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놀
지기 : 왜 그래요 ?
알님 : 뉴스만 조금 보다가 ...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0
지기 : 왜 그래요 ? 뭐가 생각났어요 ?
알님 : 그냥 껐어요, 뻔한 이야기들이라 ...
지기 : 뭐가요 ?
알님 : 정치인들, 자기 존재 과시욕들, 뻔한 멘트들 ...
왜요 ? 내가 이런 말하는 게 이상해요 ?
사실 그렇지 않나요 ?
정치를 무슨 쇼하듯 하는 군상들,
거기에 돌을 던지는 게 아니라 박수 치고 놀아나는 인간들 ... (사이, 지기에게)
왜 그래요 ? 날 자꾸 이상하게 보고 있잖아요 ?
지기 : 아닌데요,
난 지금, 토요일 밤을 술로, 울음으로 지새고 일요일에는 무얼 했을까 궁금해서.
- 잠시 사이 -
알님 : 정신과에 가 볼까 아니면, 상담을 받아 볼까 생각했어요.
(사이) 그리고 월요일에 집 근처 상담소를 찾았죠.
지기 : ... ?
알님 : 괜히 갔어요.
지기 : 왜요 ?
알님 : 무슨 죄인 다루듯이, 아니 호구조사 하듯이 꼬치꼬치 온갖 것을 캐묻잖아요.
내가 죽으려고 한 것하고 내 가족관계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
결혼 했냐, 안 했냐가 왜 중요하냐구요 ?
지기 : 그래서 다 대답을 했어요 ?
알님 ; 아뇨, 그런 걸 왜 알려고 하냐고 했더니,
날 이해하려면 다 알아야 한데요.
내 참, 다리가 부러져 피가 뚝뚝 흐르고 있는데,
나이가 몇이냐, 이름이 뭐냐, 직업이 뭐냐 ... 그게 말이 되는가 말이에요 ?
지기 : 좋아요, 상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제 그 이야기를 해보죠, (사이)
그 두 번의 사건이 알님에게 어떻게 작용한 거죠 ?
다시 말해서, 뭐가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나요 ?
알님 :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가요.
지기 : 상담소를 찾고, 여기에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예요 ?
알님 : 살고 싶어서요 ? 이해가 안 되세요 ?
지기 : 왜 그렇죠 ?
보통 사람들은 실례의 말씀이지만, 자기도 모르게 죽는 게 소원이라고 하던데 ...
자신이 죽어가는 걸 지켜보기 보다는 ...
알님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
알님 : 그래요,
나도 그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예요.
뭘 두려워 해, 어차피 죽을 명이라면 그런 식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니 ?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 그건 뭔가 너무 억울해요.
알고 싶어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
나만 그러는 건지 ...
그렇게 해서 죽는 사람이 있는지 ...
지기 : 죽는다는 게 무섭지는 않구요 ?
알님 : ... 무서워요. (가슴에 한 손을 올려 쓸어 내린다)
지기 : 당신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옹호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시도도 해보았다고 했어요.
알님 : 그런데요 ?
지기 : 그런데, 두려워요 ?
알님 :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 네 ?
지기 : 진실 !
알님 : 죽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
그것도 나도 모르는 왜 그런지도 모르면서 죽는다는데 그걸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요 ?
지기 : 레퀴엠을 좋아하는 당신 같은 분에게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이 안 가서요.
- 잠시 침묵 -
알님 : (느린 말투로 음울하게) 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사이) 나도 알아요,
난 죽음을 두려워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 죽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는게 진실이겠죠.
그걸 말하는 건가요 ?
그래요, 아주 오랫동안 ... 하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왜냐하면 ...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난 이제야 산다는 게 뭔지를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요.
지기 : 언제부터죠 ?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게 ?
알님 : 2 ~ 3년 ?
지기 : 계기가 있었나요 ?
알님 : 아뇨, 없었어요.
지기 : 잘 생각해 보세요,
2 ~ 3 년 전 ...
알님 : 그걸 꼭 말해야 돼요 ?
지기 : 통상,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이 달라질 수는 없으니까요,
특히 인생관에 있어서 ...
알님 : 그만 ! 내가 말하기 싫다는데 왜 그래요 ?
지기 : 안 돼요, 해야 돼요.
(북채를 가져다 주면서) 하나하나, 생각을 정리하면서 해봐요, 용기를 내세요.
도움이 될 꺼예요.
(사이) 만남 같은 게 있었잖아요.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건이던 ...
우린 그런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변화하는 존재니까요.
알님 : (북채를 든 채 북 앞에 서서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로 허공을 올려다보며)
그래요, 난 ... 오랜 세월, 세상과 등을 지고 살았어요.
난 누구도 믿지 않았고, 누구와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고 ...
누구에게 다가가지도 않았고, 그저 식물처럼, 아니 기계처럼 그렇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진짜로 우연히, 학원에서 호주에서 온 영어 강사를 알게 되었죠 ...
한 1 년 정도 동거를 하게 되었고 ... 헤어질 줄 알고는 있었어요. (고개를 숙인다)
지기 : (알님의 북채를 쥔 손을 들어 북을 치면서)
그래서요 ? 삶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하나씩 또박또박 말해 주세요.
알님 : 난 아직도 사랑이란 게 뭔지는 모르지만 ...
(북을 치면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북을 치며) 그래요,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렇게 따듯할 수도 있는 거구나,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존중하는 거구나 ... (눈물을 흘리며)
내 생전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음식이 맛이 있어지고, 꿈에 시달리지 않고 잠을 자고 ...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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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젤카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이 북을 치고 있는 여성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
" 그 느낌에서 도망치지 말고 조금 더 머물러 보세요.
서두르지 말고 ...
그 따뜻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몸으로 느껴 보세요.
지금 당신은 단순히 과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안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생명력을 만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