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Times Online
July 11, 2007
50 top football transfers
Kaveh Solhekol
축구 감독들은 누구나 성공적인 선수 영입을 원한다. 여름 이적 시장에 어떤 선수를 영입하느냐가 감독의 생사를 좌우하며, 더구나 한 클럽의 명암을 바꿀 수 있는 규모의 선수 이적은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지 비디오만을 보고 영입한 동유럽 스트라이커가 베르바토프 같이 대박이 날 수 있는가 하면, 플로린처럼 실패 사례가 될 수도 있다. 이 기술 좋은 수비수는 에이전트 말에 따르면 차세대 앨런 한센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니면 새로운 브램블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돈을 거머쥔 감독이라면, 우리가 뽑은 이 50명의 성공적인 영입 사례에서 영감을 얻어보라. 당신의 직업을 보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 MICHAEL CHOPRA (Newcastle United to Cardiff City, 50만 파운드, 2006)
제임스 파크에서는 큰 인상을 못 남겼다. 하지만 Ninian Park에서는 프레스턴에서 누젠트가 기록한 것까지 뛰어넘으며, 22골을 기록함으로써 손해액을 보상했다. 이제 데이빗 존스는 자신이 뉴캐슬에서 데려올 때 지불했던 금액의 12배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49 ZAT KNIGHT (Rushall Olympic to Fulham, 보온복 30벌, 1999년)
나이트는 잉글랜드 국대에서 뛴 적도 있지만, 7년 전에 그의 가치는 트랙수트 30벌이었다. 엄밀히 말해 풀햄은 옷도 줄 필요가 없었다 – 계약상 이적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Al Fayed는 인자했다.
48 BRAD FRIEDEL (
수네스는 다른 감독들보다 이적시장 때문에 화를 입은 경우가 더 많았지만, 프리델의 경우에는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 미국 골키퍼는 앤필드에서는 확신을 주지 못했지만, 블랙번에서의 활약은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골리들 중 하나로 뽑히기에 충분하다.
47 CHRIS COLEMAN (Blackburn Rovers to Fulham, 2백만 파운드, 1997)
크리스 콜먼이 3부리그에서 뛰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키건 밑의 풀햄에서 뛰겠다고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이 웨일스 수비수는 모험을 감수한 것에 대해 아무 후회가 없을 것이다. 팀을 프리미어리그로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콜먼은 2003년에 티가나를 대신하여 감독을 부임했고 3년간 열악한 재정 상황 속에서도 팀을 성공적으로 잔류시켰다.
46 BILLY SHARP (Sheffield United to Scunthorpe United, 10만 파운드, 2005)
쉐필드에서는 닐 워녹에게 어필하는 데 실패. 2005년에 단돈 10만 파운드에 Scunthorpe로 팔려감. 그 후 82경기에 출장하여 53골 기록. 지금은 롭슨이 지휘하는 쉐필드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올 여름에 2백만 파운드를 또 들여 다시 구입.
45 FRANNY LEE (Bolton Wanderers to Manchester City, 6만 파운드, 1967)
이 때는 맨체스터 시티를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면 누구나 링크가 떴었다. 1971년에서 72년에 걸쳐, ‘Lee One Pen’은 15개의 pk를 곁들여 35골을 기록했다(pk 대부분은 직접 따낸 것이었다). 1976년에 은퇴하고 나서는 휴지 사업을 성공적으로 창안.
44 KERRY DIXON (Reading to Chelsea, 15만 파운드, 1983)

