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놀
알님 : 난 아직도 사랑이란 게 뭔지는 모르지만 ...
(북을 치면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북을 치며) 그래요, 살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렇게 따듯할 수도 있는 거구나,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존중하는 거구나 ... (눈물을 흘리며)
내 생전 처음 알게 된 거예요.
음식이 맛이 있어지고, 꿈에 시달리지 않고 잠을 자고 ...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고 ...
지기 : 이별의 상처 같은 건 없었나요 ?
알님 : 전혀요, 없었어요. (사이)
있다면 그 사람이 떠나고 나서 내 생활이 예전과 비슷하게 되돌아가는 걸 느낀 것 ?
그렇지만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된 건 그 사람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지기 : 그런데 왜 레퀴엠을 ...
알님 : 지금은 사는 게 좋고 죽는 게 싫어졌지만,
언젠가 정말 죽어야 할 때가 오면 난 ... 스스로 선택할 거에요.
이끌려서 가지는 않을 거예요.
지기 : 아, 그만 헷갈려요.
- 지기가 무대 위에서 1M 크기의 악보대 두 개를 가지고 나와 무대 좌우에 하나씩 놓는다. -
지기 : 이제 잠시 쉰다는 의미에서 (좌측 악보대 앞으로 알님을 데리고 가면서)
주제를 벗어난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습니까 ?
알님 : 네 ?
지기 : 상담하는 것처럼, 저도 문답식의 진행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우측 악보대 앞으로 와 서서 알님 쪽을 바라보며)
이제부터 각자 앞에 있는 악보대가 일종의 연단 혹은 마이크라고 생각하고
서로 말을 주고 받을 때 지금까지와는 달리 보다 큰 소리로 느리게
그러니까 천천히 생각하면서 말하기로 해요.
이해되셨어요 ?
알님 : 먼저 해보세요 ?
지기 : 그럼 묻겠습니다. (큰 소리로 각 단어를 힘주어 말한다)
오늘 같이, 태풍 경보는 없지만, 금방이라도, 폭풍우가 밀려올 것 같은 밤,
이런 날씨는 어떠세요 ?
알님 : 무섭냐구요 ?
지기 : 좋습니다,
그렇게 크게, 또박또박 말하는 겁니다.
(사이) 이런 날씨는 사람들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데 ...
예컨데, 괜스레 음울해진다던가 ...
알님 : 아니요, 난 오히려 좋아요... 햇빛 내려쬐는 환한 날 보다는요.
지기 : 왜 그렇죠 ?
알님 : 날씨가, 하늘이 인간 세상의 뒷면,
어두운 면을 그대로 반영해준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
지기 : 그런가요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알님 : 인간처럼, 겉과 속, 앞과 뒤가 다른 동물 존재가 있을까요 ?
지기 : 예를 하나 들어보시겠어요 ?
알님 : 지금 지기님의 부드러운, 친절한 모습이 집에서나 사적인 장소에서도 여전히 똑같을까요 ?
지기 : 조금은 다를 수 있겠지요, 상대하는 대상이 다르니까.
알님 : 일상 말투네요, 나도 원래 말투로 말하고 싶어요.
지기 : 그렇게 하세요.
알님 : 자리에 좀 앉으면 안 될까요 ?
지기 : (의자를 가져다 주며) 여기 앉으시죠.
알님 : (자리에 앉으며) 고맙습니다.
지기 : 힘드세요 ?
알님 : (못 들은 척) 조금 전에 대상 따라 여러 사람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죠.
거의 폭력 수준으로 돌변하지요.
집 안에서는 독재자이면서 집 밖에서는 인류애의 화신처럼 구는 인간,
교회에서는 자비와 사랑을 외치면서 집에서는 자식을 두드려 패는 목사 ...
(사이, 지기를 바라보면서) 왜요 ? 아닌가요 ?
지기 : 조금은 극단적인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