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나는 자주 혼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혼자인 시간이 길게 늘어진 아이였다. 집에는 늘 사람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 는 사람 수만으로 외롭지 않아지지 않는다.
어린아이는 자기와 비슷한 속도로 시간을 흘려보내 줄 존재를 원한다. 같이 심심해해 줄 사람. 같 은 장면을 열 번 봐도 또 웃어 줄 사람. 의미 없는 것을 끝까지 의미 있다고 믿어 줄 사람.
우리 집의 시간은 대체로 조용했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말수가 적어졌고, 어머니는 하루치 피로를 설거지 소리로 흘려보냈다. 나는 그 틈에서 혼자 노는 법을 배웠다.
해가 기울어가는 거실 바닥에 장난감을 늘어놓고 앉아 있으면 텔레비전 아래 비디오데크에서는 기 계 돌아가는 소리가 작게 윙윙거렸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 심장 같았다. 살아 있는 무언가가 집 안 어딘가에서 천천히 숨 쉬고 있는 느낌.
아무 소리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으면 사람은 결국 냉장고 소리나 선풍기 소리 같은 것에 귀를 기 댄다. 어린 나는 아마 그 비디오데크의 작은 기계음을 들으며 혼자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있 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내게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 이제는 이름도 흐릿하다. 분명 이름이 있었는데 세월이 그 이름의 가장자리 부터 천천히 마모시켜 버린 것 같다. 하지만 이름이 사라졌다고 해서 존재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 다.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화질은 흐려져도 특정 장면의 색감만은 끝내 남는다.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있었다는 감각만큼은 기억한다.
그 친구는 내게만 보였다. 비디오테이프로 <캐스퍼>를 수십 번 돌려보던 무렵이었다. 희고 둥글고 조그만 유령 캐릭터. 그게 어느 순간 내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온 것 같았다. 윤곽은 흐렸고 빛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달라졌다.
어린아이의 상상력은 대개 모방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모방한 것을 끝까 지 믿어버린다. 어른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건 진짜가 아니야”라는 문장을 배운다. 그리고 그 문장 을 배우는 순간,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영영 잃는다.
무서운 밤이면 나는 늘 그 친구를 불러냈다. 방문 너머 어둠이 유난히 깊어 보이는 밤들이 있었다. 화장실 불빛조차 어딘가 차갑고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잣말처럼 그 친구에게 말했다.
“야, 같이 가.”
신기하게도 무섭다고 말하는 순간 공포는 조금 작아졌다. 그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거기 있어 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것이 내가 처음 배운 친구의 정의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무서울 때 그냥 같이 있어주는 존재.
목욕을 할 때도 나는 늘 장난감을 데리고 들어갔다. 플라스틱 냄새가 배어 있던 로봇들. 그 친구들 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었다. 변신을 했고, 합체를 했고, 마지막 순간에는 반드시 더 거대한 무언가가 되었다. 세 단계 변신쯤은 기본이었다. 공룡이 되었다가 전투기가 되고 다시 거대한 로봇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만화는 거의 자본주의와 군국주의와 희망이 이상하게 섞여 있는 장르였다. 악당은 매주 나타났고, 장난감 회사는 매달 새로운 합체 방식을 발명했으며, 아이들은 그 모든 세계 관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어른들이 보기엔 상술이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계시였다. 신제품 이 아니라 새로운 우주의 등장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공룡도, 로봇도, 마지막 순간 다시 일어나는 영웅도. 정말 간절하면 가슴팍 어딘가에서 갑자기 빛이 나면서 배경음악이 깔리고 새로운 형태로 진화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어른은 변신하지 못한 채 피곤한 몸으로 다 음 날 출근할 뿐이다. 그래도 그 시절의 나는 믿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반드시 새로운 힘이 생기고 정의로운 편은 마지막에 이긴다고.
