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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주일 메시지

제목: 바울의 인생 회고(回顧)

작성자조해강|작성시간17.12.31|조회수133 목록 댓글 0

2017 12 31 주일 낮예배 설교

 

제목: 바울의 인생 회고(回顧)

본문 말씀

딤후 4:6~8

전제(奠祭, 祭酒, drink offering)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인생 회고(回顧)

연말 특히 해의 마지막 주일은 지난 해를 돌아보는 귀한 시간입니다. 오늘이 금년의 마지막이기는 하지만 내일이라는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연도로는 다르지만 사실은 같은 흐름 가운데 있는 날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렇게 해의 마지막 날에 무언가 특별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인생에는 신비롭게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연초가 있고 연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우리는 마지막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연말에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를 돌아보고 해를 맞이하면 좋을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앞서 가신 선배들의 모범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의 유언을 기억하는 것도 좋겠지요. 아니면 나의 은사나 스승이 남겨 주신 말씀이나 가르침을 되새겨 보는 것도 유익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디모데후서 4 6절로 8절은 바울 사도의 인생 회고가 담겨 있습니다. 짧지만 깊은 내용을 전하는 것은 탁월하고 깊이 있는 삶을 살아가신 분들의 특기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디모데에게 깊은 가르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마 편지를 썼을 것입니다. 여기서 회고(回顧)라는 말은 고개를 돌려 돌아다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의 인생 회고를 보면서 우리도 우리의 연말에 해를 회고하고 해를 준비해 봅시다. 이것이 좋은 모델이 것입니다.

 

인생은 전제와 같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전제와 같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전제(奠祭) 포도주를 잔에 채워 제물에 부어드리는 제사입니다. 민수기 15장에는 구약시대의 제사 중에서 전제에 대한 규례가 담겨 있습니다. 양이나 숫양 또는 숫송아지를 번제로 태워 바칠 때는 제물의 종류에 따라 포도주의 양을 달리하여 부어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포도주를 잔에 담아 부어드리는 제사를 전제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바울이 자신의 삶을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고 말할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은 양이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있습니다. 정해진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도 힘도 정해져 있습니다. 무한정 기회가 있고 무한정 일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정해진 양의 기회, 시간, 그리고 힘을 이제 쏟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제로 드려졌다는 말은 바울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받쳤다는 말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기회, 그리고 힘을 하나님을 위해 살았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왔다는 고백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뜻에 자신의 삶을 드렸다는 의미도 것입니다. 바울이 인생은 하나님께 받은 정해진 분량의 기회, 재능, 힘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분량이 소진되면 이제 떠날 때가 됩니다. 하나님께로 왔으니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지요. 하나님께 받았으니 하나님께 드려야지요. 인생은 하나님께로서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인생관입니다.

그러면 인생을 바울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아마 편지의 수신자인 디모데에게 너도 이렇게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일 겁니다. 삶을 살고 떠날 때가 노인이 젊은이에게 주는 삶의 교훈입니다.

 

바울의 인생 교훈1. 전심전력하라

바울은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싸움이라는 단어는 시합을 말합니다. 우리는 시합을 많이 있습니다. 운동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죽을 힘을 다해 싸웁니다. 전심전력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시합에서 싸우는 선수처럼 죽을 힘을 다해 목숨을 바쳐 최선을 다했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사람이 밤을 새워 수고하고 죽을 힘을 다해 싸웁니까? 그는 그렇게 해야 분명한 목표를 찾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크고 놀라웠을 아니라, 자기에게 알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너무 놀라워서 그것을 전하지 않으면 된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발견한 사람이 그렇게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만류해도 그의 길을 막을 없습니다.

바울이 정말 그런 싸움을 싸웠음을 보여주는 구절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의 3 전도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계획을 합니다. 신도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2~24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정도의 각오와 결단으로 바울이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입니다. 우리 교회가 배우고자 하는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들도 바울이 발견한 은혜의 복음을 발견한다면 우리의 남은 삶을 그처럼 전심전력할 있을 것입니다. 아니, 바울은 복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디모데와 우리에게 전심전력하라고 당부하는 아닐까요?

