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세계의 산

아콩카구아(6,995m)-아메리카대륙 최고봉

작성자이블|작성시간12.11.22|조회수29 목록 댓글 0
 
라인홀트 메스너의 남미 아콩카구아 남벽 디레티시마 등반

아메리카 대륙 최고봉 아콩카구아(6,995m) 정상을 인류 최초로 밟은 산악인은 스위스의 유명 가이드 마티아스 추르브리겐이다. 그는 1897년 1월 14일 영국 산악인 핏제럴드와 북서벽으로 정상 아래 600m 지점까지 진출했다. 그 때 핏제럴드가 고산병으로 등반을 포기하면서 추르부리겐에게 단독으로 등정할 것을 당부해, 그는 아콩카구아 초등자가 되었다.

1934년 폴란드 대는 아콩카구아 동벽의 가파른 빙하를 오르며 두 번째로 신 루트를 개척했다. 이 루트는 아콩카구아의 여러 등로 중 매우 이상적인 루트로 평가된다.

직등루트 개척 위해 ‘사우스 티롤 안데스 등반대’ 조직

아콩카구아 남벽은 ‘안데스의 아이거 북벽’이란 별칭을 지니고 있다. 이 벽은 해발 4,100m 지점의 ‘오르꼬네스’ 빙하에서 정상까지 대략 3,000m 높이로 솟아 있다. 전체 벽 높이가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1,800m)보다 1,100m 이상 더 높다. 이 험한 수직 벽으로 거대한 눈사태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고, 예고 없이 다가오는 폭풍설의 주범(主犯), 즉 ‘비엔또 블랑꼬(Viento blanco, 화이트 윈드)’라는 폭풍이 커다란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이 강풍은 진행 중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파괴시키는 난폭한 바람이고,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빙결(氷結)시키는 혹한을 동반한 찬바람으로 생명에 위협적이다.

남벽은 1952년까지 등반 불가로 판단되어 독일권 산악인들에게 관심의 대상 밖이었다. 이 거대한 남벽의 등정 가능성을 최초로 피력한 산악인들은 남미 피츠로이(3,450m)를 초등한 프랑스의 리오넬 테레이와 귀도 마뇽이었다. 리오넬 테레이는 1947년 라슈날과 아이거 북벽을 2등했고, 훗날 마칼루(8,463m)를 초등했다.


▲ 아콩카구아 남벽 1,000m 아래에 튀어나온 빙벽. 프랑스 초등대원이 아이스노즈(Ice Nose)로 하산하고 있다.
이 거벽 등정의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팀은 레네 페를레 대장이 이끄는 프랑스 등반대였다. 1954년 뤼시앙, 에드몽, 피에르, 로베르, 귀이, 아드리앙 6명의 용감한 대원은 혼신의 힘을 기울여, 7일 만에 탈진과 동상을 극복하고 남벽을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대는 낙빙(落氷)과 눈사태 위험을 피하기 위해 남벽의 중앙 버트레스(buttress)로 등반을 시작했다. 그들은 악천후가 돌발할 경우 빠른 속도로 베이스캠프까지 하산하기 위해 수직의 버트레스에 고정 자일을 설치했다. 그들은 버트레스 위쪽의 거대한 빙원과 벽 중앙의 사암대(砂巖帶), 그리고 튀어나온 수직 빙벽을 돌파하고, 벽 상부의 현수 빙하에서 직등하는 대신 우측 대각선 방향으로 향하는 엑시트 램프(exit ramps)를 오르고 다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등정했는데, 정상 부근에서 폭풍설을 만나 참사 당할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66년 두 명의 아르헨티나 산악인 헤오르흐와 오마르는 아콩카구아 남벽을 두 번째로 등정했다. 그들은 남벽의 중앙 벽을 등반하지 않고, 벽 우측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프랑스 루트의 상부 엑시트 램프로 이어지는 변형 루트를 개척했다.

또한 같은 해 프리츠 모라벡 대장이 이끄는 국제 안데스 등반대가 프랑스 등반대 루트의 우측 빙벽에 새로운 변형 루트를 개척하며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전진해, 벽 중앙의 프랑스 대 루트의 사암대로 이어지는 루트로 등정했다. 이 루트는 낙빙 때문에 조난을 당할 위험이 크다.

