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놀
지기 : ... (북 있는 데로 가서 작고 느리게 북을 치면서)
어이...... 어이......
지기 : 가장 역겨운 건 나예요.
난, 넋이 나간 채 말 한마디 못하고...
나도 그들처럼... 내 탓은 전혀 없는 것처럼 ... (사이, 고함을 친다)
아 --- 아 --- 아 ------ (지기가 빠르게 북을 친다. 알님이 계속해서 소리를 지른다)
- 지기가 알님을 붙잡아 바닥에 뉘인다. 알님이 계속해 소리친다. -
지기 : 말해요, 뭐든 ... 하고 싶은 말... 뭐든 ... 해요.
알님 : 아 --- 아 ------
지기 : 그래요, 말해봐요.
알님 : (큰소리로)
내가 죽였다. 내가 그 앨 죽였다.
내가 그 애에게 역겨워, 역겨워, 토할 것 같애... 라고 말했다.
내가, 그 애에게, 역겨워 죽겠다고, 꼴 보기 싫다고...
(울면서) 성희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
난 네가 그렇게 뛰쳐나갈 줄 생각도 못했어,
오... 어떻게 해... 나, 나 어떻게 해야 돼 ...
널 뒤쫓아 나가야 했을까 ? 널 붙잡고,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를 했어야 했을까 ?
... 아니면, 나도, 나도 너처럼 뛰어내려야 했을까 ?
... 그래, 그 생각도 해봤어 ... 네 빈자리를 볼 때마다 ...
나도 널 따라가야 한다고... 사실 난 너에게 화를 낸 게 아니었어 ...
내 자신에게 화를 낸 거였어.
난, 항상, 난 ... 오랫동안 내가 쓰레기 같고 ... 쓸모없고 ...
살 가치조차 없는 ... 역겨운 애라고 ...
난 내 자신에게 화가 나 있었는데...
그 날 나도 모르게 너에게 ... 너에게 뒤집어 씌운 거 였어 ...
성희야 ... 아 ------ 성희야 --- 잘못했어 ... 진짜 ...
죽어야 마땅한 사람은 난데 ...
내가 죽었어야 하는데 ...
- 오랜 사이, 지기가 알님 곁에 쪼그리고 앉아 알님을 위로한다.
그리고 알님을 일으켜 세워 의자에 앉도록 한다.
알님은 혼이라도 나간 듯한 모습이다. -
지기 : 고마워요 ... 그리고 조금은 알님을 더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그 사건 이후, 자주 죽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인가요 ?
알님 : 네 ?
지기 : 조금 힘들더라도, 몇 가지만 확실하게 정리해 볼까 하구요.
알님 : 내가 뭘 잘못했나요 ?
지기 : 아녜요. 전혀 그런 것 없어요. (사이)
아직도 그 친구 생각하고 있어요 ?
알님 : 누구요 ? (사이) 아 ... 그 애... 그 앤 날 용서하지 않을 꺼예요.
지기 : 일부러 대놓고, 그 애 앞에서 직접 그런 말을 한 거예요 ?
알님 : 직접 ?
모르겠어요.
내 뒷쪽에 앉아 있었는데 ...
지기 : 혼잣말 일수도 있잖아요 ?
혼자서 투덜거렸는데, 우연히 그 친구가 그 소리를 듣고 ...
알님 : 무슨 소리요 ? 내가 뭐라고 했나요 ?
지기 : 좋아요, 잠시 그건 덮어두고, 다르게 질문할께요. (사이)
진짜로 그 당시에 죽으려고 했었나요 ?
생각만 한 게 아니라.
알님 : 산, 어떤 절벽 같은데, 아니다. 강에 갔다,
그게 언제지 ?
옥상에도 올라 갔었는데 ...
지기 : 전부, 고등학교 때 일 인가요 ?
알님 : 아니, 아니에요.
지기 : 그럼 ?
알님 : 뭘 물어봤죠 ?
지기 : 죽으려고 했던 때가 ...
알님 : 집에 있을 때, 학교 다닐 때,
지기 : 그럼, 집을 나와 살기 시작한 게 몇 살 때죠 ?
알님 : 혼자 산 거 ?
오래 됐다니까요.
19살,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
난 그때부터 죽을 생각을 안했다고요.
지기 : 딴 사람처럼 살았겠네요.
알님 : 무슨 뜻이에요 ?
지기 : 그 전까지는 끝없이 죽음 생각만 하던 사람이
대학 들어가서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으니 말이예요.
알님 : 내가 변했다고요 ?
누가 그래요 ?
그걸 어떻게 알죠 ?
지기 : 죽음을 멀리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멀리, 사귀지고 않고,
연애도 안하고 ...
알님 : 그게 뭐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
지기 : 그래도 무슨 까닭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알님 : 난 살아야 했으니까요.
나에게 노을이 ... (가슴에 한 손을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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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모레노는 위의 알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을 듯 합니다.
모레노 : " 그 날 말고도 네 삶은 계속됐어 "
여기까지 오느라 오래 걸렸겠구나...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네가 20년 동안 혼자 반복해 온 말이구나.
지금 무대에는 셋이 있다.
그 아이,
그때의 너,
그리고 지금의 너.
너는 그 날의 한 장면 속에 갇혀 있구나
하지만 인간은 한 장면으로 존재하지 않는단다.
그 이후의 시간들도 너다.
죽음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 죽음이 너의 전부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너는 벌을 받고 싶어서 여기 온 것이 아니야
살아서 이 이야기를 다시 살게 하려고 온 것이지
너는 그 아이를 죽인 사람이 아니라,
그 아이를 평생 데리고 살아온 사람이야,
이제 그 아이를 다른 방식으로도 데리고 살아갈 수 있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