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인지문; 동대문[興仁之門; 東大門]
서울흥인지문은 서울성곽의 동쪽 문으로서 인(仁)은 오행의 목(木)에 속하고 목은 동(東)에 해당하므로 흥인(興仁)은 곧 동방을 의미한다고 하며, 흔히 동대문(東大門)이라고 부른다. 또한 '흥인문'이 '흥인지문'으로 언제 개칭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철종 말까지의 ≪실록≫에는 흥인지문이란 명칭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고종 때에 고쳐 짓고 흥인문을 흥인지문으로 개칭한 것으로 짐작된다.
흥인지문은 문을 창건한 지 50여 년이 지난 문종 원년(1451)과 단종 원년(1453)에 일부 보수가 있었고, 그 후 400여년이 지난 고종 5년(1868)에 개축한 기록이 있다. 당시 대원군은 경복궁 중건공사를 완료한 다음 광화문 밖 좌우편에 나열되어 있는 의정부·호조·이조·중추부·사헌부 등의 관아를 중수하는 동시에 흥인문을 개수하였는데, 《고종실록》에는 동대문 전체가 썩고 상하여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면적으로 개수하였다고 한다. 1958년 동대문 보수공사를 할 때 문루 천장에서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훈련도감(訓練都監)에서 공사를 담당, 고종 5년(1868) 10월 2일에 착공하여 고종 6년(1869) 2월 20일 정초(定礎), 3월 11일에 상량하고 같은 달에 완공하였는데, 문루가 매우 낮아 문지(門址)를 8척 돋우고 그 위에 새로 홍예(虹霓)를 쌓고 초루(譙樓)를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고종 5년의 흥인문의 공사는 완전히 개건한 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옹성도 고종 5년의 문루 건축 때에 새로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
흥인지문은 다른 문과는 달리 옹성(甕城)이 있는 것이 특색이다. 옹성은 곡성(曲城) 또는 치성(雉城)이라고 하며 밖에서 성문이 보이지 않게 성문을 둘러쌓은 작은 성으로서 적을 방어하고 지키기에 편리한 것이다. 동대문의 옹성은 태조 6년 1월에 착공하여 4월에 완공하였다. 태조가 동대문에 한하여 옹성을 쌓은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대문 부근의 지형이 낮을 뿐만 아니라 동대문 북쪽의 낙산도 낮고 평탄하여 적을 방어하기에는 부적당한 곳이므로 이 옹성을 쌓아서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