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일조권이 조망권과 연계되어 삶의 질과 관련된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 영국에서 그것은 생명과도 맞바꿀 정도로 절실한 것이었다.
로마제국의 인슐라나 영국의 집합주택등과 같이 아파트가 지어진 이유는 도시 서민들에게 양 질의 주택을 공급하자는 것이며, 개인주택에서 갖추기 힘든 방법시설, 어린이 놀이터, 쉼터 공 원, 노인정 등을 공동으로 마련하여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파트는 아파트먼트(apartment)의 약칭으로, 이는 불어의 아파르트멍(appartment)에서 유래 한다. 전통 한옥에서 사랑채와 안채로 구분이 되듯이, 17,18세기의 프랑스 대저택들도 몇 개의 공간군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 대식당-갤러리-객실-서재 등과 같이 공적인 공간으로 묶 인 아파르트멍 데 파라데(appartment de parade, 과시적 공간), 혹은 대기실-가족실-침실-의 상실 등과 같이 사적인 부분으로 묶인 아파트르멍 데 소시에테(appartment de societe, 친밀 한 공간) 등이라 한다.
이와 같이 주택 내에서 성격이 다른 부분으로 나뉜 공간군을 묶어 아파르트멍이라 하는데, 이 후 공동주택에서 개별 세대를 말하는 아파트먼트로 불리게 된 것이다. 즉 아파트먼트란 거대한 공동주택 내에서 개별로 나뉘어진 작은 집을 말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a part ment 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아파트의 정식 명칭은 공동주택이다.
지금 현재 우리의 아파트가 과연 a-part-ment 인지는 조금 의문이다. 우리 아파트는 33평형이 다 라고 할 때의 33평형에는 이십 몇 평의 전용 공간 외에도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비롯하여 놀 이터, 앞마당, 주차장 등을 비롯한 공용공간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도 분명 내가 평당 얼마씩의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공간이지만, 아무도 그것을 내 집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집안에는 실크벽지에 원목 바닥재를 비롯하여 온갖 인테리어로 치장을 해 놓고도 현관문을 열고 나온 순 간 아무도 복도에 떨어진 휴지 한 장 줍지 않는다. 집안에서는 매일 쓸고 닦는 것도 모자라 공기 청정기가 돌아가지만, 이중 삼중의 잠금장치로 굳게 닫힌 육중한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복도가 아무리 더러워도 비질 한번 하는 일이 없다.
아파트는 그 특성상 이웃세대끼리 벽과 벽을 공유하며, 아래위로 바닥과 천장을 서로 공유한 다. 오천년 역사이래 이렇듯 이웃집과 바로 붙어살기도 아파트가 처음이지만, 그 이웃과 서로 모른체하며 살기도 아파트가 처음일 것이다. 아파트는 정식 명칭은 공동주택, 그 이름에 걸맞 게 진정한 의미의 공동주택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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