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소감
도미닉 크로산의 책, ‘하나님과 제국’
안식일, 죽음의 리셋을 일상으로 가져오는 혁명
제목:
아브라함 헤셸을 넘어 도미닉 크로산으로:
안식일, 제국의 폭주를 멈추는 ‘거대한 리셋’
https://www.youtube.com/shorts/eu4lnZgDuCM
오늘 도미닉 크로산의 《하나님과 제국》을 읽으며 안식일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흔히 안식일 하면 아브라함 헤셸의 ‘시간 속의 성소’를 떠올리지만, 크로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안식일을 지극히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안식일은 ‘예배를 위한 휴식’이 아니라 ‘휴식 자체가 예배’가 되는 날입니다.
크로산에게 안식일은 제국적 문명이 강요하는 ‘불의의 정상성’에 던지는 폭탄과 같습니다. 제국은 끊임없이 생산하고 착취하며 “이것이 세상의 순리”라고 속삭이지만, 안식일은 그 전차를 멈춰 세웁니다.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 노예, 심지어 가축까지도 평등하게 쉬어야 한다는 이 법은 하나님의 ‘분배적 정의’가 실현되는 실재입니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야 리셋의 의미를 깨닫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인간은 결국 죽음의 순간에 가서야 모든 소유와 계급이 무효가 된다는 ‘리셋’의 진리를 깨닫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크로산은 말합니다. 죽어서 당하는 강제적 리셋을 기다리지 말고, 안식일이라는 제도를 통해 살아서 자발적으로 그 리셋을 연습하자고 말이죠.
그 리셋을 지상에서 살아낸 사람들, 스켈리그 마이클의 수도사들
이 ‘자발적 리셋’의 극적인 모델이 바로 아일랜드 서쪽 끝, 망망대해 위에 솟아오른 바위섬 ‘스켈리그 마이클(Skellig Michael)’의 수도원입니다. 수도사들은 제국의 풍요에서 스스로 ‘철수’하여, 죽어서야 마주할 그 완벽한 평등과 무소유를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미리 살아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안식일 리셋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이 리셋은 단순히 일을 쉬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 그것은 침묵 속에서 내면의 탐욕을 직시하는 존재의 리셋이며,
- 성경과 현실을 치열하게 분석하여 불의를 폭로하는 지성의 리셋입니다.
- 무엇보다 가장 구체적인 리셋은 방향의 전환에 있습니다. 평일의 우리가 더 많은 성취를 위해 ‘투자’에 매달렸다면, 안식일은 그 손을 펴서 타인을 향한 ‘자선과 봉사’로 나아가는 날입니다. 내 이익을 위해 세상을 통제하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경제적 리셋인 셈입니다.
안식일의 빛이 비추면 세상은 다시 창조의 첫날로 돌아갑니다. 스켈리그 마이클의 파도 소리처럼, 안식일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죽음 앞에서야 멈추겠습니까, 아니면 지금 이 평등과 자선의 빛으로 삶을 다시 시작하겠습니까?
2. 팟캐스트 1인칭 나레이션
인간은 참 묘한 존재입니다. 평생을 더 많이 가지려 버둥거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죽음’의 문턱에 가서야 깨닫곤 하죠. “아, 원래 내 것은 없었구나. 우리는 결국 모두 평등하구나.”라는 그 거대한 리셋의 진리를 말입니다.
오늘 제가 만난 도미닉 크로산은 우리에게 아주 발칙하고도 위대한 제안을 던집니다. 죽어서야 깨달을 그 리셋을, 지금 우리 삶 한복판으로 끌어오자고요. 그게 바로 ‘안식일’의 진짜 얼굴이라는 겁니다.
크로산에게 안식일은 단순히 교회 가는 날이 아닙니다. ‘예배를 위해 쉬는 날’이 아니라, ‘쉬는 것 자체가 예배’가 되는 혁명의 날이죠. 제국은 멈추지 말고 생산하라 독촉하지만, 안식일은 그 전차를 멈춰 세우고 주인부터 가축까지 모두를 평등한 자리로 되돌려 놓습니다. 죽어서 당할 강제적인 리셋을, 매주 자발적으로 연습하는 ‘작은 죽음’의 시간인 셈입니다.
이 리셋을 위해 세상 끝까지 달려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크로산이 강조한 아일랜드의 바위섬, ‘스켈리그 마이클’의 수도사들이죠. 깎아지른 절벽 위, 돌집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그들은 제국의 논리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죽음 뒤에나 가능할 법한 완벽한 평등과 무소유를 그 척박한 바위 위에서 미리 살아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리셋은 어떤 모습일까요? 침묵 속에서 내 안의 탐욕을 몰아내고, 치열한 성찰로 세상의 불의를 깨닫는 것... 무엇보다 평소의 우리가 더 큰 성취를 위한 ‘투자’에 몰두했다면, 안식일만큼은 그 손을 펴서 조건 없는 ‘자선과 봉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축적하던 에너지를 타인을 위한 분배로 전환하는 것, 그것이 가장 구체적인 안식일의 리셋입니다.
안식일의 태양이 뜨면 세상은 다시 창조의 첫날로 돌아갑니다. 모든 차별이 평평해지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빛의 시간’. 여러분은 죽음 앞에서야 이 진실을 마주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오늘, ‘성취’를 멈추고 ‘자선’의 리셋 버튼을 누르시겠습니까?
망망대해 위 수도사들의 기도가 오늘 우리 곁의 고요한 안식으로 다가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