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기는 유럽 전반이 절대 군주의 시대로서 음악의 중심도 자연히 교회에서 궁정이나 귀족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 선법은 점차 약해지고, 장조와 단조의 성격이 뚜렷해 졌으며, 다성 음악이 절정에 이르고 화성법이 발전함으로써 음악이 근대화되기 시작했다. 또 기악도 성악에서 독립되고, 오페라, 오라토이오 등이 나타나 오늘날 서양 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이 시대의 음악가로는 '바흐'와 '헨델'이 활약하였다. * 바흐(J.S.Bach, 1685-1750) 독일<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헨델과 함께 바로크 음악의 정점을 구축한 독일 최대의 작곡가의 한사람이다. 대위법 음악의 완성자로 복음악의 최고봉을 이루었으며, 평온함과 행복을 표현하고 신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그의 음악은 부드러운 온정으로 감싸여 있으면서도 숭고하며, 시적인 표현과 극적 의미에 있어서는 극치를 이루고 있다. 작품 <마태 수난곡> <브란덴브르그 협주곡>등 * 헨델(G.F.Handel, 1685-1759) 독일에서 영국으로 귀화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당시 사용되던 모든 양식을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그의 음악은 가락과 정리된 화성으로 장대하고도 숭고한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으며, 특히 종교음악의 대가로서 공헌한 업적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작품 - 오라토리오<메시아> <유나스 마카베우스> 기악곡: <물 위의 음악> <왕궁의 불꽃놀이> 피아노곡:<즐거운 대장간> 바로크라는 말은 '불규칙적인 모형'을 뜻하는 포르투칼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말은 비정상적인, 기교만 과장 된, 감각이 나쁜, 괴상한 등의 헐뜯는 뜻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해석 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전 시대의 음악과 견주어 볼 때 새로운 양식이 그들에게 생소하게 보여졌을 것이라는 의미로 바로크를 이해해야한다. 단선음악(Monody) 9세기에서 16세기까지 지배해 오던 음악적 통념은 대부분의 경우 다성음악이었다. 즉 몇개의 성부가 얽혀서 이루는 복잡한 음악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 들어오면서 음악은 여러 성부가 아닌 단성으로 이루어진 독창 양식을 창출한 것이다. 이것을 단선음악(Monody)이라 부르는데, 이 양식은 르네상스인들이 그리이스 고전에 대한 존경심의 부산물로 생겨난 것이다. 이상적인 그리이스의 모방은 반주를 없애고 독창 성부만 남기는 것이지만 이 단선음악은 독창과 반주의 선율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으며, 반주 는 극히 축소되어 몇 개의 간단한 수직화음으로 압축되었다. 그리하여 이 단선 음악이 급기야는 오페라를 탄생시 키게되는 기초가 된 것이다. 오페라는 16세기 말경 이탈리아 프로렌스의 일단의 음악가와 시인들의 모임인 카메라타 (Florentine Camerata) 에서 발생하였는데, 이 집단의 최초의 대변자는 갈릴레이(Vincenzo Galilei)로 유명한 천문학자의 아버지이다. 그는 음악에 조예가 깊어 스스로 단테의 '지옥'에 비올반주에 의한 테너 독창곡을 쓰기도 하였다. 단선음악의 지도자로는 페리(Jacopy Peri, 1561 ~ 1633)와 카치니(Giulio accini, 1546경 ~ 1618)가 있었으며, 오페라 라고 불릴 수 있는 최초의 것으로는 리누치니 (Ottavio Rinuccini)의 대본을 작곡한 페리의 다프네(Dafne)이다. 바로크 음악은 이탈리아의 이념에 의해 지배되었다. 즉 17세기에는 플로렌스와 베니스가, 18세기에는 나폴리가 음악적으로 지도적인 도시였다. 또한 로마는 종교음악 분야에서 계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17세기 한 동안은 오페라와 칸타타 분야에서 중요한 역활을 하였다. 모든 바로크 작곡가들에게 공통된 특징은 음악을 사용하여 이념과 감정을 표현 또는 재현시키려 노력하였다는 것 이다. 이것을 특정 감정 표상법(Doctrine of affection)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의 무지카 레세르바타 (Musica reservata)를 계승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음악은 '분명한 이념'을 표현한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 은 17세기 철학을 지배하였던 데카르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숫자 붙은 베이스 위에서 언급했듯이 르네상스가 이상으로 하였던 기본적인 음향은 독립된 여러 성부들이 이루는 다성음악이었다. 그러나 바로크의 이상적인 음악(SOUND IDEAL)은 튼튼한 베이스 위에 흐르는 선율이 붙은 것으로써, 이 베이스와 자연스러운 화성을 이루는 것이었다. 이렇게 베이스를 강조한 형태를 두고 통주 저음(Through bass), 또는 지속 저음 (Basso continuo)이라 불렀다. 또한 베이스 음표 아래나 위에 화성의 성격을 숫자나 기호로 지시하기 때문에 숫자 붙은 베이스(Figured Bass)라고도 한다. 따라서 이 지속 저음은 음악이 대위법에서 화성음악으로, 선적 선율 구조에서 화성적 구조로 넘어가는 다리 역활을 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 있어서는 교회의 역활이 전 시대보다 비교적 덜 중요하게 된 반면, 귀족 또는 종교적 후원자들이 음악활동 을 지원하여 여러개의 아카데미가 형성된다. 특히 이 시기에는 비록 널리 알려 지지는 않았지만, 지금과 같이 입장료 를 받고 연주회를 공개하는 상업적인 음악회가 1672년 영국에서 시작되어 독일과 프랑스에서도 시도되는데, 본격적인 것은 18세기 중엽 이후부터이다. 역시 성악 부분에 여전히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오페라 이외에도 오라토리오, 칸타타등이 발전을 보였다,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기악음악들의 많은 형식인 협주곡, 모음곡,소나타 등이 바로크 시대에 완성되게 되었다. 이 시기의 작곡가로는 오페라 작곡가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17세기 중엽의 가장 위대했던 독일 작곡가인 하이리히 쉬츠, 장밥티스트 륄리, 코렐리, 존 블라우,핸리 퍼셀, 안토니오 비발디 등이 있으며, 이러한 형시의 완성자는 바로 잘 알려진 헨델(1685 ~ 759) 과 바흐(1685 ~ 1750)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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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근의 음악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