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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불타는 계절

홀로 견디던 이야기가 힘을 얻다

작성자디렉터|작성시간26.06.07|조회수36 목록 댓글 3

 

 

 

 

 

 

 

새벽놀

 

 

 

 

 

 

 

 

 

 

 

알님 :  비참하기도 해요.  내가,   내가 한 행동을 내가 모르는 것도 그렇지만,

알려고 ...   왜 그러는지 알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나도 ...  그렇지 않나요 ?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날리 없다면,   분명히 내 안에 그 이유가 있을텐데,

그걸  알아내려고,  조금이라도 알아서 예방할 수 있으면 예방하려고 ...

아니,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하는 나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그걸 알아내려면 남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내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

난 내 이야기를 평생 남에게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지기 :    친구한테도 ?

 

 

알님 :       ...  (고개를 젓는다)

 

 

 

지기 :      친구는 있나요 ?

 

 

 

 

알님 :     나를 이야기하는 친구는 없어요.

내가 안 하죠.

 

 

 

 

 

-    잠시,   침묵이 흐른다.  -

 

 

 

 

지기 :     (자리에서 일어나 북 앞으로 가 서면서)

그럼,   제 느낌도 노래로 표현해 보죠.   (북채로 북을 울리며 판소리조로 구성지게)

진퇴양난이라,  삶과 죽음 사이,  겉의 행동과 속 마음 사이,

혼자냐 여럿,   다른 사람이냐,  앎과 모름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

어찌할까나   ..... 

어화,   신령님이시여,   비나이다    비나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하리까 ?

 

 

 

 

알님 :   아니,   당신은 이미 방향을 알고 있어요.

 

 

 

지기 :    네 ?

 

 

 

알님 :   이제부터 날 알기 위해서 온갖 질문을 해댈 꺼잖아요.

 

 

 

 

지기 :       ...    (고개를 젓는다)

 

 

 

 

알님 :    아니라구요 ?

 

 

 

지기 :    알님이 말한,     그 꺼리에 관련해서 꼭 필요한 것만 ...

 

 

 

 

알님 :    마찬가지예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   과거에는 왜 죽으려고 했는가 ...

결국 다 나오게 되어 있잖아요.

 

 

 

지기 :   뭔가 두려워 하는게 있나요 ?

 

 

 

알님 :    두려운 게 아니예요.

말하기 싫은 것,  아니 날 내보이는 게 싫은 것,

아니 차라리 그런 일이 전혀 익숙하지 않다고 말해야 옳아요,

난,   난 내 마음 속을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구요.

 

 

 

 

지기 :   이해 돼요.

 

 

 

알님 :    아니,   당신은 이해 못해요 ...

난,   내 속이 텅 비어 있단 말이예요...

알아요 ?

난 오랫동안 바람 따라 흩날리는 낙엽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살아왔단 말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계속해서 날 꿰뚫어 보면서 뭔가를 알아 내려고 해요,

마치 범인을 다루듯이,   형사가 ...

 

 

 

지기 :     그렇게 생각되었다면 죄송해요.   (사이)

가장 기초적인,  알님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초보적인 질문만이라도 하면 안 될까요 ?

 

 

 

 

알님 :    하세요.   (사이)

어차피 이유를 알려는 마음이 죽는 것보다 더 강하면 어떻게든 말을 하겠지요.

(사이)   하지만 말하는 것이 죽기보다 더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 둘 수는 있겠지요,

안 그런가요 ?

 

 

 

 

지기 :    물론이지요.

 

 

 

 

알님 :    하지만,    친절한 협조는 기대하지 말아요,

난 정이 없는 여자거든요.

 

 

 

지기 :   알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질문,   1월 말 즈음에 처음 그랬다고 했는데,

그 당시 왜 술을 마셨던 거죠 ?

 

 

 

 

알님 :   술 ?

자주 마시는데요.   (사이)

아,    무슨 이유가 있어서 술을 마셨다고 생각하는군요.

 

 

 

지기 :   누구랑,   혼자 마셨나요 ?

 

 

 

알님 :     (또박 또박 말투에 힘을 주어서)

난 혼자 잘 마셔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마시는 건 아니예요.

 

 

 

 

지기 :    거의 매일 ?    아니면 ...   1주에 2 ~ 3 회 ?

