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8일 주일 메시지
누가의 두 번째 하나님 나라 이야기 22
제목: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
사도행전 18:19~19:20
설교 목적
본래 복음전도는 하나님의 도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도는 구원의 도(The Way of Salvation)였으며, ‘의(義)의 도(道)’였다. 그리고 그것은 초기교회 시절에는 ‘나사렛 이단의 도’라는 비방을 받았다. 그런데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지혜였으며 하나님의 비밀이었다. 복음전도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었다. 그 청지기들이 전해준 복음의 말씀을 믿고 따를 때 사람들은 구원의 길에 들어선다. 교회는 복음의 도를 전파하고 가르침으로 세워지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바울의 전도 사역에서 이런 양육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 양육을 잘 받은 사람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였고, 그들은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성적인 설교자인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주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도를 분명하게 가르쳤다. 아볼로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공통적으로 ‘요한의 세례’만을 알 뿐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는 알지 못했다.
나는 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바울의 사역에서 역점을 둔 것이 바로 이렇게 충성된 일꾼들을 가르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 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 설교는 또한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바울의 복음을 통해서 명확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설교 개요
1. 복음전도란 무엇인가?
2.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성인 아볼로
3. 에베소의 어떤 신자들
4. 에베소에서 일어난 말씀의 부흥
5. 결론
1. 복음전도란 무엇인가?
복음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를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며 그 뜻을 따라 살 것을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을 하나님의 도(道, 헬. 호도스 hodos, way)를 따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는 결국 하나님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길 때 그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면 그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예배당을 마련하고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해 적절한 홍보를 하면 세워진다는 인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려면 가장 먼저 재정이 필요하고 그 재정으로 예배당을 마련한 뒤에 그 예배당에 사람들을 모일 수 있도록 전도하는 것을 목회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합니다. 이때 전도는 사실 홍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예배당을 먼저 마련하고 예배당을 크고 멋지게 지음으로 교회를 세우려는 생각이 옳지 않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전도의 길이 막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홍보가 전도가 아님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 예수님과 사도들이 어떻게 교회를 세웠고 복음을 전했는지 다시금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즉, 복음전도가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린도전서 1:21
여기서 ‘전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케리그마(kerygma)’라고 하는데 그 말의 뜻은 전령(헬. 케뤽스 keryx, herald)이 전하는 소식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신을 복음을 ‘전파하는 자’라고 소개할 때 전령(keryx)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딤전 2:7). 그리고 전령은 그를 보낸 이의 메시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바로 복음이며 그 메시지를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란 결국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비밀(God’s mystery)’이라고 불렀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전령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왔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린도전서 4:1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밀을 전하는 사람(헬. 오이코노모이 뮈스테리온 쎄우 οἰκονόμοι μυστηρίων Θεοῦ, stewards of the mysteries of God)’입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 교회에 오세요!’라든가 ‘예수 믿으면 복을 받습니다!’ 정도의 짧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으며, 또한 그것은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동시에 이 세상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마스터플랜(Master Pla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것을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이라고 불렀습니다(엡 3:9).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고 익히는데 힘쓴다는 말은 결국 우리 교회의 구성원들이 복음전도자가 되는 훈련을 하는 일에 힘쓰겠다는 결단입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복음전도의 활동이었으며 그 활동을 통해서 복음전도자들이 세워졌습니다. 사도행전 18장 후반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세운 복음전도자 부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성인 아볼로
그 부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그 부부는 본래 로마에서 고린도로 이주해 온 천막제조업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전도하러 왔을 때 이 부부를 만났습니다. 사도 바울도 전도하는 시간 외에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천막 치는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과 함께 살면서 일도 함께 하고 바울로부터 복음의 말씀을 배웠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일년 육개월 동안 복음을 전한 후에 그 도시를 떠나 아시아로 갈 때 브리스길라 부부는 바울을 따라 나섰습니다. 이로 볼 때 그 두 사람은 바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제자로서 추종했음이 분명합니다. 바울은 이 두 사람을 자신의 동역자들(헬. 쒼에르고이 synergoi, fellow workers)이라고 로마교회에 소개했습니다(로마서 16:3).
바울은 브리스길라 부부를 데리고 고린도를 떠나 배를 타고 아시아의 도시 에베소로 왔습니다. 거기서도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의 말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울의 메시지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는지 좀더 머물면서 가르쳐 주기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님의 뜻이면 내가 다시 올 것이라고 말하고는 다른 도시로 떠났습니다(행 18:21).
