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 裵씨와 裴씨
보통 일반인들은 ‘裵’와 ‘裴’자에 대하여 혼동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이번 기회에 그 글자의 유래와 그에 얽힌 설화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조 단군께서는 동남방 지방과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 위치한 남해 변을 순시하면서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에서는 붉은 용 두 마리가 솟아나고 하늘에서는 두 선녀가 자주색 함을 받쳐 들고 내려와 노닐다가 바닷가에 함을 두고 가셨다고 합니다. 단군께서 그 관경을 이상히 여기시고 그 함을 열어본즉 비의남아(緋衣男兒: 옷을 입지 않은 남자 아이)가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필시 천신(天神)께서 지성에 감동되시어 신아(神兒)를 내려 주셨다고 믿고 양육케 하였으며, 그 아이가 15세가 되자 체모가 장대하고 지기가 웅건(雄健)하였다고 합니다. 단군께서는 그 신아(神兒)의 처음 착의(着衣)가 비의(緋衣:옷을 입지 않았다)였으므로 ‘緋’자에서 ‘糸’를 빼고 ‘衣’를 부쳐서 성(姓)을 ‘裴’로 정하고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천생(天生)이라 명명(命名)한 후 배 천생 공(裴天生公)을 남해장(南海長)에 봉(封)하여 이후 33세 동안 자자손손이 세습하게 하였다는 야사(野史)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조선조 때 배삼익(裵三益)이라는 어른이 계셨는데, 자(字)는 여우(汝友)이며 호는 임연재(臨淵齋)로 진사시험에 합격을 하였는데 답안지에 초서(草書)로 쓴 이름 석 자가 너무나 명필이어서 호명자(呼名者)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裵三益’을 ‘쇠지개(衰之蓋)’로 잘못 호명을 하였는데, 뒷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명종 임금이 궁중으로 부르시고 칭찬하신 후 ‘裵’자의 꼭지를 위로 써서 실수가 생겼으니 앞으로는 꼭지를 내려쓰라는 분부가 계서 그 때부터 ‘裵’를 ‘裴’자로 쓰게 되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사전을 보게 되면 ‘裵’자와 ‘裴’자는 같은 자로서 그 뜻은 (1)옷 긴 모양(長衣貌), 옷 치렁치렁함 (2)천천히 이리저리 거닐음(徘徊) (3) 성(姓) (4) 나라이름 등으로 되어 있고 ‘裴’자는 ‘裵’자의 본 자(本字)로 되어 있는가 하면 어느 사전에는 ‘裴’자로 ‘裵’자의 고(古)체로 기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裵’자와 ‘裴’자는 어느 쪽이 바르고 어느 쪽이 틀리다는 시비의 문제가 아니고 꼭 같은 뜻을 가진 같은 글자이니 어느 자(字)로 써도 다 옳지만,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우리 문중에서도 모두가 ‘裵’자로 통일하여 쓰고 있으니 교수님 이하 학우여러분들께서도 이번 기회를 통하여 혼동하지 마시길 바라며, 참고로 그래서 잡지사나 신문사 등 출판사에서도 ‘裴’자로 쓴 활자는 찾아보기가 어렵고 이제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한자로 내려오고 있으며, 1982년에 종친회에서도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裵’자로 통일하기로 의견을 모은 바도 있습니다.[출처; 慶州裵氏 서울宗親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