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3-11-04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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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드래프트 1순위는 홍현희
WKBL 최초의 드래프트는 1999년 12월에 삼성생명 강당에서 개최됐다. 당시 영광의 1순위는 한빛은행(現우리은행)이 가져갔으며, 동일전산 출신의 홍현희가 1순위에 지명되는 영광을 안았다. 190cm의 장신에 좋은 기본기, 센스를 지녔던 홍현희는 이후 한빛은행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2009-2010시즌까지 우리은행에서 10년간 활약한 홍현희는 우리은행의 4차례 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2010년 KDB생명으로 이적한 홍현희는 이듬해인 2011년 은퇴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여자농구의 센터 계보를 이을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잦은 부상으로 일찌감치 은퇴를 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한편 당시 한빛은행은 2라운드 1순위로 동주여상을 졸업한 강영숙(KDB생명)을 지명하기도 했다. 강영숙은 1999년 드래프티 중 가장 오랫동안 뛰고 있으며, 2005년 신한은행 합류 후 통합 6연패의 주역이 됐다
인상적인 활약 펼친 '얼짱 포워드' 박은진
2002년 드래프트에선 명신여고 출신의 박은진이 전체 1순위로 금호생명(現KDB생명)에 지명을 받았다. 180cm의 장신포워드인 박은진은 프로 첫 시즌이었던 2002년 겨울리그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정규리그 22경기에 출전해 평균 21분을 뛰며 5.7점 2.1리바운드를 기록한 것. 이러한 활약으로 신인상은 그녀의 차지가 됐다. 금호생명에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가던 박은진은 2004년 신세계(現하나외환)로 이적했다. 신세계 이적 후 2009년 돌연 임의탈퇴 해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2011년 다시 복귀해 하나외환의 포워드로 활약하고 있다.
거물급 신인 곽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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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주영은 삼천포여고 재학 시절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거물급 선수였다. 고등학교 3학년 신분이던 2002년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은 선수였다. 프로 데뷔시즌도 화려했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금호생명에 전체 1순위로 지명된 곽주영은 정규리그 20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25분여를 뛰며 9.6점 3.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치고는 상당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같은 해인 2003년 겨울리그에서는 평균 17.6점 6.2리바운드 1.5어시스트 1.2스틸이라는 출중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신인이 팀 내에서 국내선수 득점 1위를 차지한 것. 그만큼 곽주영의 데뷔 첫 해 임팩트는 강렬했다. 아쉬운 것은 당시 기록이 곽주영의 커리어 하이 기록이라는 것. 이후 KB스타즈와 KDB생명을 거친 곽주영은 지난 시즌 신한은행에 새 둥지를 틀었다. 팀에서 주전 센터를 맡게 된 곽주영은 많은 출전시간과 기회를 보장받고 있다. 최근 존스컵 대표팀에 선발돼 팀의 주장을 맞는 등 올 시즌을 앞두고 좋은 컨디션을 보이고 있다.
2003년 드래프트에서 곽주영이라는 좋은 신인을 선발한 금호생명은 2004년에도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이로써 금호생명은 2001년 드래프트부터 무려 4년 연속 1순위 신인을 뽑는 행운을 안았다. 당시 드래프트는 정미란, 정선화, 최윤아 등 현재 여자농구를 주름잡는 선수들이 대거 참가한 해였다. 금호생명의 선택은 삼천포여고의 정미란이었다. 곽주영의 1년 후배인 정미란은 포워드와 센터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정미란은 데뷔 첫 시즌에 정규리그 20경기에 모두 출전해 평균 20분 47초를 뛰며 3.8점 2.3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꾸준히 출전시간을 가져간 덕에 신인왕까지 차지한 정미란이었다. 데뷔 후 계속해서 금호생명에서 뛴 정미란은 지난 시즌 KB스타즈로 이적해 골밑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첫 포인트가드 1순위 박세미
신인 드래프트 1순위의 단골 포지션은 센터나 파워포워드 등 주로 골밑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다. 모든 팀들이 전력 향상을 위해 포스트진부터 보강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박세미는 신인드래프트 역사상 가드 포지션으로는 처음으로 전체 1순위 지명의 영광을 안았다. 은광여고 출신의 박세미는 고교 시절 탁월한 경기 조율 능력을 보이며 프로 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166cm로 작은 키였지만, 신체조건의 불리함을 상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데뷔 첫 시즌이던 2005년 겨울리그에서는 평균 5분 정도밖에 출전하지 못 했으나, 곧바로 치러진 2005여름리그에서는 경기당 20분을 뛰며 5.6점 2.9리바운드 1.7어시스트 1.3스틸로 잠재력을 확인시켰다. 신세계와 KB스타즈를 거치며 프로생활을 한 박세미는 지난 4월 KB와 계약이 결렬돼 현재 실업팀 김천시청에서 뛰고 있다.
