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생명굿 들어가는 입구 -
새벽놀
지기 : 저도 기억납니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공부 못하는 몇몇 아이들이 카톡으로,
교실에서 대놓고, 공부 잘하는 게 엄마의치맛바람이라고 ... 맞죠 ?
알님 : 말 한마디, 변명도, 싸워 보지도 않고 어느 날 갑자기 ...
지기 : 그런데 왜 ?
그 사건이 갑자기 떠오른 거죠 ?
알님 : 왕따라고 하지 않았나요 ?
내가 친구가 없다고 하니까 ...
지기 : 알님도 왕따 경험이 있어요 ?
알님 : 난 그런 거 몰라요.
지기 : 그런데 왜 그 사건이 떠올랐죠 ?
알님 : 왕따 라는 말에 갑자기 연상이 되어서요.
연상 몰라요 ? 연상, 사과하면 붉은 색이 떠오르듯이.
지기 : 단순히 단어에 의한 연상일 수 있지요.
하지만 유독 그 사건이 머리에 들어 있다는 것은 ...
알님 : 왜요 ? 무슨 의미가 있냐, 이 말인가요 ?
지기 : 내 말은 단순한 우연에 의한 연상작용이라고 하기에는 ...
뭐랄까, 죽음의 문제가 ...
알님 : 뭐예요 ?
나와 연관짓는 거예요 ?
지기 :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
알님 : 난 왕따 같은 것은 안 당해요.
오히려 내가 애들을 왕따 시켰으면 시켰지.
지기 : 실제로 그런 예가 있나요 ?
알님 : 없어요.
지기 : 제발, 하나라도 누군가 왕따를 시킨 적이 있으면 ...
알님 : 없다니까요, 없어요. 절대로.
지기 : 그런데 왜 그리 큰 소리로 말하세요 ?
알님 : ......
지기 : 괴롭히려고 그러는 게 아니예요,
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를 알고 싶은 거지.
알님 : ......
- 잠시 침묵 -
지기 : 말해주세요, 그 당시, 그 사건을 알고 나서 어땠나요 ?
많이 아파했나요 ? 아니면 ...
알님 : 웬지,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가 않고 ...
그래요,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지기 : 그래서요 ?
알님 : 네 ?
지기 : 술을 마셨나요 ? 울었나요 ?
알님 : ... (갑자기 터지려는 눈물을 참는 모습이다)
지기 : 많이 힘들었을 것 같에요.
알님 : ......
지기 : 왜냐면, 제 생각입니다만
틀릴 수도 있지만 ...
알님도 그런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알님도 한때, 옛날에는 중고교 시절이었나요 ?
죽고 싶은 생각을 꽤나 자주 하였다 했고 ...
알님 : ... (거의 울듯이 지기에게) 그만하면 안돼요 ?
지기 : (알님의 두 손을 지긋이 맞잡으며) 작년 12월 사건은,
그 여학생이 죽은 것은 ... 학교가 아니라 자기 집 아파트 옥상이었거든요.
그런데 알님은 ?
알님 : (혼잣말처럼) ... 맞아요, 그렇네요.
지기 :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알님 : (글썽이는 눈을 들어 지기를 바라보며) 꼭 알아야 돼요 ?
지기 : ...... (고개를 끄덕인다)
알님 : ...... (어깨를 들썩이며 운다)
지기 : ...... (알님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 잠시 사이 -
알님 : 말 안하면 안돼죠 ?
지기 : ...... (고개를 끄덕이며 두 손을 내민다
알님 : 왜, 꼭 말해야 돼요 ?
지기 : 영원히 혼자서만 간직할 순 없잖아요,
그건 너무 힘들어요.
알님 : 아니예요, 힘들지 않아요.
지기 : 지금 힘들잖아요.
알님 : 무서워요.
지기 : 그럴 수 있어요.
알님 : ......
지기 : 그렇지만 끝내 모른 척 할 순 없어요.
알님 : 술 같은 건 없나요 ?
술, 마시면 안돼요 ?
- 지기가 술병과 잔을 가져와서 술을 한 잔 따라준다.
알님이 연거푸 두 잔을 마신다.
그리고 천천히 무대 위를 걸어 다닌다.
그리고 혼자 말하듯 말한다. -
알님 : 고등학교 이학년, 봄 ? 오월 ? ...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죽인 거에요... 난 살아있고... 그 앤 죽고...
대낮인데도, 그 앤 ... 온통 하늘이 ... 어두웠어...
지기 : (알님에게 다가가서 의자에 앉히며)
알님. 잠깐 여기 앉아요.
그리고 심호흡을 해요.
네, 옳지, 그렇게 한번 더 ... 좋아요. (사이)
무슨 일이 있었어요 ?
수업 중이었나요 ?
알님 : 점심 시간이 시작되었어요.
지기 : 그런데요 ?
알님 : 그 앤 종도 안 울렸는데, 도시락을 꺼내 먹었어요.
지기 : 잠깐만요,
여기가 알님 자리고 (앞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교단이라면,
친구는 어디에 앉아 있죠 ?
알님 : 내 오른쪽 뒤에요.
지기 : (의자를 그 위치에 가져다 놓으며) 여기요 ?
알님 : 아니, 나와 가까워요.
지기 : (의자를 알님 곁으로 가져오며) 여기요 ?
알님 : 그 애도 나처럼, 반 애들,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는데 ...
지기 : ......
알님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죠 ?
지기 : 알님이 이 친구를 죽였나요 ?
알님 : 아니예요, 안 죽였어요.
지기 : 방금 전에는 죽였다고 했잖아요.
알님 : 그래요, 내가 죽였어요.
지기 : 어떻게요. (사이) 옥상에 데리고 갔나요 ?
알님 : (놀란 눈빛으로 지기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다시 술 한 잔을 마신 후,
두 개의 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대 뒤 벽 쪽에 가서 기대어 선 후, 허공을 보면서)
세상이 싫어지면, 사람들이 싫다고 밀어내면,
결국 갈 곳은 낭떠러지, 옥상, 높은 곳 ...
(사이, 지기를 보면서)
진짜 역겨운 게 뭔지 알아요 ?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거예요.
나도, 우리 반도 담임도 ... 아무도.
그 애, 그 애 잘못으로 그 애가 우울증이 있고, 폭식증이 있고, 그래서 비만했고
그래서 죽을 수 밖에 없었다고 ...
담임이 앞장서서, 담임이 ... 덮었어요.
그냥 없던 일, 빨리 잊어버려야 할 일 ... 누구 책임도 아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