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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주보주일설교

연중10주일설교(2026년 6월7일)

작성자이야고보신부|작성시간26.06.06|조회수19 목록 댓글 0


                                                “부활의 생명은 절망의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마태 9:9-13, 18-26)
                                                                                                                                                                         이기찬 이사악 신부
 

 

 오늘 우리는 연중 10주일을 맞이하며, 각자의 예배 처소에서 한마음으로 생명의 하느님께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죄로 인한 죽음에서 구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하길 소망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느님 뜻을 좀 더 알 수 있도록 호세아 말씀에서는 죄로 인해 하느님과 멀어진 백성이, 진심으로 회개하길 바라며 기다리고 계시는 하느님이심을 알려 주십니다. 
  아침 안개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은 보여주기식 신앙이나 순간의 감정으로 열심을 내는 것이 아니길 바라십니다. 하느님께서 반기시는 것은 형식적인 내세움보다는 사랑임을 알려주십니다. 분별력을 잃은 나의 뜻을 내세우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려고 노력하며 관계가 회복되길 바라십니다. 
  시편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형식적인 제물보다 감사와 서원(약속)한 것을 갚는 것이 먼저임을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어떠한지 각자 하느님과 약속한 것을 되새겨보길 바랍니다.     약속에 대해 로마서 말씀에서 하느님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약속을 보장해 주십니다. 이는 우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들까지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하다는 것을 마태오의 복음에서 예수님의 삶으로 알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고 사회에서 낙인찍힌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십니다. 또한 죽은 소녀를 살리고 병든 여인을 치유하심으로써, 예수님은 죽음과 절망으로 향하는 힘을 가진 집단을 넘어서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바리사이파의 배타성, 경직된 신앙, 율법과 전통이 사람보다 규정을 우선시하는 모습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말씀하시면서, 이것이 무슨 뜻인가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신앙 또한 성당이라는 건물과 우리들만의 모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성체와 보혈을 영하면서 삼위일체 하느님 뜻에 따라 하나 된 믿음으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함께 나누려고 노력하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죽은 소녀를 살리고 병든 여인을 치유하신 예수님은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뉴스만 보더라도 알게 되는 각종 사건 사고와, 자살 자해하면서까지 인정받고 위로받고 싶은 이들, 빈곤, 고립, 차별, 위기 청소년들과 그 가정과 학교 사회의 문제 앞에서도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교회이기에 생명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삶을 따르며 새 생명을 누리게 됐으니 절망을 희망으로, 배제를 환대로, 죽음의 문화를 생명의 문화로 바꿔 갈 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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