 

 

 

 

알님 :    이삼일에 한 번 ?

일주일에 두세 번 ?

 

 

 

 

지기 :    한번 마실 때 주량은  ?

 

 

 

 

알님 :     소주 1병 정도  ...   많나요 ?

 

 

 

 

지기 :   년 초,   새해 말이예요.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나요 ?

가족 모임이라든가,   세배를 하기 위해서 ...

 

 

 

 

알님 :    난 가족이 없어요.

 

 

 

 

지기 :    네 ?

 

 

 

알님 :    나 혼자 산다구요.   (사이)   이상해요 ?

물론 부모도 있고 오빠,  여동생도 있어요.

하지만 서로 왕래 안 한지 꽤 오래 되었어요.

 

 

 

 

-  잠시 침묵  -

 

 

 

 

지기 :    두 번째는 지난 주말이라고 했는데,

토,  일요일 ?   몇 시 경이었죠 ?

자다가 깬 게 ?

 

 

 

알님 :    토요일 밤,    아니 일요일 새벽 한 두시 즈음이겠네요.

 

 

 

 

지기 :    다시 잠 들었었나요 ?

 

 

 

알님 :    아침까지 술을 마셨어요.

 

 

 

지기 :   무슨 생각을 하였는데요 ?

 

 

 

알님 :    (지기를 노려보며)  무슨 생각이라뇨 ?

(사이)    나 자는 사이에 누가 들어왔었나 ?

창문도 열어보고 ...  웃기죠 ?

 

 

 

 

지기 :    그럴만한,   나에게 원한이 있는 ...

 

 

 

알님 :   없어요,   절대로 !

 

 

 

지기 :   또요 ?

 

 

 

알님 :     ...  네 ?

 

 

 

지기 :   생각한 것들.

 

 

 

알님 :      ...   울었어요...   많이...   많이 울었어요.

 

 

 

지기 :    생각이요.

 

 

 

알님 :   그냥 이유없이,   그냥 눈물이 쏟아졌어요.

 

 

 

지기 :  슬펐나요 ?   무서웠나요 ?

아니면,   자신이 불쌍했나요 ?

느낌 말이예요.

(사이)  좋아요,   토요일에 한 일 생각나요?

집에 있었나요 ?

외출하고 들어왔나요 ?

 

 

 

 

 

 

알님 :   학원 강의 끝내고 집에 돌아온 시간이 10시 정도 되었어요.

 

 

 

지기 :    학원 강의 ?   직업이예요 ?

 

 

 

알님 :   물리,  화학을 가르쳐요.

 

 

 

지기 :  학원에서 무슨 일은 없었나요 ?

 

 

 

알님 :   바빴어요,   중간 고사 기간이라 ...

 

 

 

지기 :    열시에 집에 들어와서는요 ?

버스 타고 ?   지하철 ?

 

 

 

알님 :   버스,   집에 와서는 티브이를 켜고 씻고 그날 강의한 것 대충 훑어보고 ...

11 시경 자려고 누웠었나 ?

 

 

 

지기 :  티브이는 껐나요 ?    뭘 보았죠 ?

 

 

 

알님 :    뉴스만 조금 보다가 ...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고급 과정을 수련할 때의 일이다.

 

사이코드라마를 오랜 시간 공부해오면서

 

나 나름대로는 애로사항도 느끼고 있었기에

 

디렉팅을 연습하는 조원들 앞에서

 

나는 주인공 역할을 하면서

 

모레노를 불러내어 만나보는 드라마를 하게 되었다.

 

 

이윽고,   역할 교대를 통해,  내가 모레노가 되고

어느 조원이 내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 당시 무슨 질문을 모레노에게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모레노가 되어 본 나는

질문을 한 조원 (나 자신) 에게 이렇게 응답하고 있었다.

 

" 사이코드라마는 집단 작업입니다. "

 

애로 사항에 대해 더욱 따듯한 답변을 듣길 원했던 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답변하시는 모레노를 보면서

 

" 모레노는 참 냉정하시구나 "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실상 모레노 말이 틀린 것은 없었으나

더욱 인간적인 답변을 원했던 나에게는 실망스러운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어느 유투버의 영상을 보니

그 유투버가 인터뷰어로서 젤카를 인터뷰하면서

젤카가 모레노가 되어보는 역할 교대를 진행하고 있었다.

