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처님은 인간을 굳이 육처로 말씀하시는가? 부처님은 인간에게 안·이·비·설·신뿐만 아니라 여섯 번째로 의가 있다고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이 의로 인해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게 됩니다. 의란 담마를 아는 기능 또는 능력인데 동물은 절대로 담마를 알지 못하지요. 인간은 의가 가장 발달된 존재로서 이 의가 있기 때문에 담마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담마를 알 수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반드시 선법(善法)을 상대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여기서 의에 대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해집니다.
부처님은 이 의를 심도있게 다루십니다. 의처(意處)와 의근(意根)을 구분하시는 겁니다. 육처는 욕망을 위시한 탐·진·치의 무대로서 기능하고 그때는 의(意)도 의처로서 탐·진·치의 무대역할에 그친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얘기가 의근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담마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인 ‘의(意)[뜻 mano]’를 가진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특히 이 의(意)의 순수 기능을 뜻하는 의근을 발달시킴으로써 향상하여 열반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요컨대 부처님이 십이연기에서 육처를 설하신 것은 결국 의처(意處)가 아니라 의근(意根)을 말씀하시기 위해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부처님이 시설하신 의근 덕분에 우리가 담마를 이해하고 그리하여 향상할 수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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