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현씨 시조/유래

작성자선비|작성시간09.07.15|조회수1,443 목록 댓글 0

현담윤 (玄覃胤)
현씨 (玄氏)의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본래 평안도 연주 출신으로 고려 의종조에 장군을 지내고 명종때 일어난 조위총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세워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라 연산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받들고, 시조의 봉군지명인 연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시조 현담윤이 연산군에 봉해져 후손들은 현담윤 (玄覃胤)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시조의 봉군지명(封君地名)인 연주(延州)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현씨(玄氏)의 본관(本貫)은 연주를 비롯하여, 성주(星州) · 창원 (昌原) · 순천 (順天) 등 무려 106본(本)이 있는 것으로 문헌(文獻)에 전해지나 현존(現存)하는 본관은 30여 본에 불과하며 이들의 관향도 모두가 시랑공(侍郞公) 현담윤(玄覃胤)울 시조로 받드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자손들이 살았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하므로 1747년(영조 23) 정묘보(丁卯譜)를 편수(編修) 할 때 연주 현씨(延州玄氏)로 단일화(單一化)하였다. 그리고 1982년에 간행된 임술보(壬戌譜) 때도 문중(門中)의 합의(合議)에 따라 본관을 연주로 통일(統一)하였다.
평안북도 영변 (寧邊)의 고호(古號)이며, 영변군은 영주(迎州)와 무주(撫州)의 합명(合名)이다. 영주는 본래 고려 때의 밀운군(密雲郡)인데 670년(광종 21) 연주(延州)로 고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으며 995년(성종 14)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가 공민왕(恭愍王) 때 연산부로 승격되고 1413년(조선 태종 13) 도호부로 개편되었다. 무주는 원래 고려의 운남군(雲南郡)인데 995년 무주방어사라 하였다가 공민왕 때 태주(泰州)로 이속되었고, 1391년(공양왕 3) 감무(監務)를 둔 후 태종(太宗) 때 무산현(撫山縣)이 되었다. 1419년(세종 11) 연산과 무산을 합하여 영변으로 개칭하고 세조(世祖) 때 연주(延州)를 나누어 운산군(雲山郡)에 속하게 하고, 그후 여러 변천을 거쳐 1895년 영변군으로 개칭되었다
대표적인 인맥을 살펴보면 시조 담윤 (覃胤)의 3형제 중 덕수(德秀)와 이후(利厚) 두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반적 조위총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훈공을 세워 맏아들 덕수가 경상도 안렴사를 역임한후 신종때 병부상서에 올라 팔거군에 봉해졌다가 후에 성산부원군으로 이봉(移封)되었다.

둘째 이후(利厚)는 경상도 안렴사를 지내고 광성군에 봉해졌고, 1186년 문과에 급제했던 덕유(德裕)는 시조의 셋째 아들로 이부와 예부의 시랑(侍郞)을 거쳐 서경유수로 나갔다가 금자광록대부로 참지정사를 지낸후 대사공에 이르러 회원군에 봉해져서 그의 후손들이 창원 현씨로 분관하였다.

성산부원군 덕수의 둘째아들 원고[元羔]는 영동정(令同正)으로 순천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순천현씨로 분관하였다.

고려조에서 무훈으로 명성을 떨쳤던 현씨는 조선조에서 9세손 규(珪)가 판군자감사를 지내고 고부 군수로 나갔다가 홍문관 교리와 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규를 시조로 하여 성주현씨로 분적하였다.
그의 아들 득원(得元)은 1454년 성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민정을 보살폈으나 이듬해 단종이 손위(遜位)하자 벼슬을 버리고 아들 보손(寶孫)과 같이 영천 묵방동으로 돌아와 은거하며 종신토록 절의를 지키다가 여생을 마쳤다.

한편 빈(彬)의 아들 익수(翼洙)는 가세가 빈궁했으나 청백하여 처사로 일컬어졌으며 지릉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노부모의 봉양을 위해 나가지 않고 주자학(朱子學)을 연구하였다.

[죽창한화(竹窓閑話)]에 의하면 좌참찬 효생(孝生)의 아들인 석규(錫圭)가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갔을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제천정에서 여러 왕자들과 함께 잔치를 베풀고 있는데 과거를 보려고 몰려든 선비중에 한 선비를 가리키며 불러 오도록 했다.
세조는 그 선비에게 예의를 갖추어 손님으로 접대하면서 이름과 사는 곳을 묻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누가 이중에 처녀 딸을 둔 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먼길을 오느라고 의관이 헤어지고 형용은 초췌한 그 선비를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효령대군이 세조의 사람보는 식견을 알고는 "내 손자 서원군에게 처녀 딸이 있어 지금 혼인처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하니, 세조는 "좋은 사위를 구하려면 이사람보다 나은 이가 없다" 하며, "옛날부터 큰 인물은 초야에서 많이 나왔으니 혼인을 정하기로 하시지요" 하며 권했다

뒤에 서원군이 그선비의 집안을 알아보니 영남에서 문명을 떨치고 있는 가문이어서 사위를 삼았는데, 그 선비가 바로 석규(錫圭)였다. 그는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청렴하고 공정하게 정사를 처리하였고,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하면서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이 밖에도 당대에 이름난 성리학자로 손꼽힌 상벽(尙璧)이 [관봉문답(冠峰問答)] [관봉유고(冠峰遺稿)]등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학자 약호(若昊), 문장과 글씨에 능했던 덕윤(德潤), 재덕(在德) 등이 가문의 번영을 이루었고, 한말에 와서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병근(炳瑾)과 익철(益哲) 이 대를 이어 가문을 빛냈다
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인구 4만 4857명으로 성별순위는 258성 중 56위였고, 19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1만 7297가구, 전국 가구 구성비 0.2 %이며, 성별순위는 274성 중 57위였다.
충남 천안군 일원
제주도 남제주군 성산읍 시흥리, 온평리

전남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제주도 제주시 노형동, 아라동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진상리
강원도 철원군 마장면 장포리, 대전리

경기도 옹진군 서면 장포리
평북 선천군 동면 인곡동

경남 밀양군 하남읍 양동리
황해도 장연군 낙도면 일원
연주    연주현씨대종회    02-739-6712    서울 종로 -당주-145(미도파광화문빌딩604호)    
대종회 회장 24세 현승종, 수석부회장 25세 현진규, 사무국장 26세 현석두, 까페지기 26세 현경호 
현씨 (玄氏)의 본관은 연주를 비롯하여, 성주(星州), 창원(昌原), 순천(順天) 등 무려 106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해지나 현존하는 본관은 30여본에 불과하며 이들의 관향도 모두가 시랑공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받드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자손들이 살았던 세거지명에 불과하므로 1747년 정묘보(丁卯譜)를 편수 할때 연주현씨로 단일화하였고, 1982년에 간행된 임술보때도 문중의 합의에 따라 본관을 연주로 통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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