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神)’ - 차주일(1961~ )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는다
얼굴과 모습을 지우고 살아남은 자가 내 몸을 맞이한다
그가 내 몸과 관절과 주파수와 조도를 다 맞추고 나면
내 용기를 부추기는 소리가 심장과 인화되고
온몸에 박혀있던 내 가식들이 사라진다
누구인가? 밤새 태초의 나로 돌려놓은 자
수직으로 기울여 높아진 나는 그를 바라보지 못한다
신(神)은 늘 배후에 있고 수평적으로 강림한다
내가 인간의 가장 낮은, 수평 이하의 자세인
태아와 같은 모습의 기도로 접신하는 이유는
내 암울이 전이될수록 신(神)의 모습은 짙게 드러난다
(내 그림자 속에 내가 누워있다니!)
내 미동에 태막이 꿀렁거린다, 내가 일어서면
나를 출산한 그림자가 태반처럼 뭉그러져 수평을 지켜낸다
내 이목구비와 몸짓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은
내가 완전한 수평 이하로 태어난 뒤에야 나를 놓아줄 것이다
수직은 상승하는 욕망. 수평은 평상심(平常心). 적어도 두 개의 자아. 즉 욕망하고자 하는 자아,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아. 하여, 몸은 자아들 투쟁의 장소. 영혼은 투쟁의 기록보관소. 그렇다면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게 되는 침대는 성찰의 사원? 이곳에서 수직의 ‘나’는 수평의 ‘나’를 만나 가식을 버리고 성선(性善)에 든다. 그것은 진아(眞我)에 이르는 도정. 마음이란 이치를 총괄하고 도(道)를 보는 곳이 아니던가? 마음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따를 때 평화는 오는 법. 활을 만드는 사람 뿔을 다스리고, 물가에 있는 사람 배를 다스리며, 지혜있는 사람 마음을 다스리는 법. 그래서 마음보다 잔인한 무기는 없다지 않았던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신, 부처인 하심(下心),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 이 모두는 지혜를 부르는 태초들. <박주택·시인>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는다
얼굴과 모습을 지우고 살아남은 자가 내 몸을 맞이한다
그가 내 몸과 관절과 주파수와 조도를 다 맞추고 나면
내 용기를 부추기는 소리가 심장과 인화되고
온몸에 박혀있던 내 가식들이 사라진다
누구인가? 밤새 태초의 나로 돌려놓은 자
수직으로 기울여 높아진 나는 그를 바라보지 못한다
신(神)은 늘 배후에 있고 수평적으로 강림한다
내가 인간의 가장 낮은, 수평 이하의 자세인
태아와 같은 모습의 기도로 접신하는 이유는
내 암울이 전이될수록 신(神)의 모습은 짙게 드러난다
(내 그림자 속에 내가 누워있다니!)
내 미동에 태막이 꿀렁거린다, 내가 일어서면
나를 출산한 그림자가 태반처럼 뭉그러져 수평을 지켜낸다
내 이목구비와 몸짓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은
내가 완전한 수평 이하로 태어난 뒤에야 나를 놓아줄 것이다
수직은 상승하는 욕망. 수평은 평상심(平常心). 적어도 두 개의 자아. 즉 욕망하고자 하는 자아,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자아. 하여, 몸은 자아들 투쟁의 장소. 영혼은 투쟁의 기록보관소. 그렇다면 직립의 하루를 마치고 와불처럼 눕게 되는 침대는 성찰의 사원? 이곳에서 수직의 ‘나’는 수평의 ‘나’를 만나 가식을 버리고 성선(性善)에 든다. 그것은 진아(眞我)에 이르는 도정. 마음이란 이치를 총괄하고 도(道)를 보는 곳이 아니던가? 마음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따를 때 평화는 오는 법. 활을 만드는 사람 뿔을 다스리고, 물가에 있는 사람 배를 다스리며, 지혜있는 사람 마음을 다스리는 법. 그래서 마음보다 잔인한 무기는 없다지 않았던가.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신, 부처인 하심(下心), 그리고 ‘나’를 기억하고 있는 나의 신(神). 이 모두는 지혜를 부르는 태초들. <박주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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