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절문답

영정사진에 대하여

작성자蘭石齋주인|작성시간10.11.29|조회수579 목록 댓글 0

영정사진에 대하여 

이름 현x (2010-11-27 17:36:49)

 

[문]; 49재 후 장례 때 모셨던 영정사진을 모시고 집으로 왔습니다. 제사 때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집안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장례 때 사용했던 영정사진은 묘소에서 태우고, 제사에 사용하는 영정사진은 다른 사진으로 모시라고  하는데 이 말씀이 맞는지요?


[私見을 드립니다.]

① 고례에는 영정사진이 없었으므로, 이에 대한 예법이나 문헌이 있을 리 없습니다. 현대는 혼백대용으로 영정사진을 쓰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영좌에 혼백을 모셨다가 발인 때 先 魂帛, 後 神主(木)이었다가 반곡에는 先 神主, 後 魂帛의 순으로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② 그러나 고례에도 혼백을 광중에 묻거나 우제 후에 묻는다는 등 설이 같지 않았습니다. 또 大祥까지 궤연에 모시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원용한다면 영정사진은 묻을 수는 있어도, 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어떻게 조상의 尊影을 불사를 수 있겠습니까?[자손으로서 차마하지 못할 일입니다.]


③ 귀견의 ‘제사에 사용’은 무방하다는 소견입니다. 조상의 영정이므로 소중히 모시면서 제사에 사용하신다면, 사모하는 정과 후세의 교육에도 바람직 할 것이란 생각입니다.[사진을 보존하시려면 (후일을 위하여) 뒷면에 諱字를 기록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참고로 본 소견은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家禮輯覽과 성균관이 펴낸 ‘우리의 생활예절’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질문자께 다시 덧붙이는 글입니다.]

① 俗禮도 예입니다. 대체로 그 시대의 유행하던 예절을 속례라 이릅니다. 주자도 가례를 지으면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사계선생도 ‘중국의 예법이 우리와 맞지 않는다며 당시의 속례를 채용’하였습니다.[현대의 時俗들이 이어지면, 자연스레 우리의 예절로 정착될 것입니다.]


② 혼백과 신주의 主從(先後)은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만약 지방과 사진을 함께 모시고 제사할 경우 ‘지방(신주대용이므로)이 主이고, 사진은 從’입니다. 그러므로 ‘西 紙榜, 東 寫眞’으로 모셔야 할 것입니다.[竝設일 경우는 주종의 위치가 다른 견해(중앙상석)도 있습니다.]


③ 禮는 (시대에 따라 변하는) 可變의 것인데도 고례만을 고집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옛날에도 “禮不泥古 因時制宜”라 하였습니다. 고례에만 얽매이지 말고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禮學의 宗匠 沙溪선생도 “한낱 옛 법에 집착할 줄만 알고서 오늘의 시의적절함을 헤아리지 못한다.(近思錄釋疑; 徒知滯泥於古法 而不度今時之所宜)”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④ 사계선생이 아니더라도 먼 옛날에 있었던 나라도 다르고 풍습도 달랐던 중국의 孔子, 朱子를 맹종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과 괴리가 있습니다. 공자도 “삼베로 짠 관을 쓰는 것이 禮인데, 지금은 실로 만들었으니 검소하다. 나도 여러 사람이 하는 대로 따르겠다.(論語子罕; 子曰 麻冕禮也 今也純儉 吾從衆)”고 했습니다. (2,500년 전 공자도) 실로 짠 면관은 예는 아니라면서도, 시속의 실용을 따랐습니다.[위 글의 일부는 상례비요와 주자가례의 序文을 인용하였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