1974년까지 프랑스 대의 루트를 일본 대가 2회, 스페인 대가 1회 재등했다. 당시 히말라야 낭가파르바트(8,125m) 루팔벽(남벽, 1970년)과 마나슬루(8,163m, 1972년) 등정자인 이탈리아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아콩카구아 남벽의 직등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소규모의 ‘사우스 티롤 안데스 등반대’를 조직했다.

메스너는 전년도 사우스 티롤산악회 소속의 젊은 클라이머 이외르글, 요켄과 함께 알프스의 몬테 펠모, 마르몰라타, 푸르체타봉에 신 루트를 개척하며 그들의 뛰어난 등반 역량에 탄복했다. 메스너는 그들에게 아콩카구아 남벽에 디레티시마(Direttissima·직등루트)를 개척하자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흔쾌히 그 제안을 수락했다. 노련한 산악인 콘라트와 사진사 에른스트도 참가에 동의했고, 오스발트 욀츠(별명 황소) 박사도 팀 닥터로 참가하기로 했다. 욀츠 박사는 1972년 메스너와 마나슬루 등반대에 함께 참가한 경력이 있는데, 등반 실력이 매우 출중한 클라이머이며 의사였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포터나 셰르파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욀츠 박사의 아내 루트와 메스너의 아내 우쉬가 베이스캠프를 관리하고, 등반대의 요리를 책임지기 위해 참가했다. 두 청년 이외르글 대원과 농부의 아들인 요켄 대원한테는 해외원정 등반이 하나의 아득한 꿈이자 희망사항이었을 뿐이었는데, 메스너를 만나 감격스럽게도 그 꿈이 실현되었다.

노새 때문에 남벽 베이스캠프행 상행 캐러밴 애먹어

1973년 12월 29일 이외르글, 요켄, 에른스트 대원은 남미의 아르헨티나를 향했다. 그들이 탑승한 보잉기는 브라질에 착륙해 재급유를 받고 오후 3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다. 며칠 전 먼저 도착한 메스너가 버스 한 대와 트럭 한 대를 대절해 놓고 공항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화물을 트럭에 싣고 나서 시내에 거주하는 독일 교포의 가정에 초대되어 환대를 받으며 새해를 맞이했다.

1974년 1월 2일. 그들이 탄 버스는 아르헨티나의 대초원을 달렸다. 간밤에 천둥을 동반하며 휘몰아치던 뇌우의 여파로 하늘에는 여전히 낮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은 오후 6시 아콩카구아 등반의 마지막 도시, 인구 10만의 도시인 멘도사에 도착했다. 그들은 입산허가를 신청하기 위해 먼저 경찰서를 찾았다.

그들은 경찰학교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난 이튿날 오전에 서류를 작성해 제출하고, 오후에는 보건소로 가서 건강검진을 받은 다음 오후 5시 반에 입산허가를 받았다. 그들은 오후 6시 뿌엔따 델 잉까 방향으로 출발해 밤 10시에 우사쁠라따에 도착해 호텔에서 숙박했다.

1월 4일. 그들은 오전 10시 출발해 깊은 하천 바닥이 드러난 황량한 지역의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달렸다. 차가 지나가면 바람에 먼지 구름이 길게 일었다. 그들은 낮 12시 뿌엔따 델 잉까의 2,700m 지점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육군 병영에 도착하여 막사의 판자 침상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잤다.

1월 5일. 콘라트, 이외르글, 요켄은 고소적응 훈련 차 높이 3,900m쯤 되는 한 봉우리를 등정하고, 오후에는 노새로 운반할 수 있는 크기로 짐을 새롭게 꾸렸다.  다음날 그들은 노새들에 짐을 실었다. 노새들은 고집불통이어서 등에 실린 짐을 거부하며 여러 번 내동댕이치곤 했다. 노새에 짐 한 개를 세 번 혹은 네 번씩 실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오전 8시 두 여성 우쉬와 루트, 그리고 욀츠 박사가 먼저 출발했는데, 노새가 지나간 뒤로 흙먼지 구름이 공중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오전 10시 이외르글, 콘라트, 에른스트 세 명의 대원들이 출발했다. 노새들이 계속 말썽을 피웠고, 몇 마리는 발굽에 편자를 새로 박아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짐을 운반할 마땅한 노새들을 구할 수 없었다. 메스너가 군인들에게 그날 침낭과 텐트를 베이스캠프로 운반하지 못하면 선발대는 밤새 혹한에 떨어야 한다고 애원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선발대는 이미 멀리 떨어진 ‘꼰플루엔시아(2개의 빙하가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했을 시간이어서 그들을 도로 불러 내릴 수도 없는 딱한 입장이었다.