 

모레노가 되어 본 젤카는 아주 담담하게

그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듯 했다.

 

그 영상 가운데 한 문장이 내게 꽂히기도 했다.

 

모레노 :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성과도 있었지만 힘든 순간도 있었습니다. 

 

전 세계를 젤카와 함께 동반 순회하면서 사이코드라마를 널리 알리고 전파하는 역할은

물론 영광도 있었겠지만,  인간적인 고뇌도 깊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모레노가 그러한 선구자 역할을 하였기에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사이코드라마에 대해 배우고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죽은 사람도 다시 불러낼 수 있다고 설파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이라고 말씀하시는 모레노 선생님과

가상으로 대화하는 자리를 한번 구상해 보았습니다.

 

만남에는 시간과 공간과 중력을 초월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나 : 모레노 선생님.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21세기 한국에서 선생님을 다시 초대했습니다.

 

 

 

모레노 : 나는 죽었지만,
만남은 죽지 않았네.

자네가 나를 부른 것이 아니라
자네 질문이 나를 불러낸 것이야.

 

 

 

나 :  선생님 

사이코드라마를 현재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어도 디렉터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최헌진 선생 같은 분들이 현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한국의 정통성을 살리면서도
사이코드라마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요?

 

 

 

모레노 :  왜 안 되겠는가?

사이코드라마는 미국 것이 아니네.

내가 만든 것도 아니야.

나는 단지 발견했을 뿐.

사람이 자기 삶을 무대 위에 올리는 순간,
그곳이 곧 사이코드라마네.

 

 

한국인은 한국인의 방식으로 울고,
한국인의 방식으로 웃고,
한국인의 방식으로 조상을 기억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한국의 사이코드라마는
한국인의 영혼에서 나와야 하네.

 

 

 

나 :  한국인의 영혼이라...

그렇다면 선생님은
한국인의 정서를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모레노 : 나는 한국인이 아니니
정답을 말할 수는 없네.

 

그러나 내가 만약 자네들의 드라마를 본다면
이렇게 느낄 것 같군.

 

한국인은 혼자 울지 않는다.

개인의 슬픔도
가족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가족의 상처도
조상과 역사로 이어진다.

 

한국인의 눈물은
언제나 관계 속에 있네.

그래서 한국인의 고통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나타날 때가 많을 걸세.

 

나는 한국인의 정서를
관계 속의 마음 이라 부르고 싶네 ...

 

 

 

나 :  그렇다면 한국의 디렉터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

 

 

 

모레노 :  전통을 박물관에 가두지 말게 

한국인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을 연구하게.

굿이 있다면 왜 사람들을 움직이는지 묻게.

제사가 있다면 왜 아직도 계속되는지 묻게.

 

마을 공동체가 있었다면
무엇이 사람들을 연결했는지 묻게.

 

그리고 그것을 무대 위에서 새롭게 창조하게.

 

전통을 복사하지 말고
전통과 대화하게....

 

 

나 :   전통과 대화하라...

 

 

모레노 :  그렇네

사이코드라마는 복원이 아니라네

 

또한 진짜 디렉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삶과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네.

 

 

무대를 지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가 살아나도록 돕는 사람일세.

 

 

나 : 선생님.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사이코드라마 철학은 무엇입니까?

 

 

모레노 :  사람들은 자꾸 기술을 묻네.

기법을 묻고,
역할교대를 묻고,
더블링을 묻고,
미러링을 묻지.

하지만 나는 늘 같은 답을 했네.

 

사이코드라마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만남이라고 ...

 

나와 내가 만나고,

나와 타인이 만나고,

나와 세상이 만나고,

마침내 나와 나 자신이 만나는 것 ......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자발성이 태어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이네

 

 

기억하게 

사이코드라마의 목적은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네.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것이지.

 

 

 

모레노가 남긴 유명한 말 :  "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다. "

 

사람은 설명될 때보다 만나질 때 변화한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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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해바라기 | 작성시간 26.06.08 🌻
  • 답댓글 작성자디렉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8 🪷🕯
  • 답댓글 작성자해바라기 | 작성시간 26.06.12 디렉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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