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놀
알님 : 난 살아야 했으니까요.
나에게 노을이 ... (가슴에 한 손을 얹는다)
지기 : 네 ?
알님 : 아녜요. (갑자기 빠른 말투로)
난 공부만 했어요, 빨리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선생이 꿈이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어요.
그래서 학원으로 빠졌죠.
지기 : 노을 ? 그게 뭐죠 ?
알님 : 몰라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저 이제 알겠어요.
왜 나도 모르게 죽으려고 했는지 ...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
결국은 완전히 잊혀지거나 지워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았고,
왜 그게 이제야 터져 나오게 됐는지도 이해했어요.
지기 : 아직 끝난 게 아닌데요,
물론 알님이 여기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건 좋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모르는 것, 의문나는 게 너무 많아요.
무엇보다도 왜 자신을 쓰레기 취급을 하고
왜 가족을 떠나서 혼자 살고 있고 ...
알님 : 더 이상 알려고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말하지 않을테니까요 ...
그리고 사실 전, 집 떠나기 전 기억은 별로 없어요. (사이)
그 당시를 억지로 떠올려 본 적도 없지만 생각만 해도 머릿 속이 하얘져요.
지기 : 좋아요. 그 말을 믿고 존중해요.
하지만 한가지만 더 ...
알님 : 저 이제 갈래요. 돌아가고 싶어요.
지기 : 알았어요. 잠깐만요.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물 한 잔 마실 여유는 있잖아요.
알님 : ... (말 없이 물을 마신다)
지기 : 난 당신이 죽음을 완전히 극복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 말이 이해되시죠 ?
우린 처음부터 지금까지 하나도 해결한 게 없단 말입니다.
알님 : 난 알았는데요.
오랫동안 잊혀진 죽음의 생각이 티브이에서 어느 여고생의 자살 사건을 보고
나도 모르게 과거의 나로로 되돌아 갔다고 ... 그래서 ...
지기 : 아니예요.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서 그래요.
얼핏보면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말씀드리기가 뭣하지만 ...
난 알님이 여고시절 그 학생 사건 이전부터
그 일이 발생하기 이전에 벌써 자신에 대한 혐오감, 역겨움 ? ...
자신이 싫은, 자신을 없애버리고 싶은 생각이 ...
알님 : (큰소리로) 난 과거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했잖아요.
지기 : 아니, 당신은 과거 생각,
그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 때면 왼쪽 가슴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올렸고,
얼굴이 붉어졌고 ...
숨도 가쁘게 내쉬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들은 아주 짧았죠.
마치 당신 자신이 당신을 완벽하게 통제하듯 순식간에 사라졌으니까요.
알님 : 난 그런 적 없어요.
지기 : 기억들도 섞여 있어요.
과거와 현재, 실제 사건과 티브이에서 보도된 사건,
특히, 절벽, 옥상, 강물 이야기를 할 때
당신은 완전히 혼돈 속에 빠져드는 것 같았어요.
알님 : 그만, 그만하면 안돼요 ?
지기 : 미안해요 .. 정말 미안해요 ...
하지만, 난, 정말 당신을 알고 싶어요.
깊이 있게 ... 도울 수는 없지만 ... 당신을 이해하고 싶어요.
알님 : 날 ... 알려고 하지 마세요.
지기 : ......
알님 : 내 속엔 ... 아무 것도 없어요.
지기 : 그래서... 언젠가는 ... 사라질 거예요 ?
알님 : ......
지기 : 봐요, 그럴 생각이잖아요.
알님 :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죠 ?
지기 : 엄청난 관계죠.
왜냐하면 내가 이 곳 생명굿에서 만나는 만남은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이니까요.
알님 : 말도 안돼, 미쳤군요,
지기 : 난 진짜 미쳤으면 좋겠어요.
(사이) 아무리 미칠려고 해도 미쳐지지 않아서 고통이지.
알님 : 왜, 미치려고 하는데요 ?
지기 : 알님은 왜 죽음을 꿈꾸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