비디오테이프는 늘 조금씩 늘어나 있었다. 같은 만화를 수십 번씩 돌려봤다. 주제가를 외웠고, 다 음 장면을 외웠고, 대사까지 거의 따라 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화면 아래 지지직거리 던 노이즈와 재생 버튼을 누를 때 들리던 둔탁한 기계음까지도 그 시절의 일부였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사랑하는 법을 먼저 배운 세대였다. 지금처럼 원하는 장면만 골라 소비하던 시대가 아니었다. 비디오테이프는 앞으로 감았다가 너무 지나치면 다시 되감아야 했고, 보 고 싶은 장면 하나 때문에 십 분을 참고 기다려야 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이야기는 조금 더 커졌다. 한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미 그 장면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만들고 있었 다.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애틋했다.
요즘 기억은 스트리밍처럼 소비된다. 금방 보고 금방 넘긴다. 하지만 그 시절 기억은 비디오테이프 같다. 느리고 불편하고 자꾸 늘어나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조금 더 자라자 상상 속 친구는 서서히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썰물처럼 천천히 멀어졌다. 내가 더 이상 그 친구를 부르지 않게 된 것인지, 그 친구가 스스로 물러난 것인지 는 알 수 없다. 다만 어느 순간 나는 혼자인 밤이 예전만큼 무섭지 않다는 걸 알아챘고, 그 무렵 그 친구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진짜 친구들이 들어왔다. 골목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누군가 집 앞에서 이름 을 크게 부르면 어디선가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친구들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대문이 열리는 소리.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 누군가 급하게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그 소리들이 모이면 하루 가 시작되었다.
“00아, 놀자!”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휴대전화도 없고 메신저도 없던 시대였다. 친구를 만나는 방법은 단순했다. 직접 가서 부르는 것. 그 단순함 안에는 지금은 사라진 용기가 있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다. 집에 없을 수도 있었다.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못 나오게 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단 찾아갔 다.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체면보다 훨씬 컸던 시절이었다.
골목의 시간은 이상할 정도로 느리게 흘렀. 아이들은 시계를 잘 보지 않았다. 그림자의 길이로 저 녁을 짐작했고, 어느 집에서 된장찌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슬슬 하루가 끝나간다는 걸 알았다.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냄새와 빛으로 흘렀다.
당시 내 하루 용돈은 삼백 원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힘든 금액이지만, 그 삼백 원 안에는 어린아이 하나의 우주가 들어 있었다. 이백 원은 거의 정해진 사용처가 있었다. 문방구 앞 작은 트램 펄린. 우리는 그걸 퐁퐁이라고 불렀다. 쇠파이프 위에 팽팽하게 당겨진 파란 천. 아이들은 거기서 중 력보다 웃음이 더 강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퐁퐁 위에서는 모두가 조금씩 위대해졌다. 평소에는 운동신경이 없던 아이도 공중에서는 한순간 영웅이 되었다. 착지할 때마다 무릎은 휘청거렸고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주머니 속 동전은 짤랑거렸 다. 그래도 우리는 웃었다. 돈을 내고 하늘과 잠시 협상하는 기분이었다.
남은 백 원은 늘 고민이었다. 딱지를 살 것인가, 뽑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불량식품을 먹을 것인가. 어린 시절의 선택은 늘 비극적으로 중요했다. 가진 것이 적을수록 결정 하 나에 모든 마음이 쏠린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문방구 앞에 서 있으면 세상은 갑자기 철학의 문제로 바뀌었다. 욕망은 많고 자본은 부족했다. 나는 매번 작은 경제학자가 되었고, 대부분의 결론은 충동구매였다.
문방구 앞에는 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프라모델 상자. 천장에 매달린 싸구려 풍선들. 플라스틱 바구니 안에 아무렇게나 담겨 있던 딱지들. 그리고 유리 진열장 안쪽에 놓인, 왠지 너무 비싸 보여서 손대지 못하던 장난감들. 그 앞에서 아이들은 유리창에 이마를 가까이 대고 자기 형편보다 큰 꿈을 꾸었다.