바울이 방문한 도시들을 보면 우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자기를 파송한 안디옥교회로 돌아갔습니다. 아마 두번째 선교 결과를 보고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시아의 여러 교회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북쪽 지방으로 가서 순회선교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전에 세운 교회들을 방문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교회들이 든든하게 서 가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전에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에베소에 왔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지성인 아볼로입니다. 누가는 그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24.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25.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사도행전 18:24~26
알렉산드리아는 고대에 지중해에서 가장 발달된 문명을 자랑하던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당대 최대의 도서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공부한 지성인이자 유대인인 아볼로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언변이 좋다는 말은 학문이 깊다는 말이며 성경에 능통하다는 말은 유대인으로서 구약성경을 어려서부터 잘 배웠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더 나아가 예수에 관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식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요한의 세례만을 알 따름이었다고 누가는 소개합니다. 아볼로는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자신이 알고 믿는 바를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은 율법과 선지자의 말씀을 풀어주는 것이었다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또한 세례 요한의 가르침도 전했을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야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를 들은 후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좀더 정확하게 풀어서 말해주었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볼로는 아마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쏟은 지성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구약성경에도 능통합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 부부가 볼 때 아볼로의 가르침에는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사도 바울로부터 지난 2년 동안 복음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잘 배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볼로는 아직 하나님의 경륜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때 회당에는 아볼로처럼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과 바울이 변론을 한 까닭은 바울 자신이 주의 계시로 말미암아 깨달은 비밀의 경륜을 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경륜을 분명하게 배우고 깨달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부족한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볼로처럼 학문이 높은 지성인도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지 않았다면 깨달을 수 없고, 심지어 성경에 능통한 사람도 하나님의 경륜을 모르고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지도를 받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의 메시지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역자의 마음으로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경륜을 더 자세하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결과 아볼로는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활용하여 새롭게 배우고 깨달은 하나님의 경륜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선명하게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이 비밀의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열정으로 전도의 길을 나서기도 했습니다.
27.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함으로 형제들이 그를 격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 영접하라 하였더니 그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28.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언하여 공중 앞에서 힘있게 유대인의 말을 이김이러라
사도행전 18:27~28
아볼로는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요한의 세례에 머물러 있던 그는 하나님의 도를 새로운 차원에서 더 분명하고 자세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지를 분명하고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고린도 지역에 가서 많은 형제들에게 신앙의 확신을 줄 수 있는 성경교사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예수가 그리스도시라고 공중 앞에서 유대인들과 논쟁하여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 볼 때, 한 사람이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하나님의 경륜을 확실하게 배우고 깨닫는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단지 성경을 많이 배웠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를 바르게 이해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습니까? 성경에 대한 여러 지식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종합하여 하나님의 경륜으로 이해하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확신할 수 없다면 성경 지식은 단지 지식으로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런 지식은 힘이 없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처럼 성경을 알되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 에베소의 어떤 신자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지성인 아볼로를 가르친 브리스길라 부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제자들 중에 아직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을 사도 바울이 일깨워 준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 이야기는 사도행전 19장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3.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사도행전 19:1~3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어떤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 뿐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 때 그들은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안수하여 기도할 때 그들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본문은 성령세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즉,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은 받지 못했는데 바울이 그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이 매우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으므로 바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르쳤는지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장에서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던 아볼로에게 브리스길라과 아굴라 부부가 하나님의 도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풀어 가르쳤던 것을 생각해 보면,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에게 바울이 가르친 것도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이 각 성에서 회당 설교를 할 때 가르친 메시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하나님의 도였다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예수가 그리스도 주님이시라고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분명하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밝히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반대하고 그를 배척한 까닭은 ‘예수는 주님이시다(᾿Ιησοῦς ἐστὶν Κύριος, Jesus is the Lord!)’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도에 있어서 예수가 예언자들이 말한 바로 그 주님이시며 메시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던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바울이 복음을 가르쳤을 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요한의 세례와 그리스도의 세례는 어떻게 다를까요? 성경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그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사실 예식의 차원에서 보면 요한의 세례나 예수의 세례 모두 물에 잠긴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보았기에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의 메시지에 무언가 빠진 것이 있다고 알아보았으며,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은 어떤 제자들의 삶에 부족함이 있음을 느꼈던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만을 받은 사람들이 배운 것은 요한의 교훈입니다. 그들의 복음에서 부족하거나 희미한 것을 바울 사도는 증거했으며 그것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핵심 메시지를 깨달은 사람들은 어떤 제자들의 언행에서 이 중요한 복음이 담겨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하여 이런 말을 했습니다: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린도전서 2:13~16
확신하건대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을 것입니다. 성령이 계시하지 않는다면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고전 12:3). 성령이 임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에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인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는 혈통이나 종교적 전통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한 백성이 되며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을 물려받을 수 있고 그 세상을 열어가는 대리인이 됩니다. 그런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막연히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신들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그들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καινὴ κτίσις, new cre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고후 5:17). 자신들 가운데서 소원을 주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 그것은 성령을 받은 가장 큰 증거였습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으며 장차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새로운 세상은 예수님이 주님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의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강림을 경험한 제자들처럼 예수가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시라고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는 담력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요한의 세례만을 알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바울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은 열두 사람쯤 되었습니다.
