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연기적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 어쩌려고?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며, 왜 사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시원한 해답을 찾아 나서게 되면 그게 불교의 길이 되는 것이지요. 불교의 특색은 지혜를 강조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특색 때문에 불교는 진리 추구의 가르침이 되기 마련이지요. 이 가르침에서 부처님은 진리를 사성제(四聖諦), 즉 고성제(苦聖蹄), 집성제(集成蹄), 멸성제(滅成蹄), 도성제(道成蹄)로 설하셨습니다. 이 사성제 선언이야 말로 불교의 근본 출발점이란 것도 여러분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부처님 역시 이 진리를 명확히 깨닫기 위해 출가를 단행하셨고, 그래서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신 결과 마침내 대각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선 진리의 담마를 설하시게 되는데 그 첫 법문을 담은 것이 <초전법륜경>이라는 사실도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왜 고성제부터 설하셨을까요? 부처님은 인간을 고존(苦存)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은 고(苦)다. 이 세상 구조 자체가 고(苦)다.’라고 부처님은 정면으로 선언하십니다. 매일 내 몸으로 겪고 내 마음으로 느끼는 거니까 고(苦)는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실재입니다. 사실 당장 인간이 고통받고 있는 그 상태, 그건 실재한다 이겁니다. 지금 고를 겪고 있는 인간이 엄연히 실존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 온갖 고를 겪으며 늙고 죽는 이 번잡스럽고도 분명한 고통의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이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가? 우리가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이 인생이란 현장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리 의지와 관련 없이 태어나면서부터 부딪치는 인생 고(苦)를 해결할 길은 과연 있기나 한가? 워낙 중대한 문제인 만큼 부처님은 이런 중대사를 더할 수 없을 만큼 차분히 풀어나가십니다. 우선 고가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가? 그것들은 어떤 것들이며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고 어떻게 괴롭히며 어떻게 사라지는가?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거기엔 어떤 질서가 있는 것인가? 말하자면 우선 고(苦)의 성격, 고의 발생 과정, 고의 진행 그리고 고의 소멸 과정에 인간은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가? 이렇게 고의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