군인들이 온갖 노력을 경주했지만, 고집 센 노새들은 누워서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짐을 실으면 즉시 내팽개치기를 반복했다. 군인들이 고함을 질러대자 어렵사리 짐이 실린 노새들이 총총걸음으로 계곡 위로 올라갔다. 아직도 3개의 짐이 더 남아 있었고 짐을 실을 노새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난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켄 대원이 혼자 남아서 다음날 나머지 짐을 노새로 운반하기로 결정했다.

무거운 짐을 실은 후발대의 노새 행렬이 한 줄로 늘어서서, 요란한 물소리를 내는 시내를 건너 반대편 갈색 불모지(不毛地)의 아주 가파른 사면으로 트레킹을 계속했다. 꼰플루엔시아에서 에른스트, 콘라트, 이외르글 대원들이 후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새 한 마리가 길에서 미끄러지며 짧은 거리를 추락해 행군이 중단되었다. 그들이 노새 떼를 다시 행진시키는 데 여러 시간이 걸려, 늦은 저녁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 아콩카구아 남벽. 표고차 3,000m의 거벽이다.
1월 7일. 아침에 그들이 잠을 깨었을 때 높이 솟아 있는 아콩카구아 남벽에서 눈사태가 천둥소리 같은 굉음을 내며 계속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밤사이에 폭풍이 식당 텐트를 파손해, 그들은 베이스캠프를 안전한 장소로 옮겼다.

한편 군부대에 혼자 남아 있던 요켄 대원은 짐을 실을 노새를 구할 수 없어서 낭패를 당했다. 군사령관은 전날 노새를 내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노새들이 너무 지쳐서 짐을 운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부대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약속을 하고서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사령관은 다음날 프랑스 대의 베이스캠프까지 짐을 운반해 주겠다고 말했다.

요켄은 10시경에 12kg의 짐을 지고 아콩카구아 남벽의 베이스캠프를 향해서 혼자 출발했는데, 무거운 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는 꼰플루엔시아에 도달했다. 좌측에는 쁠라자 데 뮬라스로 가는 길이 있었고, 우측에는 남벽의 베이스캠프, 즉 쁠라자 데 프랑시아로 가는 길이 이어졌다. 그는 마치 대원들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홀로 잡석 더미와 빙퇴석 위로 고독한 행진을 계속해 마침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1월 8일. 메스너와 욀츠 박사가 중앙 버트레스 밑으로 등로 정찰을 나갔다. 콘라트, 이외르글, 요켄은 남벽을 정찰하기 위해 좌측 모레인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남벽 중앙의 튀어나온 빙벽에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굉음과 함께 계속 떨어져 나와 심연 속으로 사라지는 무서운 광경에 몸서리쳤다. 그 얼음 덩어리들이 버트레스 위로 곧장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남벽을 등반할 때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들이 오후 3시에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니, 군사령관이 전날 약속했던 대로 짐을 실은 노새들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기뻤다.

남벽 상부 대설원에 직등 변형루트 계획

1월 9일. 콘라트와 이외르글이 중앙 버트레스 등반을 시도하려고 올라갔는데, 오후 5시가 되어도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지 않았다. 메스너와 요켄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오해하고 오후 5시 반에 구조 활동에 나섰고, 욀츠 박사는 응급처치 장비를 휴대하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빙하 끝까지 올라갔을 때, 실종된 것으로 여겼던 콘라트와 이외르글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두 사람은 남벽을 더 자세히 정찰하기 위해서 좌측 모레인 지대로 멀리 올라갔는데, 빙퇴석 지대를 왕복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헛소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콩카구아는 구름에 감싸였고 찬바람이 빙하 위를 세차게 휩쓸었다.

1월 10일. 그들은 남벽의 빙벽에 신 루트를 개척하려고 시도했다. 메스너 대장은 등반에 가장 열성적인 요켄을 자신의 자일 파트너로 선택했다. 두 사람은 100m의 자일과 피톤과 카라비너, 크램폰, 아이스 액스를 휴대하고 앞장섰고, 지원조 이외르글과 콘라트도 장비를 운반하며 뒤를 따랐다.

