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육처와 육근(꾸살라)

[대전 마음챙김 명상센터] 육처와 육근 4.약화·소멸시켜야 할 처, 살려야할 근 p52-p56

작성자꾸살라|작성시간26.06.19|조회수20 목록 댓글 2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육처(六處)놀음만 하면 급류에 떠밀려 생사의 윤회 속을 끝없이 헤매게 됩니다. 하지만 부처님 담마를 만나 마침내 육처를 육근(六根)으로 살리는 노력을 하게 되면 우리는 발을 대지에 붙이고 착근할 수 있게 됩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입니다. 의처일 때는 법, 담마를 만나도 그걸 상()과 식()이 가로채 버립니다. 상과 식이 요리해 버리면 담마는 담마가 아니라 하나의 관념이 되어 욕망의 대상이 되니 담마, 법에 집착하는 법집(法執)이 생겨서 엉뚱하게 흘러가고 맙니다. 그에 비해 식 놀음, 상 놀음에서 벗어나 법, 담마를 그대로 아는 것이 의근입니다. 그 때문에 의근을 살려 법, 담마를 제대로 보고 아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상윳따 니까아야5권에 실려있는 <() 상윳따>에는 근()의 긍정적인 가치들이 주욱 나옵니다. 부처님은 담마 언어 하나하나를 용의주도하고 치밀하게 구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처와 근을 어떻게 달리 쓰시는지 살펴보면 그 소식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대상을 볼 때 의()를 살려 있는 그대로보는 일이 왜 중요할까요? 거듭 말하지만 의처(意處)를 의근(意根)으로 바꾸는 일의 중요성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의미를 갖게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처()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육처에서는 내육처와 외육처 그리고 식()이 만나 촉을 이룹니다. 예컨대 내처인 눈과 외처인 색()이 마주칠 때 안식(眼識)이 생겨나는 겁니다. 눈으로 사물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들을 때 바로 그 행위와 동시에 식이 작동합니다. 그러면 그 식()과 더불어 상()과 수()도 함께 일어납니다. 그러니 육처를 무대로 식과 상과 수가 놀고 있는 꼴입니다. 이 놀이가 진행되면 더 보고 싶고 더 듣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겨나지요. 즉 갈애[()taṇhā]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때 우리 감각기관은 식과 상과 수가 어울려 노는 장소의 역할을 합니다. 그 때문에 장소, ()’라고 합니다. 그렇게 욕망의 무대로 기능하는 게 육처입니다. 그럴 때는 의() 또한 욕망의 무대밖에 안 됩니다. 의처(意處)일 뿐입니다.

 

  처에서는 부처님 담마를 만나도 그걸 상과 식이 처리해 버립니다. 상과 식이 요리해 버리면 법, 담마도 하나의 관념이 되고 맙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보려면 우리는 내육처인 안·····의가 외육처인 색·····법을 만나되 거기에 식이 결합하여 상과 수와 어울려 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요는 육처에서 촉이 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게 관건입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육근입니다. 다시 말해 육근이 청정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십이연기 순관을 역관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는 육처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팔정도를 걸을 때, 즉 십이연기 역관을 실현할 때 육처를 육근으로 바꿀 수 있고 그리하여 해탈·열반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육근이라는 말은 적극적이고 강한 힘을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약화·소멸시켜야 할 것은 육처(六處)이다! 살려야 할 것은 육근(六根)이다!’ 우리는 육처가 육근이 되도록 정진해야만 합니다. 아니 정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남전 | 작성시간 26.06.20 육처는 식과 상과 수가 놀고 있는 꼴이라
    갈애가 일어나기 때문에 약화ㆍ소멸시켜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를 증장하고 마음을
    청정하기 위해서는 육처를 육근으로 바꾸고 그로인해 해탈ㆍ열반도 할 수 있다.()()()
  • 작성자선혜심 | 작성시간 26.06.22 마음챙겨 있는 그대로 보기.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