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알싸 지식IN

[자서전]웨인 루니 자서전 『지금까지 내 이야기』(2)

작성자은세진|작성시간07.06.03|조회수1,582 목록 댓글 9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story 2-1.
Family Fun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하마터면 난 아드리안으로 불려질뻔 했다. 우리 아빠가 원했던 그 이름으로.

얼마쯤 화려한데다, 내 보기엔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다른 이름으로 일생을 살아왔다면, 그랬다면, 다른 인격을 갖게 됐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엄마가 아빠와는 무관하게 불렀다해도.

 

 그의 생각은 그랬다. 에버튼 스타들 중 한 명인 아드리안 히스의 뒤를 이어 내 이름을 지을 생각이었다.

피터 레이드와 함께 선수생활 후엔 코치로 입문, 선더랜드 감독으로 부임한 아드리안 히스.

그는 작고 매우 빠를 뿐 아니라 영리하기도 했다.

 

 난 그의 광팬이었지만 내가 '아드리안'이란 이름을 가질거란 상상은- 글쎄, 생각도 못하겠다.

그렇게 난 아빠의 뒤를 이어 '웨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엄마는 그녀가 느꼈던 바를 주장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장남은 아빠의 이름을 따서 지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녀의 집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건 일종의 전통이었다.

 

 루니가(家)는 내가 생각키로 아일랜드에서 왔음에 틀림없지만,

난 언제, 어디서 온건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 친척들 중 아무도 에메랄드 섬(아일랜드의 속칭)에서 왔거나 한 기억은 그렇게 눈에 선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벌써 와있었던 걸수도 있겠고.

어쨋거나 지금은 가계 족보가 명확치 않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흥미있는 뭔가를 발견하게되면 여러분에게 알려주도록 하겠다.

 

 십중팔구 내가 아일랜드 출신임을 깨닫게 해준 중등학교에서의 겸험 이전까지는, 그럴거란 사실 자체를 자각 못했다.

계기는 그랬다.

선생님 중 한 분이 신입생들 모두의 명단을 내려다보면서 다른 성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다.

 

"넌 명실상부 스코틀랜드 출신이 되겠구나, 넌 웨일즈 혈통임에 틀림없고 말이야,

루니 넌 분명 아일랜드인이겠고……"

 

 난 집에 와서 아빠에게 물어봤다.

 

"우린 아일랜드인이예요?"

"내가 어찌 알겠니?"

 

라고 그가 대답했다.

아빤 언제나 느긋하기 짝이 없었다.

 

 집안 내에서 내가 '작은 웨인'이라면 그는 늘 '큰 웨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14살이 되었을 땐 그게 날 화나게 했다. 

키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심지어 아빠보다 더 커졌지 않은가.

그는 고작해야 엄마보다 2인치가 더 작은 5피트 6인치에 불과했다.

따라서 내가 작은 웨인이라 불려지는건 현실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내가 작은 웨인이었고 그가 큰 웨인이었다고 주장해댄다.

 

 우리 아빤 1963년 6월 1일 리버풀 외곽의 크록테스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노동당원 중 한 명으로 지방 의회를 위해 일했던 그의 아버지(루니 할아버지)는 부틀 출생이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거라곤 그게 다다.

우린 그를 릭이라고 불렀고,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분명 리차드였을거라,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10살때 그는 생을 마감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아버지에 대해 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내 훌륭한 할아버지였는지, 그가 어디서 왔는지 하는 것들 말이다.

우리 집안 일족들은 가계 족보 따위에는 결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빤 여덟 자식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에게 4명의 남자형제와 3명의 여자형제가 있다.

그들 모두가 카톨릭교도들이었지만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고

규칙적으로 교회를 다니지도 않았으며, 우리보다 더 믿음이 두텁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크록테스 종합중등 학교를 다녔고, 아무런 시험 통과 없이 16살때 학교를 떠났다.

가게가 문 닫기 전까지 2년간 정육점에서 일손을 돕게 됐던 그는,

그 후 한동안 유스 클럽에서 일하기도 했다.

주로 건축업에 종사하는 일반 노동자가 되기 전에.

 

 내가 자라났을 무렵 그가 종종 실직하기도 했던고로 우리에겐 많은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엔 비록 우리에겐 차가 없었지만, 내가 아무 것도 얻은 게 없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뭐 우리가 마침내 차를 갖게 되었을 땐, 그것들은 하나같이 낡고 오래된 고물차들이긴 했지만.

 

 아빤 훌륭한 복서였다.

그의 가족들도 그랬다.

많은 루니 일족들이 직업권투선수들이었고,

그들 중 한 명은 성 테레사로 불려졌던 한 복싱 클럽의 경기에 참가하곤 했다.

 

 아빤 그의 복싱경기가 있는 날엔 열 돌 정도의 무게가 되게했다.

난 그가 지금 얼마나 많은 무게가 나가는지, 그가 날 때릴지 하는 것 따위는 여러분에게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라이트급 선수로 리버풀을 위해, 그 뒤엔 노스웨스트 카운티를 위해 경기에 참가했다.

노스웨스트 카운티를 위해 복싱을 하면서, 네이비를 상대로 경기에서 이겼을 때 우승컵과 함께 선물을 안고있는 그의 사진이 있다.

 

 그는 또한 핀란드에서 열린 경기에 참가, 상대와 겨뤄 금메달과 은메달 둘다를 따낸 적도 있다.

그의 남자형제들인 리치, 존, 유진, 앨런도 마찬가지로 복싱 컵을 들어올렸고 축구에서도 그랬지만,

난 우리 아빠가 그들 중 단연 최고였다고 본다.

프로로 전향했더라면, 하고 그가 말을 꺼낸 적도 있고,

그에게 그에 대한 얘기를 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난 그가 프로라면 요구되는 훈련과 헌신 모두를 충분히 기꺼워할거라곤 여기지 않는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분량상 이번 회는 여기까지만 올리고,

다음 편에 이 챕터의 루니네 가족 이야기가 이어질 거예요.

긱스님이 해주신것처럼 한 챕터의 이야기를 간추려서 정리하면

이런 분량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 더 간단해질텐데 애초 시작을 이렇게 해서ㅠㅠ

자서전을 통째로 다 번역하게 생겼어요 하하^^;;

그럼 재밌게 읽어주세요-

다음 이야기는 다음 주 일요일 올라갈거구요.

셰시님께서 다시 포토샵으로 예쁘게 꾸며주실거예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내사랑cesc | 작성시간 07.06.04 그럼 룬희 아일랜드 인이라는건가? 근데 왜 잉글랜드서 살고있는거니?..
  • 작성자스퍼스 | 작성시간 07.06.06 잘봤습니다 !! ㅋㅋ
  • 작성자엽기-_-토끼 | 작성시간 07.06.07 잘봤어요 ㅎㅎㅎ
  • 작성자루니 커피우유 | 작성시간 07.06.09 잘봤어요~~~~
  • 작성자Neville | 작성시간 07.06.17 수고하셨습니다 재밋게보고있어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