공격조 메스너와 요켄은 프랑스 대의 루트 옆에 위치한 빙탑 밑에 도달했다. 그 빙탑은 걸리(gully)의 상부까지 치솟아 있었다. 메스너의 선등으로 등반을 시작해 위쪽 두 번째 빙원에 도달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더 많은 빙탑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낮 12시 좁은 능선에 도달했다. 그들이 오른 능선에서 구부러진 레지(ledge)가 다음 빙원으로 이어졌다. 빙탑들의 규모가 점점 더 커졌다. 깊은 크레바스가 그들의 등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들은 스노브리지로 크레바스를 건넜다. 빙원이 끝없이 솟아오른 것 같았다. 지원조가 무거운 짐을 지고 이 험난한 루트로 등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이 루트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능선 아래에서 지원조 이외르글과 콘라트를 만나 함께 벽을 내려왔다. 그들은 프랑스 루트 밑에 장비를 보관해 두고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 ①번 실선은 아콩카구아 남벽의 메스너 직등 루트. ②번 점선은 국제대 등반루트로, 상단부는 프랑스대의 루트인 엑시트 램프를 통해 등반했다.
그들이 새롭게 세운 등반계획은 프랑스 루트의 가파른 록밴드의 난이도 6급 오버행에 고정자일 설치한 다음 거대한 수직의 빙원을 돌파하고 벽 중앙의 사암(砂巖) 밴드를 통과한 뒤, 남벽의 상부인 대설원에서 프랑스 대처럼 우측 엑시트 램프로 향하지 않고 곧바로 난이도 5급의 가파른 정상 빙원으로 직등하는 변형루트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1월 12일. 하루 휴식을 취한 공격조 메스너와 요켄은 7시30분 출발했다. 지원조 콘라트, 이외르글, 에른스트가 짐을 운반하며 뒤따랐다. 그들은 8시 벽 밑에 도달해 로프, 아이스 액스, 피톤 등을 휴대하고 등반을 시작했다. 그들은 4,400m 지점에 도달해 고정로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르헨티나 등반대의 제1캠프(5,200m)에 도착했는데, 텐트 폴, 등산화, 가스통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메스너가 중앙 버트레스의 가파른 첫 번째 바위 스텝(step) 밑에 도달했다. 이전의 등반대가 설치해 둔 사다리가 그냥 매달려 있었다. 메스너는 끊어진 사다리의 로프를 수리하며 전진했다. 지원조 콘라트와 이외르글이 그곳까지 장비를 운반했다. 암벽 등반 사상 난이도 7급을 최초로 돌파한 암벽등반의 귀재인 메스너는 빠른 속도로 버트레스의 80m 위쪽까지 고정로프를 설치했다. 요켄 대원은 지원조 콘라트와 이외르글에게서 자일과 피톤 들을 인계받아 메스너가 진출한 곳까지 운반하고, 그를 확보해 주었다. 그들은 그 피치의 등반을 끝내고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1월 13일. 기상이 악화되며 아콩카구아 남벽으로 거대한 눈사태가 계속 쏟아져 내려 위압감을 주었다. 오후에 요켄, 콘라트, 이외르글 세 대원은 남벽의 4,400m 지점에 위치한 장비 보관소까지 짐을 운반했다.

1월 14일. 공격조 메스너와 요켄은 로프와 피톤을 휴대하고 낮 12시 전전날 설치했던 고정로프의 상부 끝에 도착했다. 메스너가 선등으로 버트레스에 100m의 고정 자일을 설치했다. 콘라트, 팀 닥터 욀츠 박사, 이외르글이 장비를 운반했다. 메스너는 높이 80m의 수직 바위 밴드를 돌파하고, 거대한 빙원에 도달해 제1캠프 후보지까지 진출한 후 대원들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1월 15일. 이외르글과 콘라트가 스톰 텐트, 침낭과 매트, 식량과 연료를 짊어지고 10시에 베이스캠프를 출발하여 제1캠프를 구축하고 야영했다.

1월 16일. 공격조 메스너와 요켄은 오후 4시 반에 제1캠프에 도착, 콘라트, 이외르글과 임무를 교대했다. 에른스트 대원이 등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동행했는데, 난코스에서 욀츠 박사의 확보를 받았다. 에른스트는 임무를 수행한 후 욀츠 박사와 하산했다.