헤어스타일은 끔찍했지만 골은 잘 넣었다. 로만이 상품 진열대에서 아직 장난감을 팔고 있던, 첼시가 별 볼일 없던 시기에 팀의 심장이자 영혼이었다. 쉐브첸코가 DIXON을 넘어서려면 그가 기록한 193골을 깨기 위해 180번을 더 득점해야 한다.
43 PHIL NEAL (Northampton Town to Liverpool, 6만6천 파운드, 1974)
개리 네빌 이전에는 필 닐이었다. 밥 페이즐리의 첫 번째 영입 작품인 이 튼실한 수비수는 7개의 리그 타이틀, 4번의 유러피언 컵을 따냈으며 그 기간 동안 600번의 리그 출장과 50번의 a매치 출전을 기록했다.
42 ROWAN VINE (Portsmouth to Luton Town, 25만 파운드, 2005)
2백만 파운드 정도의 금액은 대부분의 EPL 클럽들에겐 대단치 않은 액수일지 모르나, 루톤 같은 클럽에겐 생사가 달린 문제다. Vine은 25만 파운드에 루톤으로 가서, 18개월 후 2백5십만을 클럽에 안겨주고 버밍엄 시티로 갔다. 와우!
41 DAVID JAMES (Manchester city to Portsmouth, 120만 파운드 2006)
해리 레드냅은 이적 시장에서 몇 개의 보석을 발견했고, 그에 따르면 데이빗 제임스는 최고 작품 중 하나다. 몇 번의 실수를 할 지는 모르지만, 142번의 클린쉿 기록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40 CHRIS WADDLE (Newcastle United to Tottenham Hotspur, 59만 파운드, 1985)
1990년 월드컵 4강전에서 실축한 페널티킥은 잊어라. 화이트 하트 레인 시절에 크리스 워들은 감히 “세계 최고의 윙어”라고 불릴 만 했다. 소시지 공장에서 일했던 것을 감안한다면 나쁘지 않은 발전 아닌가? 1989년에 그는 450만 파운드에 마르세유로 갔다.
39 DAVE MACKAY (Heart of Midlothian to Tottenham Hotspur, 3만2천 파운드, 1959)
1963년 컵 위너스 컵에 부상 때문에 불참하긴 했지만, 토트넘에서 1961년 더블, 62년과 67년에 FA컵을 따낸, 기술과 열의가 돋보인 스코틀랜드 스위퍼.
38 RUUD VAN NISTELROOY (PSV Eindhoven to Manchester United, 1900만 파운드, 2001년)
아스날에 앙리가 있었다면 맨유엔 반 니스텔루이가 있었다. 이기적이고 동시에 독보적이었던, 상대편 진영의 강탈자였던 그는 득점에만 관심이 있었다. 운이 좋게도, 그는 찬스를 놓치는 일이 거의 없었고 219경기에서 150골을 득점한 그의 기록은 경외감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37 DENIS LAW (Torino to Manchester United, 11만 5천파운드, 1962)
이태리에서 적응하는 데 실패한 후, 로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 유나이티드의 킹이 되었다. 409경기에서 237골 득점, 조지 베스트와 보비 찰튼과 같이 뛰었다.
36 PETER SHILTON (Stoke City to Nottingham Forest, 25만 파운드, 1977)
Clough가 그를 낚아채기로 결심했을 때 쉴튼은 맨스필드 타운서 뛰고 있었다. 포레스트는 이 당시 바로 1부리그로 승격되어 뛰게 되었지만, 그의 압도적인 기량은 막기가 불가능했다. 1978년에 리그 우승, 다음 2시즌 모두 유러피언 컵 우승.
35 JIMMY GREAVES (AC Milan to Tottenham Hotspur, 10만 파운드, 1961)
완전 대박을 친 도박. 지미는 스퍼스에서 380경기에 출전, 266골을 넣었다.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치명적이었던 공격수로 꼽히며, 6시즌동안에 그가 기록한 경이로운 득점은 전무후무한 수치다.
34 ALAN SHEARER (Southhampton to Blackburn Rovers, 360만 파운드, 1992)