'원핸드슛 마스터' 김정은의 등장
2006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신세계에 지명된 김정은은 여자선수로는 드물게 완벽한 원핸드슛을 구사하며 여자농구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원핸드슛 뿐 아니라 완벽한 점프슛, 힘과 운동능력을 이용한 플레이 등 김정은의 플레이는 남자선수를 연상시켰다. 김정은의 데뷔 시즌 기록은 화려하다. 데뷔하자마자 팀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한 김정은은 경기당 11.7점을 기록하는 탁월한 득점력을 과시했다. 리바운드는 4.8개, 어시스트 1.9개로, 도저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라고는 믿을 수 없는 활약을 펼쳤다. 역대 신인 선수 중 첫 시즌에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한 건 김정은이 유일하다. 데뷔 시즌부터 큰 임팩트를 남겼던 김정은은 이후 여자프로농구의 대표적인 득점 기계로 활약하며, 2011년과 2012년 2시즌 연속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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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의 첫 1순위 신인 강아정
그동안 드래프트 1순위와 인연이 없던 KB는 2008년 드래프트에서 마침내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해 동주여상의 포워드 강아정을 지명했다. 강아정은 고교 시절부터 슈터로 이름을 날려온 유망주였다. 2007년 U-19 FIBA 세계여자농구선수권에서 평균 24.9점으로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KB로선 팀의 미래를 이끌어줄 보물 같은 선수를 갖게 된 것. 강아정은 데뷔 첫 해 경기당 5.3점 2.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후 삼성생명에서 이적해온 변연하와 함께 쌍포를 가동하며 팀의 외곽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3시즌 연속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며 일취월장한 기록을 뽐내고 있다.
우리은행의 살림 책임진 박혜진
근래 들어 여고 농구와 프로의 수준 차이가 커지면서 신인이 데뷔 첫 해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는 것은 쉽지 않아졌다. 하지만 2009년 드래프트에서 우리은행에 1순위로 지명된 박혜진은 데뷔 첫 해부터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신인임에도 경기당 34분 58초를 뛸 정도로 많은 시간을 부여받은 것. 당시 우리은행은 리그 최하위에 머무르는 약체였고, 포인트가드 포지션에 마땅한 선수도 없었다. 때문에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박혜진이 중용될 수밖에 없었다. 박혜진은 경기당 7점 2.3리바운드 3어시스트 1.2스틸을 기록하며 전 부문에 걸쳐 좋은 기록을 뽐냈다. 많은 시간을 뛰었음에도 실책 개수가 1.8개밖에 되지 않는 등 어린 나이에도 효율성 있는 플레이를 펼쳤다. 약한 전력 탓에 매년 지는 경기를 많이 했던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위성우 감독 부임 후 우승에 성공, 꼴찌 탈출에 성공했고, 박혜진도 한 층 성숙한 기량을 자랑하고 있다. 이승아가 영입되면서 포인트가드보다 슈팅 가드 포지션에서 더 많이 뛰고 있는 박혜진이다.
1순위 최고 배출 학교는 삼천포여고
WKBL 드래프트에서 1순위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는 어딜까?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총 14차례 드래프트가 진행된 가운데, 1순위 선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는 여고농구의 명문 삼천포여고였다. 삼천포여고는 곽주영(2003), 정미란(2004), 박혜진(2009), 강이슬(2013) 등 총 4차례나 1순위 선수를 배출했다. 매년 우승권에 머물고 있는 삼천포여고는 현재도 여고농구의 대표적인 강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삼천포여고는 역대 신입선수 배출 현황에서도 22명으로 가장 많은 선수를 프로에 진출시켰다. 이 외에 지금은 해체한 동일전산이 2회, 인성여고가 2회 1순위 선수를 배출했다. 1순위 지명권을 가장 많이 획득한 팀은 KDB생명과 하나외환이다. KDB생명은 전신 금호생명 시절 총 4차례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특히 2001년 드래프트부터 2004년 드래프트까지 연속 4회 1순위 지명권을 가져간바 있다. 하나외환도 신세계 시절부터 4차례 1순위 지명권을 손에 넣었다. 이밖에 가장 많은 선수들이 선발된 신인드래프트는 2003년 드래프트로, 총 23명이 선발됐다. 가장 적은 인원이 뽑힌 해는 지난해까지 총 5번으로, 12명이 선발됐다.
2013-11-04 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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