1월 17일. 제1캠프의 요켄 대원은 오전 8시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버트레스의 좌측으로 거대한 눈사태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메스너와 요켄은 각자 150m의 자일, 빙벽등반에 대비한 아이스 펙(pegs), 아이스스크루, 스노 펙, 크램폰 등을 짊어지고 제1캠프를 출발했다. 그들은 ‘비엔또 블랑꼬’ , 즉 강추위를 몰고 오는 것으로 악명 높은 강풍에 대비해 복장을 단단히 갖추었다.

그들은 얼음 걸리를 오르고 암벽지대를 돌파했다. 그들 앞에 일본대의 옛 캠프가 나타났다. 갈가리 찢어진 텐트 조각들은 비엔또 블랑꼬가 굉장히 사나운 폭풍이라는 사실의 말없는 증거였다. 주변의 얼음 속에 등산화, 텐트 폴, 책 등, 온갖 종류의 찌꺼기들이 얼어붙어 있었다.

그들은 버트레스 꼭대기에 도달해 크램폰을 착용하고 끝없이 펼쳐진 빙원을 올라, 오전 11시 록밴드 밑에 도착했다. 그 록밴드는 알프스 돌로미테의 절벽처럼 가파르게 솟아 있었다. 메스너는 록밴드에 고정로프를 설치하며 등반하여 3시간 만에 록밴드를 돌파했다. 그 위쪽에 튀어나온 수직 빙벽이 100m 높이로 솟아 있었다. 메스너는 남은 자일이 미치는 지점까지 수직 빙벽을 오르고 아이스스크루를 박아 자일을 고정시켰다. 그들이 제1캠프로 내려오니 욀츠 박사가 제2캠프에 설치할 텐트, 로프, 식량을 운반하며 올라와 있었다.

그는 다음날 메스너와 돌출한 빙벽에 루트를 개척할 예정이었다. 공격대원 요켄은 욀츠 박사와 임무를 교대하고 휴식 차 베이스캠프로 하산했다. 밤새 사나운 폭풍이 몰아쳐 번개가 무시무시하게 번쩍거렸고, 천둥소리가 우르르 쾅쾅 뒤따랐고, 이어서 폭설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베이스캠프의 텐트가 강풍에 찢어질 듯이 세차게 펄럭거렸다.

요켄, 헌신적인 등반 결과로 생긴 고소증 때문에 등반 포기

1월 18일. 폭풍설이 그쳤고, 베이스캠프는 온통 흰 눈을 뒤집어썼다. 태양이 떠오르자 눈 깜짝할 사이에 눈이 녹아 모든 풍경이 제 모습을 되찾았다. 이외르글과 콘라트는 짐을 운반하며 남벽으로 떠났다. 베이스캠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요켄 대원이 남벽을 바라보니, 메스너와 욀츠 박사가 튀어나온 빙벽에서 사투를 벌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그들은 등반을 중단했고, 오후 7시가 되자 네 사람이 모두 안개 속에서 베이스캠프로 내려왔다.

1월 19일. 이외르글과 요켄은 다음날 루트를 개척하려고 남벽의 제1캠프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요켄은 비엔또 블랑꼬에 대비해 가죽 바지를 껴입고 배낭에 삼중 등산화를 꾸렸다. 그들은 오후 2시에 무거운 짐을 지고 출발해 6시30분 제1캠프에 도착했다. 그들이 텐트를 한 동 더 세우는 동안 매트가 강풍에 미끄러져 내리며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1월 20일. 요켄은 습기가 응축되어 물방울이 맺혀 있던 텐트 천이 강풍에 펄럭이며 그의 얼굴에 부딪치는 바람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오전 9시 요켄과 이외르글 두 사람이 등반을 막 시작하려는 찰나에 메스너가 제1캠프까지 올라왔다. 그들은 빙원을 함께 등반하고 오후 3시 튀어나온 빙벽 밑에 도달했는데, 빙벽의 80m는 고정자일 설치가 불가피해 보였다.

메스너가 수직 빙벽의 미등구간을 돌파하고, 오후 4시에 메스너와 요켄은 얼음 절벽 위쪽의 스노 플라토(snow plateau)에 도착했다. 요켄은 플라토에 배낭을 벗어놓고 제2캠프에 설치할 텐트를 운반하기 위해 록밴드까지 250m 내려왔다.