4. 에베소에서 일어난 말씀의 부흥
이렇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아마 하나님의 경륜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용기를 얻어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 누가는 이 상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9.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10.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사도행전 19:8~10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이 얼마나 기뻤을까 상상해 봅니다. 돌이켜 보면 바울의 전도 사역은 고난과 배척의 연속이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지방행정관들이 그 도시에서 떠나기를 요청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악의를 품은 유대인들을 피해서 급히 달아나야 했습니다. 그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바울의 사역을 방해했습니다. 그렇게 배를 타고 아테네에 이르렀는데 아테네의 지성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바울의 복음은 몇 년 동안 외면과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린도에서부터 그 복음이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일년 육개월 동안 바울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복음으로 훈련하여 동역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제 에베소에 왔습니다. 그리고 열두명의 제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중심으로 석달 동안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복음에 감동하여 받아들이자 어떤 유대인들이 일어나 바울의 복음을 비방하며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회당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란노 서원은 일종의 공공도서관으로 강연을 할 수 있는 강당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바울의 복음은 세력을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바울의 복음을 배우고 익히면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에바브라(Epaphras)라는 제자는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훈련을 받은 후에 자기가 스스로 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의 제자 에바브라는 에베소에서 산을 넘어 자기 고향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골로새와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의 도시들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골 1:6~8, 4:12~13). 바울 사도는 자신의 제자 에바브라가 세운 교회들에게 별도의 편지를 보내서 신앙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그 편지들 중에 하나가 골로새서입니다.
복음이 배척을 받은 지방에서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만이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이 한 지역에서 세력을 얻으면 그 복음을 받아들인 제자들이 하나 둘씩 생기고 그들을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믿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그 결과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그 지역에 변화를 일으키는 중심지가 됩니다. 누가는 바울의 에베소 사역에서 바로 그런 변화의 역사가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바울의 복음전도 현장에서 병자가 고침을 받으며 악귀도 떠나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사역을 흉내내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그 지역에서 유명해졌다는 말입니다. 마침내 바울의 복음전도는 그 지역의 문화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마술을 행하던 사람들도 그 일이 허망함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바꾸었습니다. 누가는 그 사건을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19.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20.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19:18~20
에베소에서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왜 자신들의 책을 모아 공중 앞에서 불살랐을까요? 그 책은 매우 많아서 값으로 치면 은 오만개에 해당했다고 합니다. 그 책은 마술에 대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활방식이 허망함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수많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쳤을 때 사람들에게 말씀이 깊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에베소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병자가 고침을 받고 악귀가 떠나갔습니다. 그 후에는 거짓 사역자들의 위선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만인 앞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런 일은 마술이나 사기로 만들 수 없는 본질적인 변화였습니다. 하나님이 에베소 교회를 통해 일하심이 분명했습니다.
에베소의 마법사들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업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도를 따르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입니다. 마법으로 사람들을 속여 이득을 취하는 것은 더 이상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임을 깨닫고 나니 그렇게 살아온 과거를 청산하기 위하여 마법에 대한 책을 모두 불살랐을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이 한 지역에서 두루 전파될 때 힘을 발휘하고 심지어 그 도시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성경은 소개합니다.
