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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눔

오늘의 남부군으로 살지 않는 법

작성자조해강|작성시간26.01.21|조회수14 목록 댓글 0

오늘의 남부군으로 살지 않는 법

 

https://www.youtube.com/shorts/zSVwdsDzwAY

 

 

(도입: 영화 '남부군'과 지리산의 비극)

 

최근 영화 <남부군>의 복원본을 시청했습니다.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지리산 자락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기록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념과 사상, 혁명과 꿈. 모두 사람이 바라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꿈을 담아내기에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고상욱이 선택한 위장자수는, 그 지옥 같은 한계 속에서 내린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생존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전개 1: 위계라는 이름의 감옥)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빨치산과 토벌군이 한 아이를 가운데 두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념으로 대적하던 그들도 아이의 생명 앞에서는 멈춰 섰습니다. 하지만 비극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조직과 위계질서라는 감옥에 갇혀,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허무하게 앗아가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시대의 굴레에 갇혀 헤매다 결국 비극을 맞이한 것입니다.

 

 

(전개 2: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자유)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예수님의 시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의 속국이면서도 ‘종 된 적이 없다’며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죄는 무엇일까요? 바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 줄 붙들고 사는 삶입니다. 진리를 잃어버린 니고데모는 체면과 권위의 감옥에 갇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고, 우물가의 여인은 세상의 시선을 피해 은둔자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만난 니고데모는 두려움을 벗고 예수의 장례에 동참했으며, 여인은 대명천지 밝은 세상으로 뛰어 나왔습니다.

 

 

(전개 3: 나를 가두는 현대의 올가미)

 

좌익이든 우익이든, 사람을 가두어 그 생명을 앗아가는 것은 무엇이나 죄악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를 가두는 굴레는 무엇일까요? 과거에 저는 그것이 도덕적 연약함이나 종교적 계율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올가미는 내 곁에, 그리고 내 안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체면’과 ‘세속적인 성공에 대한 갈망’이었습니다.

 

 

(맺음: 하나님의 동역자로 사는 삶)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더 이상 체면에 매여 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공을 위해 영혼을 갈아 넣는 삶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참된 자유와 만족, 그리고 감사의 경험입니다.

 

매 순간 저를 얽어매는 올가미가 무엇인지 분별하며 하나님 앞에 서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오늘의 남부군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참으로 자유롭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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