사우스햄프턴은 시어러를 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시어러는 블랙번 이적 후 138경기에서 ‘112’골을 넣었다. 1996년에 뉴캐슬로 이적할 때 기록한 이적료는 1500만 파운드로, 블랙번은 1100만 파운드가 넘는 이익을 본 셈이다. 아, 로버스에게 타이틀을 안겨주기도 했다.
33 BRYAN ROBSON (West Bromwich Albion to Manchester United, 150만 파운드, 1981)
론 앳킨슨은 유나이티드 감독으로서 어떤 타이틀도 거머쥐지 못했지만, 롭슨을 기록적인 금액에 영입하는 성과를 냈다. 유나이티드가 암울했던 80년대에 롭슨은 그 이름 자체가 유나이티드였다. 460경기 이상 출전하여 98골을 득점 – ‘미드필더’로서. 결정력, 기술, 비타협적인 태도, 그리고 아마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미드필더 중 하나.
32 ALAN HANSEN (Partick Thistle to Liverpool, 10만 파운드, 1977)
이 인물 앞에서 획득한 타이틀의 수를 논하지 말라. 스코틀랜드 수비수로서 앤필드에 도착, 1990년에 팀을 떠날 때까지 8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유러피언 컵 우승.
31 DAVID PLATT (Crewe to Aston Villa, 20만 파운드, 1988)

아직 소년이라는 이유로 맨유에 의해 거절당함, 그 후 역경을 참고 인내하여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으로 거듭남. 1990년 월드컵에서 벨기에를 상대로 기록한 극적인 막판 골로 헤드라인을 장식, 그리고 1년 후에 550만 파운드에 Bari로 이적.
30 PAOLO DI CANIO (Sheffield United to West ham United, 175만 파운드, 1999)
심판 학대, 파시스트식 거수경례, 스펙타클한 득점 – 이것들은 파올로가 이태리에서 뛴 극히 짧은 시간동안 보여준 것들이다. 웨스트햄 팬들은 그를 존경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파시즘을 우려한다 – “난 파시스트지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야.”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됐어, 파올로.
29 NEVILLE SOUTHALL (Bury to Everton, 15만 파운드, 1981)
이 선수는 에버튼에서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기 전까지 웨이터, 석탄 인부를 전전하며 살았다. 750경기 이상 출전 – 하나의 기록이다 – 하여 2개의 리그 타이틀, 2개의 FA 컵과 컵 위너스 컵 획득. 웨일스 국대 92번 출전의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28 LARRY LLOYD (Coventry City to Nottingham Forest, 6만 파운드, 1976)
우리가 선정한 세계 최악의 선수 50인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그가 들어올린 트로피를 본다면 단순히 1차원적인 수비수라고 평가절하하긴 힘들다. 리버풀과 노팅엄에서 리그 타이틀 획득, 2번의 유러피언 컵 획득. 집에서 자랑해도 된다.
27 STEVE BULL (West Bromwich Albion to Wolverhampton Wanderers, 6만5천 파운드, 1986)

이 “울브스 씨”는 라이벌 팀 WBA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단돈 6만5천 파운드에 팀을 떠나, 클럽 기록인 306골 득점(87-88시즌에만 52골)을 이루고 13년 후에 은퇴. 잉글랜드 국대에 13번 출전, 클럽에서 18번의 해트트릭 기록 보유.
26 MICHAEL ESSIEN (Lyons to Chelsea, 2400만 파운드, 2005)

전혀 싼 액수는 아니지만, 아마도 ST 최고의 미드필더일 것이다. 램파드가 골은 더 많이 넣고, 발락이 돈은 더 벌지 모르지만, 에시앙은 ‘대체 불가능’한 선수다. 무리뉴에 따르면 그는 “믿기 힘든 신체의 파워와 끝이 없는 전술적 활용도를 겸비한” 선수다.
25 WAYNE ROONEY (Everton to Manchester United, 3000만 파운드, 2004)
한때 파란색 유니폼, 이젠 평생 빨간 유니폼. 루니는 구디슨 파크에서는 최고의 공공의 적일지 모르지만, 그는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데뷔한 페네르바체전에서 해트트릭 기록. 올 시즌엔 데니스 로의 번호인 10번을 달고 뛴다.
http://www.timesonline.co.uk/tol/sport/football/article2058123.ece
**올해 7월 11일에 원문이 작성된 기사임을 밝혀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