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추석이다
모두 차례상앞에서 온가족이 마주앉아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시간이다. 어제 미국에서 온 동생과 춘천의큰딸 내외와같이 포천 부모님게 성묘하고 바로 춘천 김유정문학관으로 갔다. 문학도였던 남동생이 더 좋아 했다. 다시 소양강 스카이워크로 이동하여 강바람 쐬고 유명한 숫불닭갈비로 민생고 해결하고 춘천 딸네 집에서 하루를 보냈다.다음날 아침 7시전에 딸내외의 남춘천역까지 배웅으로
아이티엑스 청춘열차로 화려한 기차여행을 이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동생이 궁금해 하던 자기부상열차로 용유역에 도착하여 바다를바라보며 해송길도 걸었다.비릿한 소슬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시원해!를 연방 하면서 잠진도에 도착했다
마침 떠나려는 여객선을 붙뜰기라도 한듯 뛰여서 승선하였다
하나도 변하지 않고 새우깡을 쫒아 날아드는 갈매기떼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정신 없는 사이 떠나자마자 선착장에 닿았다. 철석철석 물이 빠지는 세멘트길을 나서니 마을버스가 기다렸다. 차연결이 착착진행되여 기다림없이 움직이게 되여 기분이 좋았다. 한참을 꼬불꼬불 섬산길을 돌아 소무의도에 내렸다. 마침춘천에서 과일과 차한잔으로 간단한 식사로 출발하였으니 배꼽시계가 울려댔다. 동생과 손을잡고 식당으로 들어가니 냄새만 맡어도 요기가 되는 순간이다. 기분좋다.
요즘은 끓인음식이 좋을것 같어 자주먹던 해물칼국수는 미루고 병어생선조림으로 정했다. 동생은 맛있다맛있다 입맛을 다시며 공기밥 두그릇.뚝딱. 밥도둑 게장이 무색하였다. 커피한잔으로 입을 가시고 다리를 걸어서 건너 소무의도 해송 오르막길에.가슴속까지 후련한 호흡으로 정상에 올라 서 정자에 잠깐 숨을 돌리다. 다시솔밭을 내려오며 가깝게 보이는 해녀섬을 바라보며 지난 시절 해녀들의 고단했던 생활을 주고 받는다.우리는 얼마나 여유있는 생활인가. 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아직남은 생활의 여유. 미련을 잠시나마 잘라버린다. 철석철석 부딪치는 작은 돌맹이에 의지를 하고 남아 있던 갱이(소라같은못양 )를 잡았다가 다시물속에 던져주며 넘어질세라 돌더미 위를 걸었다. 모래밭을 실컷 걸었다. 보고싶던 동생과의 만남이 시간가는줄 모르고 뜨거운 햇볕에도 아무런 저항없이 긴시간을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바다박물관에도 잠시 들려 보았다
볼것이 더 있어도 지루한줄 모르고 다리가 아퍼도 다 잊고 그냥 걷고 싶었을 것이다. 돌아 오는 길엔 하나개해수욕장과.바다위에 떠있는 실미도를 바라보며 지나왔다. 털썩대는 버스속에 앉을틈없이 그대로 서있어도 좋았다.동생은 누나의 다리 아플 걱정이 태산이다.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치는 곳마다 설명과 추억을 이야기 했다. 뱃터에 도착했다. 올때 처럼 인천공항으로 갔다. 시원한곳에서 좀 쉬었으나 그 잠간이 피로를 풀기엔 넉넉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가 남매의 사랑이 머물러 있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좀 기다려
인천지하철에 편히 앉아 스마트폰으로 아들 딸 셋등 차례차례 통화했다. 막내딸집에 다모이기로 했다. 검암에서 내려 인천지하철2호선으로 갈아 타고 동생한데 자랑겸 해설을 늘어 놓는다
25년전에 김포공항을 떠나 미국이민을 보내던 그때의 감정이 아직도 남아 가슴이 설렁시려온다. 반백이 된 동생이 노인으로 변해 버린 누나를 염려하며 손을 꼭 잡는 순간이 감개무량하였다. 인생의 참 맛이랄까? 오묘한 심정이다. 저녁은 동생.외삼촌. 조카들. 손주들. 거실에는 삼촌을 맞는 반가움과 사랑과 정이 꽉 차있었다. 밤이 새는줄 모르는 동생의 입담.재담. 가족들 소식들에 그대로 아침을
맞는다. 어제 성묘를 가족을 제외하고 다시 4식구가
그대로 매형성묘를 함께하며 지난 날들을 회상했다.
다만 중국에 아들네 식구들이 다녀간지 얼마 않되여 빠진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스마트폰이 있으니 통화하며 사진을 보내고 큰시름을 달랬다. 이렇듯 올 추석은 내가 제일 기쁘고 만족했다.
누나의 나이가 들고보니 해마다 사업차 중국에 가는 시간을 늘려 추석 이맘때로 3개월전에 비행기표를 예매했다고 한다.6살 나던해 엄니 가시고 3년후 아버지 가시고 수많은 고통과 우여곡절속에 미국으로 갔으니 오늘과 같은 날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선한끝은 있고 악한끝은 없다는 옛어르신들의 말씀이 이제 어떤 뜻이었나 조금 내게 맞추워 합리적으로 생각을 해본다
올해 큰딸 상견래를 한다는 동생이 아직도 내안에는 걱정을 해야 하는 동생인데 이렇게 훌쩍 변해버린 세월을 어쩌지 못해 내가 동생의 보호를 받는 누나가 되여 버렸다. 그래도 건강하게 생활하는 나를 보고 좋아하는 동생을 보며
내가 더 기쁘고 행복했던 올 추석이었다. 우리 모두 욕심 버리고 지금처럼 서로를 염려하고 배려하는 가족이 되자구. 건강하게 잘살아 보자구. 동생가족.우리가족 모두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