요켄은 텐트를 짊어지고 수직 암벽과 얼음 절벽 지대를 지나서 한 시간 후에 배낭을 벗어 놓았던 곳으로 되돌아왔다. 메스너와 이외르글은 등반을 계속해 돌출 부분의 빙원 뒤로 사라지고 없었다. 요켄은 배낭 위에 텐트를 묶어 짊어지고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캠프지에 도착했다. 그들은 일몰 무렵 6,150m 지점에 제2캠프를 구축했다.

1월 21일. 밤사이에 텐트 천에 얼어붙었던 서리가 점차적으로 녹아서 증발했다. 메스너가 맛있는 요리를 했으나 요켄은 식욕을 상실하고 갈증만 느꼈다. 이외르글은 짐을 운반하는 욀츠 박사와 콘라트를 마중하기 위해 플라토 아래까지 내려갔다. 메스너와 요켄은 엑시트 암벽(출구 바위)을 정찰하며 남은 자일 20m를 고정시키고 제2캠프로 내려왔다.

오후 6시 욀츠 박사 일행이 도착해 텐트 한 동을 더 설치했다. 욀츠 박사는 두통과 치통을 앓고 있는 요켄에게 진통제를 주었지만, 요켄 대원은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인해 정상등정을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갑자기 사나운 폭풍이 일어나 텐트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 그들은 한 시간 동안 텐트 폴을 움켜잡고 폭풍과 사투를 벌이며 지옥과 같은 고통을 견디어 냈다.

1월 22일. 요켄은 그때까지 거대한 절벽 위를 오르내리며 독수리 둥지 같은 제1캠프에서 야영도 했고, 수직으로 튀어나온 얼음 절벽 위에 제2캠프(6,100m)를 구축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적이어서, 그동안 등반에 너무 무리를 한 결과로 고산병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는 정상공격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에서 공격조의 자리를 단념해야 했다. 등반대의 대들보가 하나 꺾인 셈이었다.

운명의 잔혹한 장난질로 그의 등정의 꿈이 물거품처럼 송두리째 사라져 버려, 그는 온 세상이 산산조각 나는 것 같은 실망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인간은 소중한 꿈을 상실하면 다른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는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알프스의 어떤 봉우리, 또는 멀리 떨어진 어떤 산을 등정할 꿈을 꾸었다.

요켄은 오전 11시에 이외르글과 욀츠 박사의 확보를 받으며 튀어 나온 빙벽 아래까지 내려왔다. 이외르글은 정상공격을 위해 자일을 회수하여 빙벽으로 다시 올라가고, 요켄과 욀츠 박사는 고정자일로 하산을 계속해 7시간 만에 그동안 아낌없이 심혈을 기울였던 남벽과 영원한 작별을 고했다. 두 사람은 빙하를 200m 더 내려와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메스너, 이외르글이 고소증세 심해지자 속공 단독 등반 나서

메스너가 생각하기에 지난 24시간 동안 순간순간 실패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능한 요켄 대원이 고산병의 희생자가 되어 등반대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메스너는 이외르글과 다음날 아침 전광석화 같은 빠른 등정 시도를 행하기로 결심했다.

▲ 아콩카구아 남벽 5,000m 지점에 위치한 중앙 버트레스. 욀츠 박사가 등반 중이다.
1월 23일. 이른 아침 이외르글과 메스너는 건강상태가 나쁜 콘라트를 제2캠프에 홀로 남겨두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이외르글이 설사면과 수직 빙벽구간을 선등하고, 록밴드 밑에 도달했다. 메스너가 선등을 교대했는데, 정상벽의 록밴드는 바위층이 단단하게 고정되지 않아 바위가 흔들려서 등반이 까다로웠다. 두 사람은 서로를 확보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게다가 이외르글의 고산병 증세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그들은 록밴드의 꼭대기 6,400m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 4시간 이상 걸렸다. 정상까지는 아직도 600m 정도 남아 있었다. 그와 같이 느린 속도로 그날 정상을 밟을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커다란 절망상태가 다시 찾아왔다. 메스너는 녹초가 된 이외르글이 바위 레지에 홀로 남고 단독등반하기로 두 사람 간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메스너는 지난 날 6,000m의 고도에서 시간당 200m의 속도로 등반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4~5시간 내에 등정을 마치고 바위 레지로 되돌아오겠다고 이외르글에게 굳게 약속했다.