비록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알지라도 또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다면 그런 삶과 사역에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도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확신에 이른다면 달라집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의 메시지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보고 데려가서 더 자세하게 하나님의 경륜을 가르쳤던 것은 그들 부부가 바울 사도에게 일년 육개월 동안 매일 훈련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므로 성경에 대해서도 복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경륜에 정통한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볼 때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모태신앙인 아볼로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배워야 하는 신자들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배우기를 거부하고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우기면서 바울의 복음을 외면하고 배척했다면 복음전도자들은 다른 도시에서처럼 그렇게 다시 다른 도시로 옮겨가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식이 높고 성경에 정통한 아볼로는 천막제조업자 부부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하나님의 도를 잘 듣고 겸손하게 배웠습니다. 에베소의 어떤 성도들도 바울의 복음을 받고 그 동안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뜻을 깊이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여러 사람들에게 그 복음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바울에게 인도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경륜 곧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힘을 얻고 흥왕해졌습니다. 말씀의 부흥이 도시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허망한 것을 붙들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며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그 길을 돌이켜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참 인간의 삶을 회복하려고 애쓰며 그 결과 오늘의 도시가 새롭게 변화되는 그런 일이 지금도 가능하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 본문은 우리에게 이런 도전을 하고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5. 결론
저는 오늘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그것을 따라 살며 그것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아무나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나서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방에 다니며 회당을 방문했습니다. 수많은 유대인들에게 그 복음을 전했지만 가는 곳마다 외면을 당하고 배척을 받았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은 노골적으로 바울을 대적하여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괴롭힌 것은 바울이 바리새파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이미 알고 믿고 있는 신앙의 체계와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바울의 복음은 기존의 신앙을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배척을 받을 때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처럼 제대로 충분히 긴 시간 동안 훈련을 받으면 아볼로 같은 학식 있고 성경에 능통한 사람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처럼 열두 제자가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두란노 도서관 강당에서 이년 동안 집중적으로 말씀을 가르친다면 그 복음이 온 아시아에 퍼지고 에베소 도시를 뒤집어 놓을 수 있음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를 보건대 하나님의 복음전도는 배척과 박해의 과정을 이기고 나서야 비로소 결실할 때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복음의 말씀을 철저하게 배우고 익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과 같은 수준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한 사람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저는 지난 6년 동안 하나님의 경륜을 설교하고 가르쳤습니다. 모든 설교에서 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유튜브로 이 말씀을 나누고 책으로 출판하여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경륜은 그 동안 외면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배워보겠다는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복음전도를 할 때 어떤 배척을 받고 방해를 받았는지 생각해 볼 때 아직 저는 멀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그 정도로 고난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경륜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중요한지를 점점 더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두 사람과 이 복음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의 경륜을 전하고 가르치고 동참하는 일에 바칠 생각입니다. 그리고 저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동역자를 세우기 원합니다. 그리고 에베소의 열두 제자들처럼 처음에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 뿐이라고 했던 그 사람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그 결과 그들과 함께 두란노 학당에서 이 복음, 곧 하나님의 경륜이 세력을 얻기까지 저 자신을 바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회를 세운 방식은 예배당을 건축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두란노 도서관 강당을 빌려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훈련받은 사람들이 흩어져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웃 도시에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겨난 것입니다. 마침내 그처럼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깨닫고 삶에 대한 새로운 확신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연합하여 에베소를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여주는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교우 여러분, 저는 이런 확신과 기대를 가지고 새소망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함께 바울의 복음인 하나님의 경륜을 배우고 익히며 훈련할 때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일이 오늘날 우리 도시에서 재현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은 이 일에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끝>.
<주일메시지 요약>
기독교의 신앙은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배우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신앙인은 구도자들입니다. 진리를 찾고 배우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리의 말씀을 명확하게 배우고 깨달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실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자신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8장과 19장에는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과 사도 바울로부터 2년 동안 훈련을 받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입니다.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하게 가르쳤습니다. 사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학문이 높고 구약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설교를 들은 브리스길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부족한 것이 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데려다가 진리의 말씀을 더 정확하게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아볼로는 교회의 인정을 받는 복음전도자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있게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에베소에서 열두 명의 신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요한의 세례만을 알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에 대하여 자세하게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자들은 바울에게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바울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바울은 에베소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쳤습니다. 훗날 바울은 에베소서를 쓰면서 그 진리가 바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베소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두란노 서원을 중심으로 힘있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렇게 진리에 대하여 눈을 뜬 사람이 늘어나자 온 아시아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전도의 중심지인 에베소에서 도시의 문화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에베소에서 흥왕해졌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한 도시가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만약 우리가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쓴다면 주님은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대와 희망과 믿음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