우리가 은혜의 복음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은 결코 장난이 아닙니다. 주님이 생명을 바치시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과 바꾸면서 전하고자 했던 복음입니다. 일에 전심전력하여 해에는 더욱 분발합시다.

 

 

바울의 인생 교훈2. 포기하지 말라

바울은 자신이 경주를 마쳤다고 고백합니다. 달리기 시합에서 정해진 코스를 완주했다는 말입니다. 단거리 경주는 100, 200, 400미터입니다. 중거리는 800, 1600, 3000미터를 달려야 합니다. 마라톤은 42.195킬로미터를 달리는 경주입니다. 모든 경주는 일단 완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선수는 실격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달려가야 경주를 완주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할까요? 우리는 이제 끝냈다!’ 말합니까? 일이 너무 힘들고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끝낼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도 그런 장애물이 많이 있었고 때마다 그는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죽는 알았다는 말입니다. 죽을 고생을 하면서 그가 깨달은 것은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교훈이었습니다. 바울은 깨우침을 환난 중에 있는 고린도교인들을 격려할 들려줍니다(고린도후서 1:8~9).

그뿐 아니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는 말을 보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임을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라디아서 6:9)

 

선한 일을 하고, 옳은 일을 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을 하는데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낙심되는 상황이 옵니까?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뜻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수고한 만큼 결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낙심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포기하면 된다고 경주를 마쳐야 결과를 있다고 바울은 용기를 독려합니다.

금년에 우리는 경주를 마쳐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적은 없습니까? 정말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때는 없었습니까? 동안 했던 모든 일들이 헛수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까? 싫고 밉고 자신이 없어지지는 않았습니까? 바울 사도께서 말하기를 소망까지 끊어질 정도로 힘들었다 합니다. 그러나 자리에서 바울은 진정한 믿음을 배웠고 진정한 사도로 거듭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진정한 복음의 장인으로 세워지기 위해서 금년의 이런 고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진정한 신자로, 하나님의 진실된 자녀로 거듭나기 위해 우리에게 금년의 고난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경주를 완주해야 결과가 나올 아닙니까?

 

 

바울의 인생 교훈3. 주님께 신실하라

바울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반대말은 믿음에서 떠난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번째 편지에서 믿음을 떠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종류는 그릇된 가르침을 좇아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을 먹지 말라는 사람들입니다(딤전 6:1~4). 이것은 이단사상을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단은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주의하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만이 그런 이단사상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집단사고(Group Think)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집단에서 걸러지고 통합되며 지혜로운 결정을 하는 것을 집단지성이라고 하고, 사람의 생각이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압도하여 반대를 용납하지 않고 질문을 없게 하는 조직에서는 집단사고가 작동할 있습니다.

나라나 단체에 집단지성이 발휘되면 적은 힘을 가지고도 일을 이루어낼 있습니다. 그러나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지게 되면 나라와 단체를 혼란에 빠트리며 일을 그르칠 있습니다. 지난 정부 아래서 평창 올림픽이나 자원 외교 또는 개성공단의 문제에 대하여 집단지성이 발휘되었는지 집단사고가 발휘되었는지 지금 언론의 시험대 위에 있습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도 사람에게는 허물이 있고 오류가 있습니다. 기독교 인물 중에 흠이 없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사람의 가르침이 아니라 피차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16)

 

교회나 선교회 또는 구역 같은 작은 모임이라도 서로 뜻을 모으고 협력하고 상의하여 결정하는 훈련이 되지 않고 사람의 일방적인 뜻에 의해 모든 일이 결정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방관한다면 조직이나 단체는 반드시 바른 길과 믿음에서 떠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 개신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이유는 대형화의 결과인 집단지성이 발휘되지 않은 낡은 가죽부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부대가 터져 귀한 포도주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새로운 포도주는 새로운 세대입니다. 새로운 세대를 담을 새로운 가죽부대가 필요합니다. 낡은 가죽부대에는 새로운 포도주를 담을 사람은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 지금은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방식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전에는 신령하고 존경 받는 목회자가 기도원에 가서 응답 받고 돌아와서 교회의 중대사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 구성원 전체의 동의와 찬성을 얻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시대입니다.