한편 베이스캠프에서 그날 정오 무렵에 요켄 대원이 남벽을 바라보니 검은 점이 빙원을 통과하고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 검은 점은 메스너의 모습이 분명했다. 또 다른 검은 점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외르글 대원일까? 아니면 콘라트 대원일까? 그는 몹시 궁금했다. 그런데 이 나중의 검은 점은 곧 뒤돌아서 후퇴하는 것이 보여 그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한편 메스너는 안개가 사방을 뒤덮고 있는 남벽의 가파른 정상 빙원을 혼자 등반하고 있었다. 빙원에는 얇은 눈 껍질이 덮여 있었고, 위쪽에는 돌출 벽이 있었다. 위쪽 정상으로 이어지는 ‘후아나꼬’ 능선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는 동료의 확보를 받으며 돌출부를 등반한다면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 다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니 아래쪽 안개 속에서 건강상태가 호전된 이외르글 대원이 자신을 뒤따르며 등반하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띄었다.

메스너는 이외르글이 신체가 허약한 상태에서 확보도 받지 않고 가파른 벽으로 등반하다가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큰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기상이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메스너는 이외르글에게 레지로 되돌아가라고 소리쳤다. 메스너는 이외르글이 계속 따라오면 등반을 포기할 작정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외르글이 발길을 돌리는 것을 보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는 간절히 동료와 함께 아콩카구아의 정상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자일 파트너가 고산병 환자였기 때문에 속도등반이 불가능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단독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메스너는 기필코 등정을 완수하기 위해 한 발자국이라도 악착같이 더 오르다 아이스 액스에 매달려 숨을 헐떡거리며 휴식을 취하곤 했다. 그는 한 시간 동안 200m 이상의 벽을 올랐다. 오후에 남벽 주변으로 구름이 모여 들어 베이스캠프의 요켄 대원은 남벽에서 일어나는 등반 진행 사항을 더 이상 살펴볼 수 없었다.

메스너가 주봉으로 이어지는 ‘후아나꼬’ 능선에 올랐을 때, 강풍이 그의 얼굴을 강타해 머리가 곧 비틀려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것이 바로 ‘비엔또 블랑꼬’의 위력이었다. 그는 즉시 바위 지대로 후퇴해 바람기가 없는 남벽의 좁은 레지 위로 피신했다. 칼날 능선 위로 구름 줄기가 나부끼며, 머리 위쪽에서 대양의 큰 파도 소리보다 더 요란한 바람의 노호가 들려와 공포감을 주었다.

그는 ‘비엔또 블랑꼬’에 맞서기 위해 배낭에서 오버트라우저(방풍용 등산바지)와 예비 아노락(anorak)을 꺼내어 더 껴입었다. 모피 모자 위에 스톰 헬멧(storm helmet)을 썼다. 선글라스를 벗고 얼굴을 가리는 스키 고글과 교체했다. 손에는 깃털 벙어리장갑을 꼈다. 메스너는 아콩카구아의 모든 등반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비엔또 블랑꼬’를 아콩카구아 남벽 등반의 모든 난관, 즉 오버행, 눈사태보다 더 두려워했다.

기다리는 동료 위해 안전한 노멀루트 대신 남벽으로 하산

메스너는 정상에서 가까운 고도까지 진출했기에 ‘비엔또 블랑꼬’ 때문에 등반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남봉과 주봉을 잇는 능선으로 과감하게 다시 올라섰다. 강풍이 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는 복장을 제대로 갖추었기 때문에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그가 몸을 곧추 세우고 돌풍의 위력에 잠시 비틀거리다가 몸의 균형을 잡고 거친 암벽을 올랐다. 강풍이 불지 않아도 힘든 등반일 텐데, 고도에서 강풍과 사투를 벌이는 일은 더 큰 고역이었다.

