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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계절에서 빛나길

작성자양세현|작성시간26.06.14|조회수60 목록 댓글 0

고등학교 친구들과 여행가는 날, 나는 아버지께 역까지만 태워달라 부탁했다. 놀러 갈 생각에 들뜬 나와 대화를 하던 아버지는 나에게 물었다.

“너 예전에 프라이드 타고 같이 하교했던 친구도 같이 가니?” 그 순간 나의 들뜬 기분 은 가라앉아 어느 새 깊숙이 묻어둔 기억 앞에 서 있다.

 

봄꽃이 피어나는 3월, 나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곳에 와 있다. 낯선 버스를 타고 낯 선 골목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문을 마주한다. 그 문을 지나 낯선 곳에 도착한 나는 홀로 앉아 주변을 살핀다. 다들 마치 원래부터 이 장소의 주인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럽다. 나만 손님인 것 같다. 평생 손님으 로 이 장소를 마주하며 주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나쁜 상상으로 가득차고 있는 순간 누군가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그 아이의 시선을 찾아가 눈을 맞 췄다.

 

“안녕? 나는 한설이야. 나랑 친구 하자. 네 이름은 뭐야?”

“아… 나는 하봄이야.”

 

먼저 다가온 한설이 덕분에 나는 친구가 생겼다, 그 중에서도 우리 둘은 가장 친한 친 구가 되었고, 누가 봐도 그 둘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동아리 활동 시간, 한설이 가 하고 싶은 동아리가 없다고 했다. 나는 동아리의 장을 맡고 있어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새로운 문을 지난 그 곳에서 나를 처음 맞아준 한설이에게 나는 모든 편의를 맞추어 주었다.

 

어느 날, 학원을 마친 한설이가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어느 날 은 자기가 힘드니 무거운 짐을 들어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또 어느 날은 자신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말했다. 알겠다고 했다. 친구니까. 이 정도는 친구끼리 다 해줄 수 있다 고 생각했다. 친구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나보다

상대방을 더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 이, 전부 친구에게 맞춰주는 것이 우정인 줄 알았으니까.

 

나의 하나뿐인 친구 한설이가 어느 날 갑자기 교환 일기를 쓰자고 했다. 매일 반복되는 교실에서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고 늘 함께였기에 그리 쓸 말이 많지는 않았다. 주말 에는 그저 평범하게 쇼핑을 하고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던 기억을 꺼내 적었다. 하지만 교환 일기는 나에게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한설이에게 물었다.

 

“우리 일기장 아직 못 썼어? 언제 줄래?”

 

하지만 한설이는 쌀쌀맞게 나에게 대답했다.

 

“그거 버렸어.”

 

그 이후 한설이는 한순간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 는 친구를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빌고 빌었다. 왜 그러냐고,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몇 날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온갖 추리를 하면서 고민하고 걱정하던 나에게 돌아온 건 단 한 마디였다.

 

“솔직하게 안 적었잖아.”

 

난 그 말의 의미를 밤새도록 되짚어 보았다. ‘아, 누구랑 놀았는지 자세하게 안 적어서 그런가? 그런데 교환 일기에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열아홉의 나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나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이 소식을 들은 한 설이는 내게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와 서서히 나와 멀어지기를 선택한 한설이는 어느새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거 리로 사라져 버렸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은 한설이의 마음을 어렴풋이 추측해본다. 아, 한설이는 우정의 이 름을 빌려 내게 사랑을 갈구했구나. 뒤늦은 깨달음 뒤에 찾아온 건 원망이다. 그 원망의 대상은 한설이를 향하기도 하였지만 나를 향하기도 하였다.

 

왜 나였을까. 사랑을 원했다면 우정라는 단어 뒤에 숨지 말았어야지. 도대체 나를 어떻 게 생각했기에 그렇게 헌신을 바라고, 내 감정을 그리 철저히도 무시했는가. 하지만 정작 나를 더 괴롭히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다. 나는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한설이가 바란 건 우정이 아니였던 걸 난 정말 몰랐을까.

 

“하봄아. 도착했어. 잘 놀다 와.”

 

아버지의 목소리에 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빠, 조심히 가. 다녀올게.”

 

나는 다시 한 번 한설이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나는 나의 계절에 그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날 터이니, 너도 너의 계절에서 부디 빛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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