사실은 말씀 선포도 이와 유사합니다. 사람만이 말하고 가르치고 가르침에 대한 토의나 이의제기 또는 질문이 없으면 교회는 건강하고 바른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며 다른 생각을 공유할 교회의 가르침도 더욱 풍성하고 건강해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새로운 가죽부대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돈을 사랑하여 탐심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일러줍니다(딤전 6:1). 이렇게 그릇된 가르침과 탐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에서 떠날 있다고 바울은 일깨워줍니다. 바울이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할 , 그는 주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지키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범사에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의사를 결정하고 재정을 관리한다면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바울은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경주를 완주하고 믿음을 굳게 지킨 자신을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면류관은 자신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신다고 합니다.

연말이 되면 방송국에서는 해의 연기 대상 수상자를 선정합니다. 분야에 대상자를 선정하고 상을 줍니다. 바울은 우리의 인생이 끝나면 주님이 오시는 날에 이런 시상식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시상식에는 대상만을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의 시상식에는 많은 사람이 상을 받습니까? 그것은 저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지만 동일한 주님을 따라 일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은 이방인들에게로 보내심을 받았고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2:8). 그러나 베드로 안에서 일하신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도 일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빌립보서 2 13절에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사람 안에서 사람에 맞게 소원을 주시며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촌에서 태어나 자란 어부입니다. 그가 유대인에게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육과 문화의 도시 길리기아 다소(Tarsus)에서 태어나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세계인이요 지식인입니다. 그가 세계를 향하여 이방인들에게로 복음을 들고 마음과 소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 사람에게 그에 맞는 몫의 일을 주시고 안에서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황금면류관이 아닌가?

바울은 자신이 받을 상이 의의 면류관(The Crown of Righteousness)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트로피는 대부분 황금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받을 면류관이 황금면류관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의라는 말은 의롭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많은 편지에서 특히 로마서에서 의롭다 함에 대하여 많이 언급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1:17).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5:1) 합니다. 여기서 의롭다 또는 의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아갈 있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의 전통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가장 복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73:28) 합니다. 하나님 앞에 기쁨이 충만하고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다고 합니다( 16:11).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꼬 라고 하면서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뵙기를 갈망합니다( 42:1~2).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에게 가장 복은 앞에 나아가 그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의롭게 모습을 가리켜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쓰게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그렇게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달려갈 길을 완주하는 경주자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주님의 가르침을 지켰으므로 이제 주님이 벌려 맞아주실 것을 소망하고 기대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사람 바울이 소망하는 미래요, 디모데와 우리들에게 꿈꾸라고 일러주는 소망입니다.

 

 

바울의 유언 같은 교훈

해를 보내고 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바울의 인생회고는 해맞이보다 나은 모범을 보여줍니다. 바울 사도께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우리에게 비쳐주는 삶의 교훈은, 인생은 무한정 기회와 시간과 건강이 있지 않고 정해진 분량이 다하면 떠날 때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제한된 분량의 인생을 때는, 전심전력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완주하며, 끝까지 주님을 향한 신의를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삶을 들어 디모데와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울의 인생회고입니다. 그렇게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사람은 이제 주님이 벌려 맞아주실 것을 기대하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자고 오늘 해의 마지막에 도달한 우리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에게도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입니다.

바울은 정말 마지막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깊이 느꼈기에 이런 유언적 편지를 보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일의 해를 기다리면서 달음질해야 경주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이신 바울 사도의 유언 같은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들도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완주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킵시다. 우리가 그렇게 있도록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바울과 베드로 안에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

 

첨부파일 2017년 12월 31일 주일 낮예배 설교-바울의 인생 회고.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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