지금 생각하면 문방구는 거의 어린이들의 증권거래소였다. 아이들은 거기서 희귀성을 배웠고 시세 를 배웠고 과시욕과 손절의 개념까지 배웠다. 어떤 딱지는 귀했고 어떤 딱지는 바닥에 떨어져도 아 무도 줍지 않았다. 구겨진 딱지는 괜히 더 강해 보였고, 여러 장을 겹쳐 만든 두꺼운 딱지는 거의 방 패처럼 취급되었다. 나는 딱지를 엄청나게 모았다. 백 장이 넘었던 것 같다. 어쩌면 더 많았을지도 4 모른다. 비닐봉지 가득 딱지를 넣고 다녔는데 그 묵직한 감촉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어린 시 절의 부자는 통장 잔고가 아니라 딱지의 두께로 결정되었다.
나는 딱지 세계에서는 꽤 강한 축에 속했다. 최고수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기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물량이 있었다. 네모난 종잇조각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조금 가진 기분이 들었다.
룰은 간단했다. 가위바위보, 선공 결정, 그리고 단판. 빠르면 오 초도 걸리지 않았다. 왼손은 묵찌 빠를 준비하고, 오른손은 이미 딱지를 내려칠 각도를 계산하고 있었다.
“딱!”
그 짧은 소리와 함께 상대 딱지가 뒤집혔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거의 어린이식 선물 옵션 거래였 다. 아이들은 그 짧은 승부 안에서 희열과 절망을 동시에 배웠다. 손목 스냅 하나에 재산이 오갔고 바람 방향까지 계산하는 애들도 있었다. 어떤 애는 침까지 묻혀가며 딱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 금 보면 거의 주술이다. 그때 우리는 과학과 미신과 승부욕을 한 손바닥 안에 올려놓고 살았다.
나는 어느 날 내가 가진 딱지를 전부 걸고 게임을 했다. 처음에는 금방 되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몇 장쯤이야 다시 뒤집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질 때는 계속 졌다. 한 장, 두 장, 세 장. 어느 순간부터는 딱지를 잃는 게 아니라 자존심이 무너지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진짜 진다는 생각. 원상복구만 하면 된다는 생각. 어린아이 특유의 무모한 집착이 눈앞을 가렸다. 그리고 결국 나 는 전부 잃었다. 주머니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딱지를 오래 넣고 다녀 늘어나 있던 바지 주머니만 축 늘어진 채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울었다. 억울했고 창피했고 분했다. 아끼던 딱지를 잃은 것도 슬퐜지만 사실 더 견디기 힘들 었던 건 패배 그 자체였다. 방금 전까지 나는 백 장이 넘는 딱지를 가진 아이였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세상은 그대로였는데 내 안의 계급만 순식간에 몰락했다.
하필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울면서 딱지를 따간 친구 집으로 찾아갔다. 빗물과 눈물이 뒤섞 인 얼굴로 문 앞에 서서 돌려달라고 떼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채권추심업자였다. 다만 담보도 없고 법적 근거도 없고 남은 것은 눈물과 고집뿐인 아주 영세한 채권추심업자. 친구는 싫다고 했고 나는 더 크게 울었다. 결국 친구는 마지못해 딱지를 돌려주었다.
나는 다시 딱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터덜터덜. 그 걸음걸이까지 아직 기억난다. 그런데 이상 하게도 막상 되찾고 나니 더 괴로웠다. 이긴 것도 아니었고 당당한 회복도 아니었다. 울고 떼써서 다 시 가져온 것이었다. 딱지는 돌아왔는데 자존심은 젖은 종이처럼 쭈글쭈글해져 있었다.
나는 집 앞마당 탁자 위에 젖은 딱지들을 펼쳐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비는 계속 내렸다. 가장 위에 놓인 딱지부터 천천히 젖어갔다. 만화 캐릭터들의 얼굴이 물기를 머금고 흐릿하게 번졌다. 방금 전 까지 세상을 구하던 영웅들이 빗물 속에서 조금씩 번져가는 것을 보며 나는 더 서럽게 울었다. 이상 하게도 그때는 딱지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젖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딱지도 젖고 나도 젖고, 그대로 감기에 걸려 며칠을 앓았다.
