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연기의 서두 부분을 이루는 무명-행-식은 그 자체로 십이연기의 진행 과정이기도 하지만 연기 항목 전체를 전개시키는 기본적 바탕 요소들입니다. 그러니 부처님은 무명-행-식, 이 세 항목의 세력을 졸연히 없애 버릴 수는 없으나 약화시킬 수는 있으니, 수행자는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촉-수-애-취 또한 방일하지 말고 힘써 수행해서 약화·소멸시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유(有)에 대한 탐욕에 사로 잡혀 유의 흐름에 든 자는 이 진리를 깨닫기 힘들다고 설하십니다. 요컨대 앞서 말한 두 가지 관찰의 원리를 알고 수행하면 ‘심해탈을 이룰 뿐 아닌라 혜해탈까지 이루어 마침내 윤회를 끝낼 수 있고, 태어남고 없고 죽음도 없다’고 단언하십니다.
‘부처님은 왜 십이연기에서 육근(六根)이 아니라 육처(六處)를 말씀하시는가?’ 거듭된 이 질문의 해 답은 ‘육처는 고(苦)를 만드는 것’이고 ‘육근은 윤회를 끝낼 수 있는 것’, 그 차이에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앞서 보았듯이 이 육근은 우주의 창조주에 해당하는 힘을 가진 인드리야입니다. 우리는 이 육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힘을 갖춘 육근은 잘 개발해야할 대상이고 십이연기에 나오는 육처는 힘써 수행해서 약화·소멸시켜야 할 대상이라는 말입니다.
《상윳따 니까아야 Saṃyutta Nikāya 상응부(相應部)》에는 ‘처(處)’와 ‘근(根)’의 차이가 뚜렷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상윳따 니까아야》는 주제 별로 모은 경인데, 간단명료하면서도 소재별로 중요한 가르침이 망라되어 있어 불교 경전의 핵심을 이룹니다. 북방의 아함경에서는 《잡아함》이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상윳따 니까아야》 1권은 여러 하늘 신들의 이야기입니다. 2권 니다아나왁가Nidānavagga, 인연(因緣)편은 주로 연기에 관한 말씀을 모았습니다. 3권은 칸다왁카Khandhavagga, 온(溫)편입니다. 부처님은 우리 존재가 오온가합(五蘊假合),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온이 조건에 따라 결합된 것이라 하십니다. 말하자면 존재론입니다. 4권은 아아야따나왁가Āyatanavagga, 처(處)편인데 십이연기의 육처(六處)를 주로 다룹니다. 흥미로운건 5권에 실린 <인드리야 상윳따 Indriya saṃyutta>입니다. <근(根) 상윳따>이지요. 여기에서 근이 어떻게 처와 다르게 작용하는지 비교적 분명하게 밝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