그는 가능한 한 빠른 속도를 내서 능선상의 큰 바위에 도달해 강풍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그는 안부와 주봉의 중간 부근, 즉 ‘후아나꼬’ 능선을 등반 중이었다. 바로 그의 밑에 뾰족한 남봉이 바라보였다. 그는 자신이 등반한 황량하고 가파른 남벽의 암벽과 빙벽을 뒤돌아보았다. 그는 강풍 속에서 그 벽으로 하산하기가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의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노멀루트로 하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는 폭퐁 속에서 몸을 똑바로 펴고, 능선상의 또 다른 큰 바위를 향해 기를 쓰면서 전진하여, 바위 뒤에서 다시 바람의 위력을 피했다. 메스너는 갑자기 좌측 북서벽에서 붉은 아노락을 입은 산악인이 혼자 두 개의 스키 스틱을 교대로 짚으며, 넓은 걸리로 서서히 하산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동안 진짜 사람이 하산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환각에 시달리고 있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산악인임에 틀림없었다. 그 사람 아래쪽에 ‘까날레따’, 즉 노멀 루트가 좁아지는 보틀넥(bottleneck)이 있었다. 메스너는 황량한 곳에서 살아 있는 인간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서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붉은 아노락은 듣지 못하고 하산을 계속했다. 메스너는 폭풍이 너무 사나워 자신의 동료들이 남벽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그 산악인의 뒤를 따라 노멀 루트로 하산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 아콩카구아 남벽의 빙벽.
메스너는 그때 능선 마루를 떠나서 바위 쿨와르(couloir) 속의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이동하며 힘들게 올라갔다. 그의 위치에서 20m 아래쪽에 누더기가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곧 그 누더기는 사망한 클라이머의 옷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신은 계곡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돌무더기 속에 쓰러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메스너는 얼마 전에 아콩카구아로 트레킹 중에 아콩카구아 정상 바로 아래쪽에 일본 산악인의 시신이 일 년 동안 방치되어 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아마 생전에 훌륭한 산악인으로 ‘비엔또 블랑꼬’, 아니면 탈진, 또는 고산병으로 사망했는지 알 수 없었다.

메스너는 자신의 생명도 앗아갈 수 있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이름 모를, 다른 산악인의 주검을 대하기가 꺼림칙해 그 시신을 외면하려고 애를 썼다. 메스너는 정상의 좌측에서 길이 1m가량 되는 십자가가 강풍에 쓰러져 돌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사진촬영을 마치고 정상에 놓인 작은 상자 속에서 종이쪽지들을 뒤져가며 등정자들의 이름을 읽었다.

그는 ‘사우스 티롤 안데스 원정팀의 아콩카구아 남벽 직등 초등. 1974년 1월 23일’이라고 적어서 상자 속에 넣었다. 그는 고산병의 훼방 탓에 등반계획이 어긋나서, 동료들과 함께 정상을 밟지 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그는 4시 반 하산을 시작하기 전에 정상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정상에는 회갈색의 반반한 돌더미가 영구한 세월을 견디며 쌓여 있었다. 그 순간 이 돌더미처럼 모든 욕망을 상실하고, 생명체들과 먼 거리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머리를 스치고 불어와 뇌 속까지 파고들 것 같은 강한 바람소리만 요란했다. ‘후아나꼬’ 능선 위로 구름이 솟아올라 있었다. 그가 구름 속을 걸으며 험준한 능선으로 하산할 때 시간을 의식할 수 없었고, 휘몰아치는 폭풍 속에 그의 모든 꿈이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다.

▲ 아콩카구아 정상의 십자가.
낭가파르바트와 에베레스트 단독 알파인 등정으로 이어져

드디어 남벽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그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가파른 사면으로 내려섰다. 남벽 상부의 반반한 얼음 위에 올라올 때의 발자취가 남아 있지 않아 하산로를 찾아내기 힘들었다. 그는 올라올 때보다 더 조심스럽게 크램폰을 계속 옮겨 놓았다. 크레바스를 건널 때는 최고의 정신집중을 기울였다. 벽을 더 내려오니까 설벽이 나타났는데, 구름이 끼어 있어 루트를 찾아내기 어려웠다.

이외르글 대원은 메스너와 5시간 동안 헤어졌다가 늦은 오후에 그가 돌아온 것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그들이 정상 벽으로 자일 하강할 때 작은 가루 눈사태가 쏟아져 내려 눈가루로 인해 숨이 막혔고, 급히 하산하느라 휴식은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폭설이 내리고 있었고 신설이 작은 눈사태가 되어 크랙과 침니로 계속 쏟아져 내렸다. 콘라트가 제2캠프에서 차를 끓여 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그들은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등정을 자축했다. 메스너의 아콩카구아 남벽 직등 체험은 훗날 히말라야의 낭가파르바트의 디아미르 벽(서벽, 1978년)과 에베레스트 북벽(8,848m, 1980년) 단독 알파인 스타일 등정으로 이어졌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