다음 날 그 친구 얼굴을 보는 게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민망함보다 심심함을 더 못 견딘 다. 그렇게 울고 싸워도 누군가 “00아, 놀자!” 하고 부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뛰어나갔다. 아이 들은 상처를 오래 붙잡아두지 않는다. 상처를 철학으로 만드는 건 대개 어른들의 습관이다. 아이들 은 상처를 논문으로 만들기 전에 이미 다음 놀이로 달려간다. 어제의 수치심은 오늘의 심심함 앞에 서 힘을 잃는다. 어쩌면 우리는 그때 용서라는 말을 몰랐기 때문에 더 쉽게 용서했는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가 살던 골목 뒤편에는 신선산이 있었다. 지금 가보면 그냥 동네 뒷산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의 그 산은 훨씬 깊고 어두웠다. 듬성듬성 서 있던 나무들과 낡은 건물들은 거의 폐허처럼 보였 고, 돌계단 틈에 낀 흙냄새와 축축한 낙엽 냄새는 묘하게 무서웠다. 우리는 그곳에서 수많은 괴담을 만들어냈다. 망태할아버지는 어느새 귀신이 되었고 이상하게 생긴 노인은 도깨비가 되었다. 누가 버 리고 간 소주병 하나도 아이들 눈에는 무슨 의식이 끝난 자리처럼 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비닐봉 지는 거의 영혼의 잔상처럼 보였고 나무 사이에서 들리는 새소리 하나에도 우리는 괜히 서로의 팔을 붙잡았다.
누군가 들은 이야기 하나에 다른 아이들의 상상이 덧붙으며 괴담은 점점 커졌다. 우리는 산을 탐험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서로의 겁을 확인하러 갔다. 누가 먼저 뛰는지, 누가 끝까지 허세를 부리는 지, 누가 “나 안 무서운데?”라고 말하면서 가장 세게 팔을 잡는지. 어린 시절의 용기란 대개 겁을 숨 기는 기술이었다.
아주 오래 지나 그 영웅들을 동경하던 아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어른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쇳가루와 먼지를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작업복에는 기름 냄새가 배고 퇴근 무렵이면 몸 여기저기가 묵직하게 아프다. 어린 시절처럼 거대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일은 없다. 정의를 외치 며 세상을 구하는 순간도 없다. 대부분의 날은 그저 고장 나지 않게 버티고, 멈추지 않게 유지하는 일들의 반복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세상을 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사람이 되었 다.
그래서인지 가끔 야간작업을 하다 보면 이상한 순간들이 있다. 기계음이 낮게 울리고 쇳소리가 멀 리서 번지고 작업등 불빛 아래 먼지가 천천히 떠다닐 때. 그러면 문득 어린 시절의 비디오데크 소리 가 떠오른다. 그 작은 기계 심장. 혼자라고 느끼던 밤마다 내 곁에서 윙윙거리던 소리. 그리고 이상 하게 그 소리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00아, 놀자!”
그 목소리는 오래전에 사라졌는데도 아주 가끔 지금의 나를 부른다. 브라운관 속 영웅들을 진심으 로 믿던 아이. 딱지 몇 장에 세상을 걸던 아이. 비 오는 날 젖은 딱지를 끌어안고 울던 아이. 친구들 과 함께라면 뒷산도 모험이 되던 아이. 그 아이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는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가 살던 세계만은 아직 내 안에서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처럼.
수없이 되감겨 화면은 흐려졌는데 가장 외롭고 가장 따뜻했던 장면들만은 끝내 닳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장면들 어딘가에는 아직도 그 희고 둥근 친구가 있다. 이름도 없고 형체도 흐릿한, 내 첫 번째 친구. 그 옆에는 아직도 골목 어딘가를 울리던 목소리들이 남아 있다.
“00아, 놀자!”
그 목소리들 덕분에, 나는 오래 혼자였지만 끝내 혼자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